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생각 같아선 손해배상 300배" 수퍼여당의 언론 입막기

하준호 2020. 6.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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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징벌적 손해배상제 발의
야당 땐 표현자유 외치던 당의 변신
허위·왜곡보도 자의적 판단 소지
헌재 "진실·거짓 나중 뒤바뀌기도"
정청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해서다. 그는 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게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악의성’의 기준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도 적었다.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생각 같아서는 30배, 300배 때리고 싶지만 우선 없던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다른 법과 형평에 맞도록 한 것이다.” 정 의원은 재선이던 19대 국회에서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앞서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위원장 박광온)도 지난해 10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관련 법안 역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 규제 입법을 이번 국회에서도 이어간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달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의 경솔한 발언과 언론의 대응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이런 일에 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걸었던 과거 민주당을 떠올리면 이 같은 태세전환은 낯설기만 하다.

2012년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거나, 공적인 사안으로 사회 여론 형성과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박영선 대표 발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고 했었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대응은 필요하다. 그래서 언론 보도엔 언론중재법, 선거 때 허위사실 공표는 선거법, 불법·유해정보는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은 형법에 규제의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다만 추가 규제에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김종철 정의당 선임대변인은 1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선정적 제목 달기 경쟁이 과열되거나 1인 미디어가 늘어나면서 미확인 정보가 증가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면서도 “기존 제재 규정이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징벌을 부과하는 것은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개정안의 허위·극심·목적(의도)·왜곡 등은 주관적·자의적 판단을 낳을 소지가 크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 의원의 법안대로라면 폭행 피해자가 (언론 보도를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싶어도, 가해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가 두려워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허위’만 보더라도 쉽지 않은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도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상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47조 1항)에 대해 “‘허위사실’이 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다. (…)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정청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의 개정안 취지를 소개하며 “이에 반대하는 걸 우리는 정론보도를 하지 않겠다, 우리는 허위사실 보도도 때로는 하겠다는 거 아닌가, 라고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충성스런 지지자들로 웬만한 언론사보다 영향력이 큰 정 의원은 오롯한 진실만을 적고 있을까, 드는 의심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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