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이가영 입력 2020. 6. 11. 00:26 수정 2020. 6. 1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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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사회1팀장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6·10 항쟁 33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896개의 단어로 구성된 기념사에서 ‘민주주의’를 53회나 언급했다. 죽음으로 민주화의 불을 댕긴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숭고함과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고인이 된 민주 인사들과 자식들을 떠나보낸 부모들에게 훈장을 주는 대목은 뭉클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다양한 정의와 가치를 설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2020년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민주주의가 공고화됐다고 생각되는 지금 되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목소리와 행동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것도 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공유한다는 여권 인사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커 보인다.

노트북을 열며 6/11

최근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박병석 의장이 선출됐다. 그러나 그 자리에 제1야당 의원들은 없었다. 53년만의 단독 개원이다. 16대부터 출입하며 20년 가량 국회를 지켜봤지만 “협조 안 하면 우리끼리 할 거야”란 다수당의 으름장이 실현된 건 처음이다. 아무리 질긴 샅바싸움을 벌이더라도 늘 합의 정신이 존중되던 국회였다.

지난 2월엔 여당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5·18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게 골자다. 21대에 국회에 들어와선 지난 9일 정청래 의원이 허위보도를 한 언론에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생각 같아서는 30배, 300배 때리고 싶지만 우선 없던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다른 법과 형평에 맞게 한 것”이라고 썼다.

10일엔 북한이 문제 삼은 탈북자 단체를 정부가 직접 고발하고 단체 설립 취소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수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것, 5·18에 대한 비방을 막는 것, 언론이 허위보도에 책임지는 것, 평화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 이 모두 타당하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심지어 헌법의 기본 원칙인 표현의 자유는 안중에 없는 듯 밀어부치는 행태가 과연 민주주의에 기반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민주주의는 결코 후퇴할 수 없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민주주의, 더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해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의 행보는 왜 더 적고, 더 작고, 더 획일적인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까.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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