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다 막으면 전세로만 살라는건가요" 서글픈 무주택자

염지현 2020. 6. 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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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째 부동산대책 시장 반응은
"강남 집 사려면 현금 20억 있어야"
"투기세력 돈 벌고 떠났는데 뒷북"
"경기회복에 찬물, 타이밍 아쉽다"
김포·파주 등지로 풍선효과 우려
17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아파트 단지 모습. 이날 대전 동·중·서·유성구는 투기과열지구, 나머지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였다. [연합뉴스]

“대출을 온통 죄어버리면 서울 살려면 전세로만 살라는 얘긴가요.” 서울에서 20년째 전셋집을 전전해온 직장인 윤모(41)씨의 얘기다. 그는 “기존 집은 전세대출을 받아 그대로 살고 다른 곳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고 했는데 이 길이 막혀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17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전세대출을 받은 뒤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넘는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을 즉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변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번 대책으로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잠실동 리센츠 단지의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최고 20억원에 거래됐다. 이제 이런 집을 사려면 20억원가량 현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오른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부동산 투자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충북 청주까지 규제지역에 포함됐다. 머지않아 전국이 규제지역이 된다” “무주택자는 집 사지 말라는 메시지다” 등이다. 규제가 지나쳐 실수요자까지 부담이 커졌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가 직격탄을 맞았다면 이번 대책은 전방위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을 넘어 대전과 충북 청주까지 규제지역에 포함됐다. 특히 청주는 최근 6개월 사이 집값이 ‘반짝’ 올랐다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이자 분위기가 술렁인다.

청주시 오창읍 주변 공인중개업소의 홍모 대표는 “오전부터 수십 통의 전화가 몰렸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집값이 내려가냐고 묻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투기세력은 돈 벌고 떠났다”며 “정부의 뒤늦은 대책에 실수요자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올해 늘어난 아파트 갭투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오창읍은 지난달 정부가 방사광가속기 사업부지로 선정한 곳이다. 이 소식에 지방의 저렴한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사들이는 ‘갭투자 원정대’가 몰렸다. 청주의 인기 아파트 단지 몸값은 올해 초보다 1억원 이상 뛰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대책이 과열된 시장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지만 중장기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전반이 침체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는 대책이 자칫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정책 타이밍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법인의 수도권 아파트 매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다음달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는데 재건축 안전진단까지 강화됐다”며 “(새 아파트의) 공급부족 우려로 청약시장의 열기는 더 뜨거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결국 신축 아파트의 희소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면 청약가점이 낮은 30~40대는 청약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 ‘규제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는 “규제가 많아지면 부동산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 “수요를 무조건 억제하기보다 공급 불안 심리를 해소할 수 있게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 센터장은 “저금리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 이번 규제에서 벗어난 김포·파주 등 수도권 비규제지역에선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허정원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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