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폭염 비웃는 독한 코로나..기온 87도는 돼야 죽는다

하현옥 2020. 6. 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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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놨던 호언장담이다. 고온다습한 여름이 도래하면 독감(인플루엔자)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란 희망을 품은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맞은 인류는 날씨가 사태를 완화해줄 수 것이란 데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온도와 습도가 낮을수록 더 잘 산다. 독감이 춥고 건조한 겨울에 유행하는 이유다. 지구촌을 유린하는 코로나바이러스도 비슷한 계절성을 가졌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중앙포토]



코로나19와 비슷한 사스 바이러스 최장 28일 생존
코로나바이러스는 왕관처럼 돌출된 외피 단백질을 가진, 이른바 기름막에 쌓여 있는 외피형 바이러스다. 이 기름막은 상대적으로 열에 예민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바이러스를 둘러싼 기름막(외피)이 고무처럼 단단해져 바이러스가 외부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상대습도 40%인 21~23도에서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와 같은 단단한 표면에서 72시간까지 살아 있었다.

코로나19와 염기서열이 80% 가량 유사한 것으로 분석된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는 섭씨 4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최장 28일간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스 바이러스의 경우 기온이 22~25도에서 38도로 올라가면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비웃듯 코로나19의 기세는 맹렬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현재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824만2999명에 이른다.

북반구가 여름으로 접어든 이달 들어서도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다. 인도와 이란의 사례만 살펴봐도 더위와 습도가 코로나19의 질주에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인 형국이다.

인도 방역 당국 공무원이 18일(현지시간) 뭄바이의 슬럼가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신화사]



고온다습한 인도서 매일 1만명 넘는 신규 확진자 발생
WHO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총 32만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한 인도의 이날 신규 확진자는 1만2881명이다. 지난 12일 이후 매일 1만명 넘는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초 하루 3000명대이던 신규 확진자수가 3배로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수도 뉴델리의 기온은 이미 40도를 웃돌고 있다. 인도의 일부 지역의 기온은 50도를 넘기도 했지만 코로나19는 끄떡없다.

지난달 초 일일 신규 환자수가 세자릿수로 떨어졌던 이란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18일 기준 총 환자는 19만5051명으로 이달 초 하루에만 3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며 ‘2차 유행’을 맞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17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여름을 맞아서 전혀 약화하고 있지 않다”며 “코로나19는 온도변화에 관계없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장기간 유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12일 충북 청주시 질본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온 30도, 상대 습도 25% 오르면 감염재생산지수 0.89 낮아져
기온과 습도 등 계절적 요인이 코로나19 전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는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상관관계는 있지만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 베이항대ㆍ칭화대와 미국 코넬대ㆍ코네티컷대 연구진이 SSRN(정식 출판 전 논문을 미리 공개하는 사이트)에 지난달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기온과 습도가 높아지면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낮출 수는 있지만, 확산세를 잡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1월19일~2월10일 중국 100개 도시와 3월15일~4월25일 미국 1005개 카운티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와 기온ㆍ습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다.

R0는 코로나19의 감염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환자 1명이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평균 인원을 의미한다. 1이 넘으면 유행이 전파될 수 있고, 1보다 낮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이 사그라든다는 의미다.

논문에 따르면 북반구에서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기온이 30도, 상대 습도가 25% 상승하면 R0는 0.89 낮아진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결과는 고온다습한 상황에서 전파 속도가 떨어지는 인플루엔자의 경우와 궤를 같이 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연구팀은 “다른 조건을 고정한 채 기온과 습도만으로 R0를 1미만으로 떨어져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3 수준인 R0를 1미만으로 낮추려면 기온은 87도까지, 상대습도는 256%까지 상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WHO가 추정하는 코로나19의 R0는 2.5 정도다.

연구팀은 “북반구의 여름과 우기가 도래하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둔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여름이 온다고 코로나의 대유행이 자동으로 사라질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5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스페인독감은 여름은 7월에 1차 유행
지난달 30일 국제학술지 ‘임상감염병’에 실린 미국 하버드 의대 조교수인 시브 세흐라 박사 등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섭씨 11도(화씨 52도)까지는 기온이 오를수록 코로나19 감염률이 떨어졌지만, 11도 이상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세흐라 박사는 “기온만으로 여름철에 극적으로 감염이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바이러스의 계절성에 대한 예측은 엔데믹(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 상황에 의존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BBC는 “세계적 대유행은 더 일반적인 아웃브레이크(집단 감염)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계절적 양상을 종종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20세기 최악의 감염병’인 스페인독감이다. 1918년 발병한 뒤 최소 5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스페인독감의 경우 여름철에 1차 대유행이 도래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환자를 격리 수용한 미국 켄자스주의 임시병동 모습. 당시 스페인독감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해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앙포토]



"날씨와 기후는 코로나19 전파 보조변수, 거리두기가 중요"
계절과 기후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보다 숙주인 인간의 행동과 면역체계라는 지적도 있다. 날씨가 추우면 외부 활동이 줄고, 밀집한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반면 기온이 높아지면 외부 활동이 늘면서 자연적으로 거리두기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추운 날씨가 인간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공기가 건조하면 폐 등을 감싸는 점액 분비가 줄어들어 바이러스의 침입에 취약해져 감염세가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침방울(비말)로 전파되는 코로나19의 특성을 감안하면 기후는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얼마나 살아있느냐는 데 영향을 줄 뿐”이라며 “유행을 차단하는 주요 변수가 아닌 보조변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반구의 여름과 남반구의 겨울을 맞는 지금 단계에선 바이러스가 더 공격적이 될지, 전염력이 달라질지 여부 등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없다”며 “계절이나 기온이 (바이러스 확산을)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에만 의존할 순 없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통한 생활 방역의 실천이란 의미다. ‘날씨는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의 행동은 통제할 수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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