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상인들 "지원금 다 썼나, 손님 무섭게 빠져나갔다"

문수정 기자 2020. 6. 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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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소상공인 카드 매출 다시 ↓ 빠르면 월말 모두 소진에 '불안'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한 상점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 있다. 권현구 기자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든 14일, 시장 바닥에서는 한낮의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이곳은 서울 송파구 마천중앙시장. 시장의 활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상인들의 무거운 시선이 닿았다. 족발집에서 일하는 이모(62)씨는 “한 보름 정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더니 요 며칠 무섭게 손님이 빠져나갔다”며 “날씨까지 더워지면 시장 장사는 더 힘들어지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 이날로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13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이후 외식업과 소매업을 중심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이 빠르게 소진돼가면서 기대감은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소상공인 카드 결제 정보를 관리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소상공인 카드매출이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지난달 둘째주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이달 첫째주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1~7일 전국 60여만 소상공인 사업장 평균 매출은 지난해 6월 첫째주의 98%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달 둘째주에는 전년 동기 수준을 회복했고, 셋째주에는 106%, 넷째주에는 104% 수준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3주 동안은 지난해보다 더 나은 매출을 기록하며 소상공인들에게서 재난지원금 지급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이달 초 매출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앞으로도 반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신용데이터가 발표한 수치는 평균치다보니 현장에서 실감하는 것은 이보다 안 좋았다. 마천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50대는 “하루에 1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반토막났다. 월요일에는 10만원도 못 팔았다”며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 금방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한창 쓰이던 지난달 중순에는 시장도 활기를 되찾는 듯했다. 경기도 외곽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생각보다 금세 잦아들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30년 넘게 양말 도매상을 운영하는 김모(53)씨는 “우리 고객들은 소매상들인데 장사가 얼마나 안 되는지 소매상들이 안 온다. 그러면 우리도 힘들 수밖에 없다”며 “할머니가 하시던 가게 이어받은 건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래도 음식점 하는 분들은 나은 편인데 도매상들이 걱정”이라며 “여름철이 비수기라고 해도 30년 넘게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고 했다.

백반집에서 일하는 최모씨는 “재난지원금이 풀릴 때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반짝 잘 되다 마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다시 오는 게 최선인데 당분간은 힘들지 않겠나. 코로나 확진자나 줄어서 내국인 손님이라도 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은 오는 8월말까지 다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 소비 진작을 위해 시한을 정해둔 것인데 소멸 시한이 되기 전 상당 부분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르면 6월말 쯤 대부분 소진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현황> 자료: 행정안전부


신용‧체크카드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지난달 말 충전액의 59.3%가 사용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현황’을 보면, 지난달 31일까지 카드로 지급된 재난지원금 9조5647억원 가운데 5조6763억원이 쓰였다. 전체 재난지원금 13조5908억원 가운데 41.8%가 사용된 셈이다.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결제된 것까지 감안하면 이미 사용된 재난지원금 규모는 더 커진다.

재난지원금이 소비심리를 반짝 살려냈지만, 소진 이후 반대급부로 소비심리가 바싹 마를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기업 외식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지금 많은 분들이 재난지원금 덕을 보고 있지만 재난지원금 소진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아서 걱정”이라며 “(재난지원금 지원이) 없는 것보다야 당연히 나았지만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에서는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사먹었으니 이제 절약 모드” “냉장고 가득 쟁여놨으니 한동안 마트 갈 일 없을 것” “외식도 할 만큼 했으니 자중 해야겠다” 등의 이야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마냥 안 되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대가 주로 찾는 대학가 주변과 유흥주점은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는 듯 보인다. 서울 광진구 대학가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손님들 대부분이 20대인데 날씨가 좋아지면서 예전만큼 손님들이 오고 있다. 아무래도 20대가 경각심이 적어서 그런지 코로나 영향이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도 전망이 어둡지 않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모(56)씨는 “솔직히 재난지원금 덕도 많이 봤고, 날씨가 더워지니 음료가 많이 팔리고 있다”며 “편의점은 날씨 덕을 좀 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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