[견제 없는 권력, 시민단체 <상>] 후원금·일감 주고받는 그들만의 경제 공동체

한영익 2020. 6. 10. 09: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업비·홍보비·장학금 등 명목
진보진영 단체끼리 자금 품앗이
민언련, 월 수천만원 지급처 안적어
"관행이라지만 회계 검증 불가능"
현 정부서 늘어난 국가보조금
진보 진영 유입된 뒤 돌고 돌아
진중권 "운동권블록 생존력 비결"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해 7월 ‘전태일재단’은 노동자 지원 명목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외 40건) 등에 4124만원을 지급했다. 11월에는 전태일 추도식을 위해 부산 지하철노조(외 43건) 등에 4085만원이 쓰였다. 재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 기부금지출 명세서’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대표 지급처’로 신고된 곳의 상당수가 이른바 진보진영 단체나 업체라는 점이다.

6월 50주기 사업을 위해 명필름(외 39건) 등에 9047만원을, 4월 어울림한마당 사업에서는 지역 비영리민간단체(NGO)가 운영하는 도시락 업체(외 45건) 등에 3319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신고했다. 해당 도시락 업체는 4·15 총선 직전 ‘세월호참사 6주기, 기억·책임·약속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경기도 거리 곳곳에 걸고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 명필름은 심재명 대표이사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진보 색채가 강한 영화사다.

언뜻 당연해 보일 수도 있는 ‘진영 편중 거래’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후신) 논란으로 차가운 여론에 직면했다.

정의연은 내부 소식지 디자인을 윤미향(전 정의연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남편 회사(수원시민신문)에 발주했고, 정의연이 관련된 ‘김복동 장학금’의 상당액은 진보계열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가 받게 했다.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과 맞물려 진보진영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처럼 같은 성향의 시민단체가 ‘일감 연대’를 이루며 ‘경제 공동체’의 몸집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윤미향 의원이 대표로 있는 비영리단체인 ‘김복동의 희망’은 이미 관련 논란에 휩싸였다. 김복동의 희망이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 기부금지출 명세서’(국내사업)를 보면 1억3204만원의 총지출 가운데 상당액이 진보계열 단체나 인사들에게 지급됐다. 1억원의 장학금은 대부분 정의연 이사와 진보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들에게 지급됐고,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별세한 뒤엔 아예 ‘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 한정한 장학금을 추가로 만들었다. “김 할머니가 평소에도 쌍용차 노동자들, 사드 반대 시민 등 사회구조적 피해를 본 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그 뜻을 받든 것”이라는 게 정의연 설명이다.


시민단체 기부금, 진보계열 도시락·시위용품업체로 갔다
나머지 사업비는 한국여성단체연합 연대사업(200만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홍보사업(500만원) 등에 쓰였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정의연이 NL 운동권의 물주 역할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운동조직들이 이룬 경제블록, 이것이 그들의 집요한 생존력의 비결일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가 국세청에 공시한 자료를 보면 진영 내 ‘자본 재유입’의 패턴이 나타난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는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에 두 차례 비용을 지출했다. 6월에는 ‘일상의실천 외 96건 9047만원’, 지난해 12월에는 ‘일상의실천 외 102건 1억5100만원’을 지급한 걸로 돼 있다. 해당 스튜디오는 지난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세월호 참사 관련 작품을 전시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시위용품 전문판매업체 ‘연대와전진’을 대표지급처로 기재했다. ‘연대와전진’은 금속노조 조끼, 민중가요 음반, 장기투쟁용 얼굴 가리개, 깃발, 깃대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으로 2007년 문을 열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부실한 회계관리다. 앞서 언급된 김복동의 희망, 전태일재단, 여성민우회 등은 월별로 대표지급처 한 곳만 적시했을 뿐, 나머지 수십 건은 대표지급처와 합쳐 총액만 적었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경율 회계사는 “제대로 된 검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회계가 부실하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지금 비판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엉터리 회계를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다. 적어도 100만원 이상 지급한 내역은 개별적으로 지급처를 명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세청 공시에는 대표지급처를 하나도 적지 않은 곳도 많았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지난해 국세청에 매달 8000만~1억4700만원가량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1월 지급내역을 보면 ‘대북지원 및 운영 1건 9433만원’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신고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월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쓰면서 지급처 상호는 한 건도 기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국가보조금은 증가했다. 정의연의 경우 2016년 16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이후 1억5000만원(2017년)→4억3000만원(2018년)→7억4708만원(2019년)으로 증가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020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설명회’에서 지원사업 수혜 단체를 선정할 때 “국가정책에 대해 보완·상승 효과를 가지는 사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영익·박해리·김기정 기자 hanyi@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