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퀘어] 세월호 희생자 동수의 로봇, 달리다

2020. 6. 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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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희생자 정동수군이 만들다 간 로봇,
로봇공학과 또래 학생들이 동수군이 참가하려던 대회 재현해

6월8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한 로봇이 가상의 우주정거장에서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 로봇은 세월호 희생자 정동수군이 단원고 재학 때 로봇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만들었던 것이다. 정군의 아버지 정성욱씨(앞줄 왼쪽 둘째부터)와 어머니 김도현씨 등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학생들의 유가족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임무를 잘 수행한 로봇을 위해 박수를 보내주세요.”

6월8일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컨퍼런스홀 지하 1층. 레고 블록 로봇이 기지로 돌아왔다. 고장 난 태양열판(패널)을 고치는 임무를 마치고서다. 로봇은 출발점에서 오르막을 올라 일정한 위치에 놓인 9개 패널을 향해 달려가, 태양을 향해 있지 않은 패널을 색깔로 구분해 뒤집는다. 로봇 두 대가 차례로 출동해, 뒤집힌 패널 5개 모두 바로잡아 임무를 ‘클리어’했다. 로봇은 패널 색깔을 파악해 “레드” “블루”를 외치고 수리한 뒤 “굿잡”이라고 말했다.

뭐라고 이름 붙이지도 않은 조촐한 로봇 시연회였다. 하지만 “제가 정말 긴장을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정말 많이 긴장되네요”라고 행사를 진행한 에이로봇 엄윤설 대표가 말했다. 로봇 중 하나는 세월호 희생자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7반 정동수군이 만들었다. 행사에는 동수군이 속한 로봇 동아리 ‘다이나믹스’ 멤버 유가족을 초대했다. 정동수군의 엄마와 아빠, 고우재군의 아빠와 동생, 박시찬군의 엄마와 아빠, 조찬민군의 형이 지켜봤다. 세월호 참사로 다이나믹스 동아리 학생 7명이 희생됐다.

“제가 세월호 가족협의회 일(진상규명부장)을 하면서 몇 번 쓰러졌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어요.” 동수를 좀더 잘 기억하고 싶은 아빠(정성욱씨)는 미완성으로 남겨진 로봇이 생각났다. 몇 년 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만난 전치형 교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게 로봇을 완성할 수 있는지 지난 4월에 문의했다. 전 교수가 로봇 전문가인 한재권 교수를 소개했다. 몇 개의 우연이 맞물려 돌아갔다. 한 교수가 있는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는 동수가 진학하고 싶었던 곳이다.

한재권 교수는 “일부러 아무것도 안 했다”. 연구실에 있는 동수 또래 학생들, 특히 ‘16학번’ 학생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이번 시연을 위해 안내 로봇 에이블의 외형을 조립해 씌우고 행사 진행을 맡도록 했다. 당일에도 행사장을 지켰다. 동수가 대학에 들어왔으면 16학번이 된다.

단원고 로봇 동아리가 만든 로봇. 왼쪽이 동수군이 참여한 팀이 만든 것이다. 미완성 상태의 로봇을 한양대 로봇공학과 학생들이 완성했다. 

동수가 참가하려던 대회는

4월 말 동수의 로봇을 받은 한재권 교수는 로봇 디자이너인 아내 엄윤설 대표와 머리를 맞댔다. 어느 로봇대회에 참여하려고 만들던 것인지를 알아내는 게 첫 번째 임무였다. 로봇을 움직여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엄 대표는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문의해 교육용 로봇업체 핸즈온테크놀러지를 통해 배터리를 구할 수 있었다. 수수께끼는 학생들에게 맡긴 뒤 어렵지 않게 풀렸다.

“레고를 이용해서 하는 로봇대회 가운데 고르면 될 것 같았고, 시기를 고려해 몇 개 대회를 추렸습니다. 코드를 열어보니 언덕을 올라가려는 미완성 코드가 나와 언덕을 오르는 미션이 포함된 WRO(월드 로봇 올림피아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수의 로봇을 재현한 로봇공학과 석사과정 천영훈씨는 추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5년 대학에 입학해 한양대 융합로봇시스템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2011년과 2012년 이 로봇대회에 참가했고 전국대회 우수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WRO는 2014년 초 과제에 대한 공고를 했다. ‘정규종목 고등(학생)’ 과제는 ‘고장 난 태양전지판 수리 및 교체’였다. 한국 대회는 8월3일과 4일 경기도 수원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신문기사(<로봇신문>)를 보면 그날 참가한 초·중·고등학생은 1400여 명이었다. 동수가 수학여행에서 그 금요일에 돌아왔다면 참가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천영훈씨는 이번 시연회를 준비하며 2~3주 전부터는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매달린 적도 있”을 정도로 공들였다. 프로그래밍을 다시 해야 했다. “(동수의 로봇은) 컴파일(프로그래밍언어를 실행파일로 옮기는 것)된 거라서 돌려볼 수는 있는데 꺼내서 복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완벽을 기했다. “잘하다가도 당일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대회에 나갔을 때보다 더 조마조마”했다. “팔로 블록을 잡았을 때 고정하는 부분을 만드는 등” 로봇에는 고민의 흔적이 많이 담겨 있었다. 디자인 면에서도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뾰족뾰족하게 처리하는 부분도 깔끔하게 돼 있더라.” 보통 로봇을 보면 성격이 드러나는 걸까. “그것은 잘….”

시연회 마지막에는 WRO가 참가자 모두에게 메달을 주는 전통에 따라, 희생자 가족들에게 특별히 만든 메달을 수여했다. 한재권 교수는 “로봇을 통해 사람을 도울 기회를 주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적힌 상장을 읽었다. 그는 로봇이 인간을 도울 수 있도록 연구해왔는데,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무기력했을 때 자괴감이 든 것을 고백했다. 로봇을 고치며 동수 모습을 짐작해본 천영훈씨의 소감은 각별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방전됐던 로봇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니까, 생명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수군의 로봇이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김도현씨가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행사에도 빠지고 매달렸던 로봇

로봇은 과제 임무인 수리 외에 교체 임무(불량 패널을 창고로 옮기기)를 하기에는 구조상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이번 시연에선 로봇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구조는 바꾸지 않았다. 불량 패널을 어떻게 옮길까 하는 문제 해결은 6년 전 동수의 몫이다. 그 고민은 세월호에 탄 순간에도 이어졌을 수 있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고민했을지 모르겠네요.”(천영훈씨)

엄마(김도현씨)는 ‘그날들’을 되살렸다. “동수가 그때 가족행사에 빠지고 학교에서 로봇을 만들었거든요. 매일 몇 시간씩 선배와 통화했어요. 수학여행 가면서도 이거 해야 하는데, 하면서 안 가고 싶어 했어요. 어제 그 기억이 불쑥 떠오르더라고요.” 로봇이 기억을 건져올렸다.

로봇이 실수 없이 과제를 수행하자 유가족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로봇경진대회 형식으로 치른 과제 수행이 끝난 뒤, 동수군의 아버지 정성욱씨가 한양대 로봇공학과에서 준비한 트로피를 받고 있다.
동수군의 어머니 김도현씨가 로봇 제작을 마무리한 한양대 로봇공학과 16학번 정은수씨를 안아주고 있다.
동수 로봇을 맡았던 천영훈(오른쪽 둘째)씨가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산=사진 박승화 기자, 글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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