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의 야반도주.."보증금 까먹고 기계 저당잡혀, 남일 아냐"

박동민,최승균,서대현,우성덕 2020. 6.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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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째 일감 없어 노는데
수조원 지원금 구경도 못해"
원전업체 타격 창원 줄폐업
항공부품 몰린 사천도 신음
대우버스 울산공장은 폐쇄
협력업체 도미노 피해 우려
제조업계 "부도說로 흉흉해
신보·기보 100% 보증하는등
보릿고개 넘을 '처방약' 필요"

◆ 바운스백 코리아 <2부> ① / 무너지는 '제조업 메카' 부산·울산·포항·창원 가보니 ◆

지난 9일 경남 창원의 한 부품 도장 업체가 공장 가동을 멈춘 모습. 이 업체는 최근 제조업 침체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자금난을 겪었다. 녹슨 망치가 제조업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창원 = 최승균 기자]
지난 9일 오후 경남 창원시 북면에 있는 한 부품 임가공 업체. 30㎝가량 살짝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공장 내부는 불이 꺼져 오후 3시인데도 어두컴컴했다. 공장 앞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온 이 업체 대표는 직원도 없이 혼자 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로봇 부품을 비롯해 일부 대기업에서 나온 발주 물량을 받아 왔던 업체다. 업체 대표는 "올해 들어 물량이 하나도 없다"며 "가뜩이나 제조업이 침체되면서 어려웠는데 올해 코로나19까지 겹쳐 5개월째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 기업들을 위해 경영안정지원금 수조 원을 내려보냈다는데 구경도 못했다"며 "우리 같은 10인 이하 영세 제조 업체가 가장 타격이 큰데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최근 야반도주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야반도주하는 업체 사장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며 "대부분 공장을 임차해 사업하는 영세 업체다 보니 보증금은 다 까먹고 기계는 캐피털사 등에 저당 잡혀 있으니 몸만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근 신촌동에 있는 한 전자부품 가공 업체는 이달 초 아예 공장을 폐업했다. 이 회사 대표는 지난해 초 사출 금형기계 등 5대를 5억여 원을 들여 중고로 구입해 창업했다. 직원 5명을 두고 매월 5000만~6000만원 매출을 올렸는데 올해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일감이 줄더니 4월부터는 아예 동났다. 결국 기계를 처분하고 폐업했다. 최근 그는 월 급여 300만원의 중소기업에 취업해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철강업의 본산인 포항철강산업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실제로 현재 공단 내 입주기업 354곳 가운데 가동 중인 기업은 305곳으로 14%가량이 휴·폐업했다. 업계에선 포항철강산단이 조성된 지 48년 만에 최대 위기라고 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철강 재고량이 쌓이다 보니 이달부터는 기업마다 무급휴직, 무급휴업, 구조조정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제조업 메카인 '동남권 벨트'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철강, 자동차 부품, 조선기자재, 원전, 항공 부품 등 동남권 지역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제조업 선순환 구조가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경남은 원전 업체 등 제조업 침체를 겪고 있는 창원을 비롯해 코로나19에 따른 항공업계 위기로 진주·사천 항공산단에 몰려 있는 업체들까지 신음하고 있다.

사천의 한 항공 부품 제조 업체는 최근 수주 물량이 급감해 전체 직원 중 80%를 지난달부터 이달 말까지 2개월간 유급휴가를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보잉의 B737맥스와 E-jet2 물량이 급감한 데다 납품 중단과 채권 회수가 지연되면서 자금 운용에도 큰 차질을 빚으면서다.

주력 산업 업종의 위기는 인근 함안이나 김해 등 3·4차 벤더인 영세 중소 업체들이 주로 몰려 있는 곳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함안의 기계 부품 임가공 업체 대표는 "함안의 80%가량이 50인 이하 중소 업체다. 주로 2·3차 벤더로부터 외주 물량을 받아 처리하는데 5월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벌써 몇몇 회사는 망해서 경매로 나왔다. 하반기가 되면 절반 이상은 부도가 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과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몰려 있는 부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의 부산청정도금센터 입주업체들은 지난 2월부터 모든 업체가 단축 근무에 들어갔다. 상당수 업체가 주 3일로 근무를 단축하면서 평일 오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공장 문이 닫힌 곳도 있다. 자동차와 기계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 멈추다시피 하면서 표면처리 업계도 사실상 일손을 놓았다.

울산에서는 한 완성차 업체의 해외 이전설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자일대우상용차(이하 대우버스)가 경영난을 이유로 울산 공장을 폐쇄하고, 베트남 공장을 주력 공장으로 육성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대우버스 울산 공장은 시내버스, 고속버스, 7m버스 등 3개 차종을 생산하는데, 직원은 400명 정도다. 회사가 폐쇄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고, 대우버스와 함께 울산 울주군 길천산단으로 이전한 협력 업체의 피해도 우려된다.

한철수 경남상공회의소 협의회 회장은 "올 연말이면 50인 이하 중소 사업장은 물론 제법 규모가 되는 기업들도 유동성 위기를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에서 100% 보증을 하도록 하는 등 단기 극약 처방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도록 제조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 박동민 기자 / 창원 = 최승균 기자 / 울산 = 서대현 기자 / 포항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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