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으로 북 주민 위험해질수도" 탈북민들도 살포 강행에 반대 목소리

전광준 2020. 6.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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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들 의견 들어보니-
"줍거나 읽다 걸리면 처벌받아"
"탈북 가족 심한 박해당할 우려"
남북관계·탈북민 인식 악화도 걱정
"구시대적 행위, 정부가 제재를"
경기도, 접경지역 위험구역 지정
대북 전단 살포자 출입금지 조처
탈북자 단체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모습. 박종식 기자가 2014년 10월 촬영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일부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가 6·25 70주년을 맞아 대규모로 대북 전단을 뿌리겠다고 알린 가운데 탈북민들 내부에서도 거센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가 주장하는 ‘북한 주민 인권 향상’에 전단 살포 행위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 북에 남은 탈북민의 가족들이 박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겨레>는 12일 대북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탈북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북한에서 삐라(대북 전단)를 줍게 되면 바로 한국의 파출소와 같은 분주소에 갖다 바치거나 찢어서 땅에 묻어야 한다. 읽어보다가 걸리면 바로 처벌받는다.” 2004년까지 평양에서 살다 탈북한 ㄱ씨는 대북 전단 때문에 북한 주민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ㄱ씨만이 아니라 <한겨레>와 인터뷰한 탈북민 7명은 모두 ‘북한 주민 인권 향상’을 위한 행위라는 전단 살포 단체의 주장과 달리 이런 행위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 정부를 도발할 뿐, 북한 주민들 손엔 가닿지 못하거나 우연히 발견해 소지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2004년 탈북한 40대 남성 ㄴ씨는 “주민들은 삐라 자체가 떨어지는 걸 잘 모른다. 산지가 많아 시내에는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2005년 탈북한 ㄷ씨도 “북한에선 남한이 전단과 함께 보내는 쌀을 만지면 손이 썩고 병에 걸린다고 선전한다. 백번 뿌려봐야 소용없다. 남북관계가 좋아져 남한 정부가 정식으로 쌀을 보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주장했다. 일부 단체들이 페트병에 쌀을 담아 전단과 함께 방류하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탈북민들로선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직접 나서 대북 전단을 보내는 탈북민들을 ‘배신자’, ‘쓰레기’등으로 부르며 강도높게 비판한 만큼 이런 북한 지도부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2005년 탈북한 ㄹ씨는 “한국에 있는 탈북민 친척에게 전화하다 발각돼 몇 달 째 북한 국가보위성에 붙들려 있는 조카가 걱정된다”고 했다. 탈북민 홍아무개(45)씨도 “평양에 오빠가 남아있다. 3개월 전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안해 죽겠다. 삐라를 뿌렸다고 탈북민 가족을 연좌제로 벌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씨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부모와 두 동생이 모두 함께 넘어왔다’고 밝힌 사실을 들면서 “북한에 남은 가족이 없어 마음 편히 삐라를 뿌리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탈북민들은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남북을 적대 국면으로 몰아넣은 점도 염려했다. 박영남(49)씨는 “앞으로 대화 채널이 열리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데 그 사람들(탈북민 단체들)이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을 계속 건드리고 있다. 왜 굳이 북한을 자극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한국 내 탈북민의 인식이 삐라 때문에 더 나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다. 2005년 탈북한 ㅁ(52)씨는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무리하는 사람 때문에 한국에서 힘들게 사는 탈북민들이 오히려 피해를 본다. 괜히 남한 사람들이 우리를 경계하게 된다. 주위 탈북민 70%는 반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아무개씨는 “코로나19로 일을 그만둔 뒤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북한 사투리를 듣고 안 뽑는 경우도 있다.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질까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확실히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씨는 “남한보다 낙후된 북한 현실을 모르는 북한 주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남북관계만 악화시키는 구시대적인 삐라를 언제까지 날리겠다는 건가. 해당 단체에 대한 법인 취소나 제제 등 정부의 강한 움직임을 원한다”고 말했다. 박영남씨도 “자꾸 삐라로 북한을 건드리지 말고 남북이 대화를 해야 관계가 나아질 수 있다”고 짚었다.

정부도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고 나섰다. 앞서 11일 청와대는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가 2018년 판문점선언과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이행 부속합의서 및 2004년 6·4합의서 등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중지하기로 한 행위라는 사실을 밝혔다. 같은 날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을 경찰에 고발하고 법인 취소에 착수하는 등 법적 절차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도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주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해 김포·파주·연천 등 접경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해 대북 전단 살포자 출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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