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높은 '中 불링' 타깃된 호주..한국식 '읍소무마 전략' 쓸까

이승호 2020. 6.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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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 불링(China Bullying) 」

[사진 셔터스톡]

지난 2018년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이 보고서에서 쓴 표현이다. 불링(Bullying)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다. 말 그대로 중국이 약자를 괴롭힌다는 거다.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해 경제적 보복으로 응수하는 중국의 행태를 꼬집은 용어다.

2008년 중국 내 까르푸 매장 앞에서 중국인 시위대가 오성홍기를 들고 카르푸와 프랑스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차이나 불링 사례, 많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자 중국 내 까르푸 매장이 돌팔매 세례를 받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10년 인권운동가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연어 수출 길이 막혔다. 일본도 같은 해 센카쿠 열도(중국 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중국산 희토류를 못 샀다. 중국엔 경제도 무기다.

한한령의 구체적 내용 [자료 중앙포토]

정치로 비롯된 문제를 경제로 윽박질러 해결하려는 중국의 버릇. 당연히 한국도 당했다. 한국 사회에 각인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태다. 롯데마트는 당국의 교묘한 견제 속에 큰 손해를 보고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사드 기지 부지를 한국 정부에 제공했다는 이유다. 한국 대중문화 수입 금지, 한국 여행상품 판매 중단도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 한한령(限韓令)으로 불린 ‘은밀한 보복’이다.

「 차이나 불링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

[사진 셔터스톡]

2020년엔 호주다. 중국은 지난달 18일 호주산 보리에 대해 최대 80%까지 관세를 매겼다. 사실상 호주산 보리의 중국 수출 금지 조치다. 앞서 12일엔 호주산 쇠고기 수입도 부분 중단했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 관광객의 모습. [EPA=연합뉴스]

호주 여행과 유학도 차단 중이다. 지난 5일 중국 문화여유부는 “호주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중국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폭력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며 호주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9일엔 교육부가 같은 이유로 호주 유학의 위험을 경고했다. 중국 체제 특성상 강제성이 담긴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다.


한한령보다 더 노골적인 ‘한호령(限濠令)’이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은 지난 4월 웨이보를 통해

중국 관영언론 편집장이 “호주는 씹다가 만 껌”이라고 모욕하고, 주호주 중국대사는 “소고기, 와인 수입을 끊고, (유)학생과 관광객이 호주 방문을 다시 생각할 것”이라며 협박을 한다.

물론 중국은 이전부터 호주에 불만이 많았다. 이번 사건은 지난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 조사 방안을 지지하며 불거졌다. 하지만 그전에 호주는 2018년 중국 화웨이를 자국의 5G 인프라 사업에서 제외했다. 미국과 함께 남중국해 군사훈련도 같이 해왔다. 최근엔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 공동성명도 냈다.

지난달 27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호주도 할 말은 있다. 2018년 중국이 정치자금을 통해 호주 내정에 간섭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정치권에선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호주 의회는 2018년 ‘외국 영향 투명성 제도’란 이름의 내정간섭 차단법을 통과시켰다. 5일엔 통신·에너지·기술 등 국가 안보에 민감한 분야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의 사전 승인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대화 청한 호주…중국, 묵묵부답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EPA=연합뉴스]

일단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11일 언론을 통해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도 힘든 건 분명하다. 2018~2019년 호주 전체 수출의 26%가 중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주 농가들이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고객을 물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거론되지만, 중국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호주 정부가 대화를 모색해보지만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사이먼 버밍험 호주 통상투자관광부 장관은 최근 중산 중국 상무부장(장관)과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주즈췬 미국 버크넬대 교수는 “호주를 무시하는 것은 중국 외교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애를 태워 호주를 굴복시키겠다는 생각이다.

[POSRI 보고서 캡처]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은 보고서에서 2018년까지 차이나 불링에 대한 각국 대응을 표로 정리했다. 2020년 호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기투항? 정면대응? 와신상담? 읍소무마?

POSRI는 사드 사태 이후 한국의 대응을 ‘읍소무마’로 평가했다. 2020년 차이나 불링을 겪는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코로나19 이후 한국에 부쩍 러브콜을 보내는 중국이다.

[중앙포토]

1992년 수교 이후 20여년간 한국은 중국 시장의 머니파워에만 골몰했다. 중국어가 중요하고, 탄탄한 관시가 필요하다는 얘기만 했다.

하지만 그게 ‘차이나 불링’ 리스크를 키웠다. 사드 사태는 한국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한·중 관계가 사드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제2의 사드 사태를 맞지 않는 게 좋겠지만, 미·중 신냉전으로 '차이나 불링'의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땐 ‘읍소무마’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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