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정경심과 양승태 '상반된 두 법정'
[경향신문]
지난 11일과 12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의 임정엽 재판장이 증인으로 나온 조범동씨를 질책했다. 조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검사와 변호인 질문의 취지와 맞지 않는 답변을 하자 재판장이 “그게 무슨 대답이냐. 질문에 맞게 대답하라”고 다그친 것이다. 이 재판에선 재판장이 증인에게 제대로 증언하라고 지적한 게 여러 번이다. 검사도 증인에게 따지듯 신문한다.
같은 법원의 다른 법정에선 상반된 풍경이 이어진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35부의 박남천 재판장은 1년3개월 이어온 재판에서 증인을 질책한 적이 없다. 증언 시작 전 증인에게 위증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받는 것 외엔 증언 중간에 ‘사실대로 말하라’고 고지하거나 증언을 제지한 적도 거의 없다. 이 재판의 증인들은 대부분 전·현직 법관이다.
한승·강형주 변호사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가장 많이 한 증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사법농단의 근원지인 법원행정처에서 간부를 지내 재판거래 및 재판개입 의혹에 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인물이지만 법정에선 상당 부분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문건 작성에 관여한 김연학 부장판사는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며 직접 사법행정에 대한 외국 사례를 조사하고 자료까지 마련해왔다. 변호인 질문에 김 부장판사가 5분 이상 줄줄 설명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법행정권 행사는 남용이 아니라는 취지다.
정 교수 재판부는 증인으로 나온 단국대 교수가 정 교수를 편드는 발언을 하자 “증인이 피고인 변호인이냐”고 질타했지만, 사법농단 재판의 증인신문은 사실상 연루 법관들의 해명 자리로 진행되고 있다.
형사36부 윤종섭 재판장은 증인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고지했다가 오히려 피고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기피 신청을 당했다. 윤 재판장은 질책은커녕 차분한 말투였는데 임 전 차장은 “증인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증언할 것이라는 그릇된 예단을 (재판장이) 무의식 중에 드러냈다”고 했다. 기피 신청은 기각됐지만 임 전 차장 재판은 9개월간 정지됐다.
얼마 전 서울중앙지법의 어떤 법정에서 피고인이 우물쭈물 답변을 못하자 판사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봤다. 그 법정에 있던 여러 사람이 판사의 고성에 놀랐다. 평등의 원칙은 과연 법정에서 작동하는가.
이혜리 | 사회부 lhr@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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