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인기 좋을땐 실력이 없고 실력 생기니 인기가 바닥.. 이게 내 고민"

곽창렬 기자 2020. 6.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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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만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그는 차기 대선에 대해 “내가 나와도, 누가 나와도 야권 혁신이 없으면 야권이 이기기가 어렵다”며 “영국의 토니 블레어처럼 제3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 보세요. 구멍을 네 개 뚫었어요. 이 구멍을 통해 피고름을 빼낸 거죠.”

정치인 안철수가 운동화와 검은색 양말을 벗더니, 오른발을 내밀었다. 튀어나온 엄지 발톱이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뜬 발톱 좌우 끝에서는 시퍼런 피멍이 보였다. 발톱 오른쪽 아래에는 지름 1㎜가량의 자그마한 구멍 네 개가 보였다. "마취도 안 하고 구멍을 뚫었어요. 마취하면 회복 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지금도 구두는 못 신어요." 옆에 있던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대표님 발톱 상처는 나도 처음 봤다"고 했다.

지난 총선 기간 안철수(58) 국민의당 대표는 "기득권 양당 정치에 맞서겠다"며 전남 여수에서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435㎞짜리 마라톤 국토 종주'를 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이 미국 전역을 마라톤으로 돌며 바람을 일으켰던 방식이다. "환갑 다 된 사람이 400㎞ 넘게 뛴 건 인정해야 한다" 등의 칭찬도 있었지만 "마라톤 대신 배달통 들고 뛰어 보라"(이재명 경기지사) "마라톤을 선거운동이랍시고 하고 있다"(손학규 민생당 상임선대위원장) 같은 조롱이 더 많았다. 4·15 총선이 끝나고 두 달여가 흐른 지난 12일 오후, 안 대표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만났다. 인간 안철수가 궁금했다.

"조롱은 반대 세력 왜곡 때문"

―정치를 공식 시작하기 전에 훨씬 인기가 많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은퇴 후 2015년에 한국 왔을 때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총리가 됐는데, 그때는 보고를 받아도 하나도 모르겠고 겁이 났다. 그런데 총리 끝날 때가 되니까, 어떤 사안이든 빨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기가 바닥이다 보니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게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은 인기가 높아도 실력이 없다. 반대로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 인기가 없어 정책을 추진할 힘이 없다. 정치에 대한 나의 고민이자 도전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오른발. 그는 “마라톤을 한 여파로 지금도 구두를 신지 못한다. 오른발 엄지발톱이 빠지기 직전”이라고 했다.

―1분 1초도 아까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왜 마라톤을 했나.

"우리 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냈다. 현행 선거법은 지역구 후보가 없는 정당은 유세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제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마라톤을 했다. 관심을 모으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또 밥 먹고 뛰기만 하면 되니까, 큰 비용도 들지 않는다. 내 체력을 보여줄 길이기도 했다. 달려도 그냥 달린 게 아니다. 인터넷 생중계를 했다. 농담도 하고, 정책 설명도 하고, 현 정부에 대한 비판도 했다. 나는 달리면서 말하는 게 별로 힘들지가 않다. 사람들이 '아이고, 달리면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왜 달리느냐'고 하는데 안 본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한다. 마라톤 하면서 냈던 메시지는 많이 본 뉴스 10위 안에 꾸준히 들었다."

―조롱이 많았다.

"뭐를 해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나한테는 익숙한 일이다. 내가 올바른 일을 하면 상대방 공격이 거세진다. 예를 들어 윤미향 의원 문제나 시민 단체의 정치화를 비판하면 비난이 거세진다. 갑자기 비난이 폭주하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2017년 4월 23일 안철수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물었다. 지지율이 크게 꺾였다. 지금도 'MB 아바타'는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MB 아바타' 영상을 다시 돌려 봤나.

"몇 번 본 거 같다. '내가 못 참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은 '드루킹(대선 댓글 조작으로 실형 선고받은 김동원씨)'이 악의적으로 편집해 영상을 퍼 나른 거다. 어쨌든 적절하게 대처 못 한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눌변' '초등학생 같다'는 말도 나온다.

"내가 예전에 했던 청춘 콘서트 동영상 등을 봐라. 말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돼 있다. 정부·여당 그룹에서 이미지 왜곡한 거다. 근거 없는 세뇌였다."

"정치 초반은 내가 부족… 빡세게 투쟁"

2011년 그는 지지율 50%가 넘었지만, 서울시장 야권 후보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당시 그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고, 사실상 정치에 처음 발을 들였다.

―정치한 지 10년이 됐다.

"벤처기업 경영하면서 정말 많은 사기꾼을 만났다. 한번은 외국에서 첨단 컴퓨터 보안 기술자가 왔는데 함께 사업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궁금해 한번 만났다. 자세히 들어보니 완전히 사기였다. 내가 기술에 대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잠적해버렸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치에 들어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하가 있더라. 한번은 국회에서 나와서 차를 탔는데, 어떤 사람이 달리는 차 문을 열더니 내 사진을 막 찍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한 매체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제목은 '차 문도 못 닫고 도망치는 안철수.' 이런 식으로 내내 공격당했다.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다."

―정치 10년, 안 대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업적은.

"많은 분이 정치인의 막말은 기억하지만,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김영란법 내가 통과시켰다. 내가 본회의에서 유일한 찬성 토론자였다. 내가 없었으면 통과 못 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는 공약을 했는데, 그때 내가 야당 공동 대표로 반대하는 사람들 설득해 통과시켰다. 신해철법(의료 사고 피해 구제법)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태로 야권 누가 나가도 대선 져"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급증하자, 안 대표는 의료 봉사에 참여해달라는 대한의사협회 문자를 받고 대구로 내려갔다. 의사 가운을 입고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 공개되자 호평이 쏟아졌다. 그는 "말만 하고 행동 안 하는 정치인에게 실망했던 분들이 성원을 보내준 거 같다"며 "부산에서 개인 병원 문을 닫고 간호사들에게 유급 휴가를 준 뒤 대구로 올라와 모텔방에서 숙식하며 봉사하는 의사를 만났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치인은 한 명도 안 오더라"고 말했다.

―칭찬과 함께 '정치 빼고 다 잘한다' '의사 하지 정치하지 말라'는 말도 나왔다.

"정치 세력의 왜곡이다. 의사는 한 명 한 명을 돕는 거고, 정치인은 우리나라 전 국민이 대상이다. 정치인으로 자격도 크다고 봐줬으면 좋겠다. 정치에서는 집요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상대방이 있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왜곡이 진실처럼 남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초반에 많이 부족했다. 그것도 실력이다. 반성한다. 이제는 당하지 않고, 뭐든 전투하듯이 '빡세게' '강하게' 투쟁할 거다."

―과거 인기가 많았을 때도 대선에 실패했는데, 돌아오는 대선에 기회가 있겠나.

"지금 야권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야권 혁신 없이는 누가 나와도 대선에서 진다. 영국의 노동당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로 집권했다. 우리도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최고 강점으로 '초심이 변하지 않는 정치인'을 꼽았다. "정치 시작할 때 문제의식·개혁의지 하나도 안 변했다. 그래서 일부 사람은 나를 만난 뒤에 '왜 그렇게 발전성이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초심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취도 하지 않고 발톱에 구멍을 뚫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미련한 것 아니냐고 혀를 찼다. 발전성이 없다는 힐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 변하지 않는 초심과 미련함은 결국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매력이자 약점이며, 동전의 앞뒷면이 아닐까. 분명한 건 하나. 그의 마라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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