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 치고, 한줄로 앉고.."배곯는 노인들 '한 끼'라도 주려고"|한민용의 오픈마이크

한민용 기자 2020. 6. 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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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와 싸우는 것도 다 살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삶이 위태로워진 사람들을 지켜내는 것도 코로나와의 싸움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겁니다. 코로나로 복지관도,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으면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든 배고프고 외로운 노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이렇게 칸막이를 치고 한 줄로 자리를 마련하면서 따뜻한 한 끼를 주려고 애쓰는 무료 급식소들이 있는데요.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모두가 잠든 새벽, 이곳엔 쌀 씻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80인분. 옛날에는 세 솥, 네 솥 했는데요, 지금은 두 솥만.]

이렇게 흰 쌀밥을 지어온 지도 벌써 12년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딸이 결혼할 때도 밥을 지어왔지만 코로나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구청에서) '심각 단계 올라갔으니까 좀 쉬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해서 쉬었고요.]

문을 닫아도 노인들은 문을 두들겼습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니고 목사님 배고파서 우리가 죽을 것 같다…' 하루에 한 끼라도 먹어야 하는데…]

이곳이 아니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가, 말 한마디 누군가와 하기가 어려운 배고프고 외로운 노인들을 4차례나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일어나면 여기 오는 거예요. 1년 365일 오니까 여기 와서 서로 대화도 하시고 그렇게 했는데…'안 되겠다 이거는, 생활방역으로 돌아가면 바로 해야겠다' 싶어서 제가 하겠다고 (구청에) 신고를 했습니다.]

또 문을 닫을 순 없어 방역에 누구보다 철저합니다.

[목사님! 목사님!]

밥이 다 되기도 전에 문을 두드려와 마음이 바빠지지만, 그 와중에도 방역을 위해 비닐장갑을 계속 갈아 끼는 건 잊지 않습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밥 잘됐어요?) 네, 맛있게 됐습니다.]

지팡이가 하나둘 문 앞에 쌓입니다.

[복지관서 밥을 안 해주고 지금. 저녁에 라면 하나 끓여 먹고 혼자 있으니까 외롭고 먹는 것도 힘들죠.]

[하루에 한 끼 먹을 때 있고 그렇죠. (배가) 고파도 어떡해.]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요. 먼저 열부터 잰 뒤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손소독까지 마친 뒤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에서도 정부 지침대로 한 줄로, 가운데 자리는 비우고 서로 떨어져 앉습니다.

마스크는 필수, 대화는 절대 금지입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할머니·할아버지들 절대 마스크 벗으면 안 돼요. 절대 말해선 안 돼요.]

노인들은 식사할 때만 마스크를 벗은 채 '조용한 한 끼'를 먹습니다.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거리 두기 하고 나가야 해요, 천천히.]

어떻게든 다시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려 애쓰는 무료 급식소는 이곳뿐이 아닙니다.

코로나 시대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배고픈 사람은 늘고 기부는 줄면서 어느 때보다 버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순복/무료급식소 운영 : (12년 동안) 이번이 제일 힘들었어요, 아주. 이렇게 대접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고. 쌀 같은 거라든가 도와주신 분들도 자기들도 어렵다고…]

[박대관/무료급식소 운영 : 오죽 배가 고팠으면 왔는데 식사를 못 하고 돌려보낸다는 자체가,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어요. 밥 한 끼, 그냥 국하고 드리는 것밖에는…]

(영상그래픽 : 한영주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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