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울산 선거개입 수사, '표류'인가 '고군분투'인가

강청완 기자 2020. 6. 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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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울산시장 (사진=연합뉴스)


● 송철호 前 선대본부장 구속영장 기각…수사에 제동?

지난달 29일, 송철호 울산시장의 전 선대본부장 김 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들에 의해서는 구속할 만큼 피의사실이 소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영장이 청구된 중고차매매업자 장 모 씨에 대한 영장도 함께 기각됐다. 검찰의 영장 청구가 총선 이후 본격 재개될 울산 선거개입 의혹 수사 '2라운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던 만큼, 수사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주목할 만한 건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다. 보통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내주지 않을 땐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염려가 없다거나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등의 사유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처럼 증거수집의 적법성 여부를 논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흔치 않은 사례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마침 김 씨에게 사전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과 관련해 '별건수사'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라 기각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 김 씨 측 "검사가 회유‧압박해 스마트폰 임의제출…말 바꿔 영장 청구"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구속을 피한 송 시장 측 전(前) 선대본부장 김 모 씨는 이와 관련해 "검찰이 애초부터 무리한 별건 수사를 벌였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 씨는 영장 기각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거짓말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임의제출 받은 뒤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 씨는 울산 선거개입 관련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1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울산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사가 스마트폰 임의제출을 요구했지만 김 씨는 제출하지 않았다.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검사가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며 제출을 종용했다고 김 씨는 주장한다.


그래도 제출을 거부하자, 회유가 시작됐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가 "요즘 스마트폰에 개인정보와 온갖 자료가 다 들어가 있는데, 관련 없는 것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하자, 당시 조사를 맡은 울산지검 진 모 검사가 "현재 수사 중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증거가 아니면 우리가 발췌할 수도 없고, 수집한다 해도 활용할 수도 없다"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 씨는 스마트폰을 제출했고 넉 달이 지난 5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아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뒤 사전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같은 김 씨의 주장은 검찰이 무리하게 별건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김 씨와 송철호 시장 측 변호인의 주장을 상당 부분 뒷받침한다. 사실과 다른 말로 참고인을 회유 또는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법원의 1차 판단 격인 영장심사에서 구체적인 혐의 소명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송철호 시장과 김 씨 측 변호인은 지난 영장심사 직후 기자들을 만나 김 씨에게 제기된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법원이 짧게 밝힌 기각 사유 외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변호인 측 주장에 더 힘이 실린 건 물론이다.

● 검찰 "별건 아닌 공범 부분 수사"…'전형적 별건' 비판도

이에 대해 검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수사상황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씨에 대한 수사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영장심사 결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상황과 가능성을 감안해 보완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검찰은 지난달 29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별건 수사'라는 변호인 측 주장에 "공범 부분에 대한 수사"라고 적극 반박했다. 김 씨가 송철호 시장 선거캠프의 살림을 총괄한 핵심 인사로 지목되는 만큼, 공직선거법 관련 수사 과정에서 나온 민원인과의 금전거래 정황을 별개의 사건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송 시장 등이 기소된 이후 수사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 씨 측이 제기한 '위법수집증거'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조사를 담당한 울산지검은 "확인해줄 수 있는 사안이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형사소송법 전문가로 꼽히는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공직선거법에 한정해서 보는 것을 전제로 스마트폰을 임의제출받고 다른 범죄혐의 수사와 관련해 추가로 영장을 받지 않았다면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공범 관련 수사'라는 검찰의 설명은 '검찰의 워딩'에 불과하며 "'관련 수사'라는 걸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도 "별건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 울산 선거개입 수사, 표류하나?

이번 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여러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는 건 그동안의 수사 경과 및 안팎의 여건과도 무관치 않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해당 사건을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로 재배당했다. 자유한국당이 '하명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現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다. 그동안 묵혀둔 사건을 갑자기 중앙지검으로 가져온 이유가 무엇이냐 비판이 제기됐지만, 압수수색 과정에서 송병기 당시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이 발견되면서 어쨌든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로 검찰과 청와대‧여권 간 긴장감이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수사 개시 후 약 한달만에 처음 청구한 송병기 부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황운하 의원을 비롯해 피의자로 입건된 정치권 인사들은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라며 하나같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추미애 법무부장관 부임 이후 이뤄진 정기 인사에선 선거개입 수사를 총괄하던 신봉수 중앙지검 2차장이 지방으로 좌천됐다. 총선을 이유로 송 시장 등 13명이 '일단' 무더기 기소된 직후, 법무부는 하필 공교롭게도 '사건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들고 나왔다.

앞으로의 상황도 비슷할 것 같다. 황운하 전 청장 등 주요 피의자들은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7월 검찰 인사 등 빅이벤트도 줄줄이 예정돼있다. 검찰의 관점에선 안팎으로 온갖 암초가 늘어선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수사팀이 일부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사가 시작된 이후 송병기 전 부시장 등 주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조리 기각됐다. 임종석, 이광철 등 정권 핵심 인사는 기소조차 못했다. 여기에 증거수집의 적법성과 별건 수사 논란까지 더해지는 모양새다. 재판이 제대로 열리지도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검찰은 송병기 전 부시장과 울산 경찰 등 주요 피의자와 참고인 등이 출석에 불응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법정에서 "조직적 거부가 아닌지 우려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처음부터 쉽지 않은 수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칼날은 더욱 날카롭고 정교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검찰의 '무딘 칼날'에 수사팀의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분위기다.

● '표류'냐, '고군분투'냐…결과가 말해줄 것

수사 초기만 해도 울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하명수사' 의혹은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이 터져 나왔다. 혹자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 될 거라고 했다. 결과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릴 사안인 만큼 공방도 치열했다.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의혹은 가라앉고 오히려 검찰을 향한 비판이 더해지는 분위기도 분명히 감지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혀야 할 사안이라는 건 명백하다. 어느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 말이다. 검찰이 스스로 표류하고 있는 건지, 외부의 암초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인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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