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드래곤볼에게 '넘사벽'이 된 이태원클라쓰 비결

유현준 입력 2020. 6. 12. 03:13 수정 2020. 11. 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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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어렸을 적 즐겨 보던 만화는 ‘마징가Z’였다. 나중에 마징가가 일본 만화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 컸다. 어린 시절 추억에는 마징가, 아톰이 있고 나이 들어서는 드래곤볼, 슬램덩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만화들은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져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본 문화의 첨병 역할을 했다. 할리우드 SF영화 중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많다. 일본은 어떻게 세계적인 만화 강국이 되었을까?

일본 만화의 성장 배경은 만화 잡지

일본은 17세기부터 판화 인쇄로 '우키요에'라는 컬러 그림을 대량생산했다. 덕분에 일반 서민도 그림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림의 주제는 풍속화가 주를 이뤘고, 인물화나 때로는 춘화도 만들어졌다. 그림은 검은색 외곽선으로 형태를 잡고 그 안에 화려한 색상으로 채색된 형식이다. 일본이 유럽으로 도자기를 수출할 때 포장지로 사용되면서 우키요에 그림은 고흐를 비롯한 유럽의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그림은 4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와서 현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만화 시장이 큰 이유는 1억명 넘는 일본인이 '주간소년점프' 같은 만화 잡지를 보기 때문이다. 주간소년점프는 1990년대 전성기엔 600만부 이상을 찍어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주간 만화 잡지를 통해 만화가 수백 개 등장했고 경쟁했고 사라졌다. 4주 정도의 시간을 주고 인기가 없으면 편집되어 사라지는 경쟁 체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옥석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드래곤볼', 1990년대 '슬램덩크', 2000년대 '원피스'가 대표적 작품이다. 성공한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수출되고, 이를 보며 자라난 사람들은 일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층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종이 잡지들은 힘을 잃게 되었고 전성기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판매 부수로 일본 만화 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만화를 소비하는 대형 소비자층이 사라진 것도 위기를 가중했다.

한국 웹툰, 디지털 전환으로 시장 장악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는 '이태원클라쓰'다. 이 드라마는 웹툰 원작을 드라마로 바꾼 것이다. 최근 들어선 성공한 웹툰이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다. 웹툰에서 1000만뷰를 달성한 만화들은 대중의 검증을 받은 작품들이다. 이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어려움 없이 높은 시청률을 달성한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는 돈 없는 젊은이들이 이태원에서 주점을 시작으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만화 성공 이후 웹툰에 나오는 주점도 이태원에 실제로 오픈했다. 온라인 콘텐츠의 오프라인 진출이다. 우리나라 웹툰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웹툰 작가는 해외 수익만 월 1억원인 경우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3000만 Z세대가 주요 고객층이다. 웹툰 '신과 함께'는 단행본으로도 2014년 기준 15만부가 판매되었고, 최근 1000만 관객 영화 두 편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웹툰은 영화 콘티와 똑같다. 카메라 숏이 그려져 있고 대사도 있고 인물 그림도 있다.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웹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것은 검증된 콘티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웹툰이 성공 가능했던 이유는 스마트폰 발전 덕분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만큼 만화책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시장 규모가 작아서다. 인구 1억명 정도가 만화책을 사주면 시장이 형성되고, 만화가 풀이 커지고 만화의 질도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시장이 작아서 그렇게 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마트폰 스크린이 커지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릴 수 있게 되면서 대형 스마트폰 스크린은 컷 만화를 보기에 최적의 플랫폼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플랫폼이 되니 만화책을 종이에 인쇄하거나 유통할 필요도 없다. 좋은 스토리만 있으면 최소한의 투자로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번역만 거치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시장으로 가질 수 있다. 게다가 빛의 속도로 유통된다. 제작비가 적으니 진입 장벽이 낮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무한 경쟁으로 우수 콘텐츠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변혁기 맞은 백화점

모든 사람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주간소년점프'보다 10배 더 효율적인 플랫폼 공간이 되었다. 일본은 종이 잡지라는 기존의 성공 매체에 취해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늦었기에 한국에 웹툰 시장을 빼앗겼다. 웹툰의 성공은 미디어 매체가 종이에서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매체가 바뀌면 제작과 유통 방식이 바뀐다. 스마트폰은 만화를 더 싸고 더 빠르게 유통시켰다. '더 싸고 더 빠르게' 원칙으로 유통 시장을 파괴한 기업도 있다. 아마존닷컴이다.

롯데는 700개 매장 중 200개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대 메이시 백화점은 2016년과 2017년에만 100개가 넘는 매장을 폐쇄했다. 100년 전에 산업화가 만든 새로운 빌딩 타입이었던 백화점은 멸종 중이다. 코로나 사태로 디지털 시장으로의 개편은 더 빨라지고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매장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매장 홀푸드마켓을 인수하고 ‘아마존 고’를 개발했다. 매체가 바뀌면 콘텐츠의 성공 요인이 바뀐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변화 속에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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