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장마전선?', '정체전선?'..기상청의 계륵이 된 장마

서동균 기자 2020. 6. 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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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워진 요즘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제주도는 어제(10일) 오후부터 장맛비가 내리며 장마가 시작됐다.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빨리 시작된 장마다. 제주도 남쪽 해상에 있는 장마전선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제부터 지속적인 비가 내리기 때문에 장마의 시작이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도 어젯밤 비가 내리긴 했지만, 앞으로 비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장마의 시작은 아니다. 여름철 주요 현상인 장마가 시작되는 이 시점, 기상청에선 기존에 익숙하게 사용하던 용어 대신 다른 용어의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장마전선'이란 표현 대신 '정체전선', '장맛비'는 '정체전선에 의한 비'로 표현해줄 것으로 권장했다. 물론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익숙한 표현도 아니다. 오랫동안 여름철 현상 중 하나를 지배해 온 장마전선과 장맛비라는 표현을 기상청은 왜 바꾸려 하는 것일까.

● 장마란?

장마는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많은 비를 내리는 현상을 뜻한다. 장마라는 단어에서 '장'은 길다라는 뜻의 한자어 長이고, '마'는 물을 뜻하는 옛 우리말이다. 장마 기간에는 기압골에 의한 강수, 소나기, 흔히 말하는 장마전선에 의한 강수 등 여러 형태의 강수가 나타난다. 이 중 장마전선은 여름철에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한 온난하고 습윤한 열대성 공기 덩어리와 북쪽의 한랭하고 습윤한 한대성 공기 덩어리가 만나서 생기는 공기의 경계선(정체전선)을 말한다. 이 장마전선에 남서풍을 타고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전선 부근으로 온난하고 습윤한 공기가 다량 유입되면 장기간 비를 뿌리게 된다. 장마를 이야기할 때 장마전선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아래 그림 참조).

자료=기상청

기상청은 장마를 중부와 남부, 제주도로 권역을 구분해 관측한다. 최근 30년을 살펴보면 중부의 장마 기간은 6월 25일~7월 25일까지, 남부는 6월 23일~7월 24일까지, 제주도는 6월 20일부터 7월 20일까지로 구분된다. 이 기간 강수일수는 중부와 남부, 제주도 모두 평균 17일 정도로 이 장마 기간 중 50%가 조금 넘는 기간에 비가 내렸다. 강수량은 중부가 400㎜를 조금 넘었고, 남부는 대구와 광주가 차이가 있지만 300㎜ 정도 내렸다. 제주도는 305.3㎜를 기록했다.

● 계륵이 된 장마?

지난 1998년 7월 28일, 기상청은 당시 길고 길었던 장마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인 7월 31일 지리산 일대에 집중호우가 시작됐고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가 계속됐다. 1998년 8월 서울의 한 달 기상 일기를 살펴보면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을 찾기가 더 힘든 수준이다(아래 달력 참조).


당시 기상청은 장마전선의 영향이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마 종료를 선언했다며 일반인들과 기상청의 '장마 개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올해 기상청이 제주도 장마의 시작을, 장마전선의 영향이 아닌 중국 저기압의 영향을 받는 어제 날짜로 발표한 것과 정면충돌하는 발언이다. 장마는 비가 지속적으로 오는 기간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장마전선의 영향'만'을 받아 비가 오는 기간을 말하진 않는다. 결국 꽤 오래전이지만 당시 기상청의 해명은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설명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작년 7월 말에도 기상청이 장마 종료를 선언한 이후 서울은 8월 중순까지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반대의 경우로 장마의 시작을 선언했는데 비가 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말이 '마른 장마'이다. 어감 자체가 이상한데, 비가 오는 기간인 장마 기간에 비가 오지 않자 억지로 만들어 낸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마 후 비가 오지 않거나 장마 종료 뒤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기상청은 항상 국민들의 뭇매를 맞았다. 날씨(Weather)의 특성보단 기후(Climate)의 특성을 가진 장마의 시작과 종료를 정확하고 정량적으로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름철 중요 현상인 장마는 예보에 꼭 필요한 현상이라서 기상청에겐 장마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일이 계륵과도 같을 것이다.

지난 2009년 기상청은 여름철 예보에서 장마 예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월 말 여름철 예보를 하면서 알렸던 장마의 시작과 종료 그리고 기간과 강수량 등 전망을 그만하겠단 것이다. 당시 기상청은 기후가 바뀌고 있어 정확한 예측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11년이 지난 올해는 장마전선보단 정체전선이라는 표현을, 장마 시작과 종료보단 장마철이란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기상청 입장에서 장마 예보와 장마 시점 공지 등 점점 책임질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기후가 변하고 예측이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상청의 변화가 예보가 틀렸을 때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변화라는 시각을 온전히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 장마 예보 왜 중요할까

지난 2006년 장마 기간(6월 21일~7월 29일)엔 서울에 1,068.4㎜, 춘천과 대구엔 각각 949.6㎜와 587.1㎜의 비가 쏟아졌다. 제주도는 1985년 장마 기간 25일 동안 모두 900.4㎜의 비가 내렸다. 연평균 누적 강수량이 1,200~1,400㎜ 정도니 장마철 기간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알 수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이 기간(장마) 동안 감전 사고의 비율이 가장 높고,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교통사고는 평균 하루에 2,900여 건에 사상자가 4,5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장마 기간엔 많은 비로 인해 침수 피해 등 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가 집계됐다. 장마 예보 그리고 대비가 중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름철 장마에는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준다. 중국의 열 저기압, 오호츠크해 고기압, 태풍 등이 대표적이다.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세력이 강하면 찬 공기 덩어리가 장마전선으로 침투하면서 불안정이 심해지고 강한 뇌우와 폭우가 발생할 수 있다. 태풍은 엄청난 양의 수증기와 잠열을 전달하며 심한 폭우를 발생시킬 수 있고, 심지어 다 죽어가던 장마전선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다. 장마라는 현상 자체가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강수량이나 기간, 시작과 종료를 예보하기 쉽지 않다. 기상청에서 하는 장마에 대한 예보가 틀리는 것은 과학적 한계 때문이다. 지금의 단기 예보처럼 기상청의 장마 예보가 정략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면 기상청에서도 2009년 그만둔 장마 예보를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더 중·장기 예보로 늘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과학적 한계에 더해 국민의 질타가 불확실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기상청 업무를 방어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장마전선 대신 좀 더 포괄적인 과학 용어인 정체전선을 사용하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정체전선과 장마철 등의 용어 변화가 앞으로 예보와 국민들의 삶에 더 도움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계속 말했듯 장마는 날씨 예보가 아닌 기후적 요소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판이 있을 순 있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은 지금처럼 기상청을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다. 기상청 예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보단 과학적 한계를 인정한 건강한 비판이 필요하다. 기상청도 과학적 한계를 설명하면서도 예보에 대한 비판을 대담하게 받을 필요도 있어 보인다. 결국 좋은 예보를 위해선 현업을 담당하는 기관의 좀 더 대담한 정면돌파와 국민들의 예보 시스템에 대한 이해 위에서 건강한 비판을 해야 한다.

서동균 기자wind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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