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 '군함도 역사왜곡' 일본에 입 닫은 유네스코

도쿄/이하원 특파원 2020. 6.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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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징용 기록 약속 깨고 역사 왜곡한 군함도 전시관 개장

일본 정부가 일제(日帝)강점기 한국인 강제 징용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원명 하시마·端島) 탄광의 진실을 왜곡하는 근대산업시설 전시관의 일반 공개를 최근 강행했다. 전시관에는 "징용자에 대한 학대가 없었다" "한국인 차별이 없었다"는 내용이 강조돼 있다. 일본은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본인의 의사에 반(反)하는 한국인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뿐 아니라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에 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일러스트=양인성

일본의 약속 위반에 한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유네스코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에 거액의 분담금을 내며 영향력을 키워온 일본의 입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매년 300억원 넘게 납부하는 일본은 2011년부터 8년간 실질적으로 유네스코에서 '최고의 큰손'으로서 힘을 과시해 왔다. 오바마 미 행정부가 유네스코의 친(親)팔레스타인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며 2011년부터 분담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분담금 비중 2위였던 일본이 실질적인 1위였다.

일본은 '돈의 힘'을 지렛대 삼아 유네스코를 상대로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일본은 징용자들이 1000명 가까이 동원됐던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박근혜 정부가 반대하자 유네스코에 이를 무시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2015년 일본의 반대에도 일본군에 의한 난징 대학살 사료가 세계기록유산이 되자 분담금을 수개월 체불하며 실력 행사를 했다. 2017년에도 유네스코가 위안부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하자 또다시 납부를 미뤄가며 협박했다.

유네스코는 미국이 회원국에서 완전히 탈퇴한 뒤 2019년 회원국의 경제력에 따라 분담금 배분을 다시 했다. 올해의 경우 회원국 193국이 총 3154억원의 분담금을 나눠 낸다. 이에 따라 중국이 15.49%로 1위가 되고 일본이 2위(11.05%)로 밀려났지만, 일본의 입김은 여전히 크다. 한국은 2018년 13위였다가 10위로 뛰어올랐지만 2.93%로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조선일보

일본의 분담금에 의지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현 상황이 중국의 영향력이 드리워진 세계보건기구(WHO)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네스코를 잘 아는 한 외교관은 "전체 분담금의 22%를 책임지던 미국이 나간 뒤 유네스코 본부와 다른 회원국들은 '큰손'이 또 빠져나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유네스코가 군함도 문제에 대해 일본을 몰아붙이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네스코의 중요성을 알고, 자국 인사들을 진출시켜 왔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수장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1999년 아시아인으로 첫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된 마쓰우라 고이치로는 10년간 재임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을 넓혔다. 유네스코 본부 직원 국적 분포도 일본인이 56명으로 한국인(18명)보다 세 배 이상 많다.

일본이 군함도 관련 전시를 사실상 왜곡한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하지만 유네스코 내부에서는 한·일 간 역사 문제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느 정도 관철될지 미지수다. 미국 탈퇴로 영향력이 커진 중국은 올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을 맡고 있으나 최근 중·일 관계의 개선으로 우리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줄지 확실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유네스코가 헌장을 개정할 때도 중국과 일본이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손발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주유네스코 한국 대표부는 일본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에 시정을 요구하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외교력 격차 때문에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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