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을 화가로 인정하면 대한민국 예술계 대혼란"

송창섭 기자 2020. 6. 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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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김순지 화백 "조씨 행위는 창작사기"
대법원 오는 25일 '조영남 사기' 재판 선고

(시사저널=송창섭 기자)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가 2017년 10월1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조영남 사태를 단순히 법리적인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재판부가 자칫 잘못 판단하면 돈으로 예술가 지위를 사는 세상이 오거든요. 학교에서 어떻게 미술과 예술을 가르칩니까. 남 시켜서 하면 되는데…."

동양화가 김순지씨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조영남 사태가 자칫 미술시장 전반을 뒤흔들 후폭풍을 몰고 올 것부터 우려했다. '화투 그림' 대작(代作) 관련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재판은 현재 국내외 미술계의 커다란 관심거리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아무개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간단한 덧칠 작업을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현재 검찰은 그림의 상당 부분을 대작화가인 송씨가 그렸으며 조씨가 이런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미리 알라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조씨 변호인들은 이러한 행위가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동양화가 김순지씨가 6월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조영남 판결'과 관련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 사건과 관련해 1, 2심 법원도 전혀 다른 판결을 내놨다. 1심 재판부는 "화가 송씨는 단순한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이고 조씨의 작품으로 그림을 판매한 것을 구매자들을 속인 행위"라며 검찰 쪽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조씨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미술 작품은 화투를 소재로 하는데, 이는 조영남의 고유 아이디어이고 송씨는 조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뿐"이라며 무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선고를 오는 25일 내릴 예정이다.

현재 법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도 찬반은 크게 엇갈렸다. 검찰 쪽 참고인인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일반적으로 화가들이 조수를 사용한다는 관행은 없다. 혼자서 작업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이고 상식"이라며 "조수가 대부분 그림 작품을 조금 손보는 척하고 사인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행위, 쇼(show)"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조씨 측 참고인인 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작가가 더 많은 양의 전시를 위해서 작품이 필요하다면 조수를 쓸 수 있다"며 "우리나라 유명 작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려면 많은 조수의 도움을 받아서 작품 수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반박했다.

1심 검찰‧2심은 조영남 손 들어줘…대법원 판단 주목

현재 조씨는 자신의 작품 경향이 '팝아트'라는 입장이다. 만화‧상업디자인‧영화 속 스틸컷‧TV 등 매스미디어와 미술을 결합시킨 예술사조로 리히텐슈타인, 앤디워홀 등이 대표적 작가다. 조씨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예술작품 전체에서 중요하게 차지하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보조재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김씨는 "조씨가 '현대 미술에서 조수를 쓰는 것이 대세'라며 내세운 '개념미술'은 말장난에 불과한 창작사기"라고 주장했다. 화투그림 역시 형태나 과정 내용으로 볼 때 일반회화에 불과하다고 봤다. 화투그림 자체가 조씨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입장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100호 미만의 평면 그림을 조수의 도움으로 그리는 것을 예술로 규정하면 예술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 화법을 구현해 내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예술에 매진하고 있다. 만약 재판부가 조씨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단하면,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짓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대작 '한국전도'로 유명한 김학수 화백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김 화백은 1964년부터 2006년까지 40여 년간 한강 1300리(里)를 폭 48㎝, 길이 20m 가량의 두루마리 화선지(350m)에 담아냈다.

"조씨 합법 판결은 예술가 창작 정신 정면 도전"

김씨는 추계예대와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1990년에는 베이징 중국화연구원을 수료한 중견 작가다. 1985년과 1986년 구상전 공모전 입선을 시작으로 1986년 동아미술대전 입선, 후소회 공모전 장려상, 그리고 1987년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김씨는 드라마 《생인손》 《만남》 등을 집필한 작가로도 활동했으며, 뮤지컬배우‧초등학교 교사‧동화구연가‧성우로도 활약했다. 조씨 작품에 대한 논란이 일자 2015년 이 사건에 대한 고소장 18매 초안을 작성했다. 김씨는 "조씨의 주장이 인정된다면 문학도 남이 쓴 작품을 제 이름으로 출판할 수 있게 되는 등 대한민국 예술계가 대혼란이 올 것"이라며 재판부에게 신중한 판단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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