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최순실은 재조사 안 하나

박국희 사회부 기자 2020. 6. 19. 03: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국희 사회부 기자

최순실(최서원)의 옥중 회고록 초판 1000부가 서점에서 금세 동나는 바람에 어렵게 책을 구해 읽어봤다.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이 확정된 최씨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최근 여권에서 재조사를 주장하는 '한명숙 전 총리 9억원 수수 사건'이 떠올랐다.

여권 주장의 핵심은 검찰이 한 전 총리 사건 증인들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각종 사기 전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재소자들은 물론, 당시에는 출소해 이미 사회에 나가 있던 민간인 신분의 증인마저 검찰청에 모아놓고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교육했다는 내용이다.

최씨도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새벽에 갑자기 딸(정유라)이 없어졌다. 검찰이 증언대에 세우기 위해 아이를 호텔로 데려가 회유를 하고, 새벽에 불러내서 증언 내용을 연습시키고 증언대에 세웠다."

여권은 검찰이 한 전 총리 사건 증인들을 별건 수사로 압박해 진술을 회유했다고 주장한다. 최씨가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도 '회유'와 '협박'이다. 최씨는 "첨단 수사부 H 검사는 '검찰청에 온 이상 모든 걸 털어놓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준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서 나왔지만, 여권은 한 전 대표가 옥중 비망록에 '검찰의 강압 수사였다'고 쓴 부분만 문제 삼고 있다. 최씨 역시 책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단초가 된 태블릿 PC에 대해 "나는 태블릿 PC를 쓸 줄도 모르고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만호 비망록'처럼 검찰 수사를 문제 삼는 '최순실 회고록'이 나왔다고 국정 농단 사건을 재조사 할 수 있나. 상식이 있다면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최씨 사건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일부 현직 검사는 "3년 전 정유라 수사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인권 측면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엄마가 구속된 상태에서 젖먹이를 키우던 21세 딸은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모두 기각됐다. 해외 도피 중 정씨는 취재진에 의해 현지 경찰에 고발돼 체포됐다. 작년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전 장관 딸에 대한 검찰 수사와 비교해봐도 격세지감이 든다. 하지만 누구도 지금 시점에서 정유라 사건을 재조사하자고는 안 한다.

민주당은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는 관행을 16년 만에 깼다. 한 민주당 법사위원은 첫 일성(一聲)으로 "한명숙 사건부터 추궁하겠다"고 했다. 훗날 정권이 바뀌고 '조국 사건' '드루킹 사건' '청와대 울산 선거 사건'을 모두 재조사하자고 하면 과연 민주당은 뭐라고 할 것인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