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딱 붙어 줄 서고, 마스크 벗고 대화" 무료급식소 코로나 방역 사각지대

한승곤 2020. 6. 1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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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무료급식 받으려는 인파 몰려
"식당 이용 안 돼 공원 인근에 모여 앉아 식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차원으로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료급식 배급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밀착한 채 줄을 서 있다.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마스크 턱에 걸치지 말고 콧등까지 올려주세요.", "코로나19 걸리기 전에 배고파 죽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노인 무료급식소 일부가 운영을 재개한 가운데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출입명부 도입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는 A 무료급식소에서 나눠주는 빵과 우유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급식소 앞에서 시작된 줄은 공원담장 너머 다른 골목까지 길게 늘어졌다. 이날 만난 60~80대 연령층의 노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더운 날씨 탓에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리고 있거나 일부 노인은 아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급식소 앞에서 만난 유 모(75)씨는 "첫차를 타고 오전 6시30분에 도착해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며 "코로나19 이전에는 급식소 운영하는 데가 많아서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리진 않았는데, 이젠 여는 곳이 적다 보니 사람들이 금방 몰린다"고 말했다.

유 씨는 "마스크 안 쓰고 있으면 줄도 못 서게 하니까 쓰고 나오는데 날이 부쩍 더워서 밖에 앉아 기다릴 때 숨이 막힐 지경"이라며 "계속 쓰고 있기가 어려워 잠깐씩 마스크를 내렸다가 고쳐쓴다"고 덧붙였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료급식소 개장을 기다리던 노인들이 음식을 배급받기 전 열체크, 손소독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비하고 있다.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최근 2주간 신규 환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 확진자 비율이 약 40%까지 올라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이에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지목되는 고령자에 대한 방역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치료 지침에서 건강 상태가 중증 이상으로 나빠질 우려가 있는 고위험군으로 60세 이상 고령층을 꼽기도 했다.

이날 급식소 관계자와 봉사자들이 급식소 앞에 모인 노인들의 열 체크와 손 소독제 이용을 도왔지만 많은 인원을 철저히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급식소의 한 봉사자는 "봉사자 몇 명이 250여명의 노인들을 전부 관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수시로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라 부탁하고, 꼼꼼히 열 체크를 하고, 일일이 손 소독제를 손에 뿌려주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줄을 이탈하거나 마스크를 내리고 대화를 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토로했다.

많은 인원이 몰리다 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들은 번호표 순서대로 밀착해 줄을 서 있었다. 봉사자들이 목소릴 높여 앞뒤로 간격을 유지해달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봉사자는 "지금도 다른 상가 골목까지 줄이 이어지는데 거리 유지가 되겠냐"면서도 "노인들과 제대로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모(72·여)씨는 "다들 들어가 있을 때가 마땅치 않아서 급식소 앞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이라며 "(탑골)공원도 안 열고 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 가 있냐"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모(81)씨는 "뉴스에서 맨날 나오는데 사람들 많이 모이는 데 가면 코로나19 걸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겠냐"며 "코로나19 걸리기 전에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라고 성토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료급식소 개장을 기다리던 노인들이 음식을 배급받기 전 출입명부를 작성하고 있다.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출입명부 관리도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10일부터 고위험 시설인 헌팅포차 등 8개 업종, 12일부터 학원과 PC방에 전자출입명부(QR코드)를 의무화했지만, 이날 급식소에서는 이용 연령 특성상 전자 출입명부 도입이 어려워 수기로 작성하고 있었다.

급식소 관계자는 혹시 모를 코로나19 상황에 대비해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으면 음식을 배급할 수 없다고 안내했지만, 전화번호가 없다거나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얼버무리는 노인도 있었다.

김 모(71)씨는 "지난번에 왔을 때 전화번호 없으면 번호표 있어도 (음식을) 안 준다고 해서 근처에서 사귄 친구한테 연락처를 빌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처럼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들도 많은데 그 정도로 힘든 사람들이 나와서 음식 받아가려고 하는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전문가는 2m 거리 간격을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거나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방법으로 방역 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무료급식소의 경우 사람들이 가까이 밀집돼 있는데,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으면 감염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거리두기를 시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마스크를 꼭 맞게 착용해 접촉을 줄이는 방법으로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코로나19 집단감염 여파가 지속하면서 신규 확진자 수가 나흘 만에 다시 40명대로 늘어났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7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43명 늘어 누적 1만2198명이라고 밝혔다.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13일 49명을 기록한 뒤 14∼16일 사흘간 30명대를 유지했지만, 4일 만에 다시 40명대로 증가했다.

사망자는 16일 1명 추가돼 누적 279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평균 2.29%지만 연령별로 보면 60대 2.56%, 70대 10.00%, 80대 이상 25.89% 등으로 고령층일수록 급속히 높아진다.

완치돼 격리에서 해제된 확진자는 14명 늘어 총 1만774명이 됐다. 현재 격리돼 치료를 받는 확진자는 28명 늘어 1145명으로 나타났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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