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연락사무소 폭파에 민심 격앙.."각자 갈 길 가자"

박민기 2020. 6.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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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설치 약 21개월만..총 177여억원 투입
"폭파 보며 허탈감 느껴..'역시는 역시'"
"왜 우리가 굳이 북한을 포용해야 하나"
전문가 "사무소는 남북 맺은 평화 상징"
"정부, 일희일비 말고 행동을 보여줘야"
[서울=AP/뉴시스]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모습을 17일 보도했다. 2020.06.17.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연락사무소)를 기습적으로 폭파시키면서 북한을 향한 국내 민심이 얼어붙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이어가는 등 친북 정책을 강조하며 한때 '남북 관계 개선에도 물꼬가 트일까'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이번 사건으로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남한과 북한은 어차피 다른 나라다. 앞으로 각자 갈 길 가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17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 오후 2시50분께 기습적으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2018년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설치된 이후 약 21개월 만이다.

연락사무소 건립 당시 정부는 '365일·24시간 남북 소통 창구가 열렸다'며 의미를 부각시킨 바 있다. 2005년 개소됐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설치된 연락사무소는 보수 예산으로만 97억8000만원이 투입됐다.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가 처음 지어질 때 들어간 공사비 80억원을 합하면 총 177억여원이 사용됐고, 이후 운영비 명목으로 100억원 이상이 추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뢰가 깃들고 막대한 예산까지 들어간 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폭파되면서 북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직장인 한모(30)씨는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공동연락사무소인데 이렇게 폭파시키는 것을 허탈감을 느꼈다"며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중요시하는 현 정부를 보면서 '이번에는 다르겠지' 했는데 결국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바로 전쟁을 할 수는 없으니 아직까지는 대화 기조가 조금 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대해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에는 또 말만 하는 데 그칠 것 같다"고 했다.

[평양=AP/뉴시스]북한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지난해 3월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직장인 이모(32)씨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대북 융화 정책을 펼치면서 남북 군사합의 등을 업적으로 내세웠는데, 결국 북한은 궁지에 몰리면 합의고 뭐고 없는 것 같다"며 "남북 연락사무소까지 기습적으로 폭파시키는 행동을 보면서 '굳이 우리가 북한을 포용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각자 갈 길을 가려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북한은 이날 모든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문 대통령의 6·15 메시지를 비난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실었다.

김 제1부부장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최고존엄 모독'이고, 이것만은 절대로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전인민적인 사상 감정"이라며 "그런데 남조선 당국자에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인정도 없고 눈곱 만큼의 반성도 없으며 대책은 더더욱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 관련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 순간까지도 남조선 당국자가 외세의 바지가랑이를 놓을 수 없다고 구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높은 수위의 비난을 가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갖고 있는 감정이나 분노는 충분히 알겠으나, 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행동 자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경거망동이라고 볼 수 있다"며 "연락사무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남북이 새로운 길을 같이 걸어나가자고 같이 맺었던 평화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다'는 입장이지만 우리 정부는 군사훈련을 이어가는 등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북한이 이제는 내부에 집중해서 인민들을 추스르고 경제 중심의 정면돌파전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 일희일비하거나 자꾸 대화를 유도하는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단호하게 나아가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담담하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해나가면서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k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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