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 속 굶주림 떤 아이들.. 흔적 안남는 학대 '아동방임'

한성희 기자 2020. 6.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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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가 자꾸 울어요. 아무래도 아기랑 개만 있는 듯해요."

올해 1월 31일 부산에선 심각한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김모 씨(41·여)가 생후 18개월 된 아들 이모 군에게 2개월 넘게 제때 끼니를 주지 않고 방치하다 주변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방임은 개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일단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는 게 우선"이라며 "방임이나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아동을 부모와 분리한 뒤 객관적으로 조사를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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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 아동학대 범죄 10% 차지
“갓난아기가 자꾸 울어요. 아무래도 아기랑 개만 있는 듯해요.”

지난해 9월 6일 오전 1시 20분경 경기 파주에 있는 한 아파트. 한 이웃 주민은 112에 다급히 신고했다. 긴급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이 사다리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가 보니 두 살 난 영아인 김모 양이 커다란 개 옆에서 울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기 옆엔 우울증 약 봉투가 널브러져 있었다. 조사 결과 자리를 비운 아기 엄마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다. 일정한 직업 없이 혼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경찰 등은 응급보호조치 결정을 내리고 김 양을 아동보호센터로 보냈다. 입건된 친모는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가 적용됐다.

○ 코로나19로 골이 깊어진 방임

프라이팬 학대와 여행가방 학대 등 잇따라 충격적인 아동 학대가 드러나는 가운데, 신체 학대만큼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아동 방임’도 심각하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1월 31일 부산에선 심각한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김모 씨(41·여)가 생후 18개월 된 아들 이모 군에게 2개월 넘게 제때 끼니를 주지 않고 방치하다 주변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3월 24일 경남 창원에서도 40여 일이나 방치돼 있던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뒤늦게 발견됐다. 당시 집 안은 음식물이 방바닥에 눌어붙어 썩고 있었고, 소주병이 나뒹굴었다.

지난해 7월 24일 제주에서 학교 측의 신고로 구조된 김모 양(10)도 방임으로 고통 받던 아이였다. 천식에 아토피까지 앓고 있었지만 친모(36)는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질 않았다. 조사 결과 2년 넘게 쓰레기와 배설물 더미에서 살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뚜렷한 신체적 학대가 없다 보니 주변에서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아동 전문가는 “방임은 약 80%가 이웃 주민이나 담당 교사 등 주변의 신고로 적발된다”며 “운이 나쁘면 몇 년 동안 방치돼 아이에겐 더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아동 방임에 더 취약한 상황이다. 오랫동안 등교를 하지 않은 데다, 보호자가 일자리를 잃어 생계 위기가 닥친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드러나지 않은 아동 방임이 크게 늘었을 것으로 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아동학대 사건(2만4604건) 가운데 방임 사건은 10.6%(2604건)를 차지한다.

○ 방임은 대부분 신체적 학대로 이어져

방임은 자체로도 문제지만 결국 물리적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해 1월 1일 경찰 등에 구조된 이모 군(4)은 무려 3년 동안 부모로부터 방치됐다. 한겨울에 보일러마저 고장 난 차가운 방에서 지냈다. 하지만 이 군이 경찰에 알려진 건 친부로부터 폭행을 당해 주위에서 학대 사실을 알게 된 뒤였다.

신고가 접수돼도 학대 증거가 명확지 않아 구조가 어려운 것도 특징이다.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도 물증이 없을 땐 아동을 부모와 분리하는 조치를 내리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방임은 개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일단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는 게 우선”이라며 “방임이나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아동을 부모와 분리한 뒤 객관적으로 조사를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김미숙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방임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 만큼 사소한 단서라도 포착하려는 노력과 신고가 절실하다”고 했다.

한성희 chef@donga.com·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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