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아깝다" 혈서 쓰는 캠퍼스..대학생들은 왜 화가 났을까

박준규, 송혜수 객원기자, 김지은, 한명오 인턴기자 2020. 6. 2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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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강의 들은 대학생 8명에게 물었다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연세인 총궐기 집회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성적평가제도 개선, 등록금 반환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왼쪽 위 사진). 나머지 사진은 학생들이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며 올린 혈서들. 연합뉴스, 에브리타임 캡처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자 일부 학생들은 대학에 등록금 환불을 요구했다. 지난해 강의를 똑같이 재생하거나 온라인 수업에 버퍼링이 걸리는 등 수업의 질이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등록금 환불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 학생들도 뜻밖에 많았다. 처음하는 것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비교적 너그러운 반응이었다. 대면보다 비대면 수업이 편하다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학생들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지나 종강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등록금 환불 요구는 대학 캠퍼스에서 이제야 불타오르고 있다. 한 학기 동안 불편을 체감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교무처와 총장에게 메일을 보내는 이른바 ‘총공’을 하며 불만을 터뜨렸고, 일부 대학생들은 혈서까지 썼다.

학생들은 3개월 동안 어떤 불편을 느꼈던 것일까. 등록금 환불을 원한다면 어떤 명분과 이유로, 얼마나 돌려받기를 원하는 걸까. 국민일보는 지난 19일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대학생들을 인터뷰했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캡쳐

“실습비 내고 실습실 구경도 못해”…非예체능 계열 대학

대학생들은 대면 수업보다 수업의 질이 나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모(25·경희대 인문대 4학년·등록금 370만원)씨는 “인문학 특성상 토론 수업이 많은데 사실상 토론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며 “대면 토론은 동시에 여러 명이 말을 해 오디오가 물리더라도 진행이 되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은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때그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너무 힘들다. 그만큼 학생들의 참여도도 낮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 특성상 출석 체크를 매번 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과제로 대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김씨는 온라인 수업 이후 과제 지옥을 맛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들이 과목당 일주일에 2개씩 과제를 낸다”며 “일주일에 많으면 과제 6~8개가 주어진다. 과제는 쏟아지는데 과제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다. 그냥 출석 체크 대신에 과제를 받는 식이다. 구색 맞추기로 진행하다 보니 과제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학습효과는 낮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적 오류로 인해 억울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예전에 출석을 100%로 했는데 시스템 오류로 인해 전산상에는 80%로 나왔다. 교수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하는데 메일도 전화도 안 받으셨다. 대면 수업은 이런 애로사항을 바로 말할 수 있는데 온라인 수업에서는 교수들과 연락이 안되다 보니 너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최모(24·공과대학 4학년·등록금 450만원)씨는 이번 학기에 6과목 전체를 비대면 수업으로 들었다. 그는 실습관리비 100만원을 포함해 등록금 450만원을 냈지만, 이번 학기에 실습실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최씨는 “공대 특성상 대부분 실습을 한다”며 “예전처럼 실습실에 모여서 작업을 할 수 없으니까 불편함이 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실습실이 작업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다”며 “팀플(레이)하기에도 편하고 교수님께 질문하기도 좋다. 오랫동안 계산을 돌려야 하는 경우에는 3박 4일 프로그램을 켜놓고 가기도 한다. 컴퓨터는 스스로 계산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습실 이용에 제한이 있다 보니 이 모든 과제를 개인 컴퓨터로 해야 했다. 그는 “개인 노트북에 커피를 쏟아서 에러가 난 적이 있었다”며 “평소였으면 조교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습실 컴퓨터를 썼을텐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으니 진땀이 났다. 돈은 냈는데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하나도 이용하지 못했다. 아무튼, 꾸역꾸역 과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간·기말 시험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최씨는 “필기시험의 경우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노출한 채 시험을 본다. 교수와 조교는 컴퓨터로 감독을 한다”며 “그런데 시험 볼 때 많은 변수가 있다. 모든 학생이 한 번에 접속해서 같이 올려야 하는데 중간에 튕겨서 답을 못 올리는 친구도 있었다. 리포트로 시험을 대체해도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공부한 만큼 실력 발휘를 못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비대면 수업에 나름 만족한 학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김모(23·체육관련학과 4학년·등록금 420만원)씨는 등하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걸 큰 장점으로 꼽았다. 수업의 질과 관련해서는 “교수 개개인의 역량에 달린 거여서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주는 교수의 경우 강의 질이 대면 강의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불편한 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김씨는 교수가 정해진 수업시간에 자료를 올려주지 않아 불만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3월 27일 오전 서울 노원구 광운대학교 앞에서 열린 코로나19로 인한 학습권 피해 노원지역 대학생 등록금, 입학금 환불운동 돌입 기자회견에서 노원지역 대학생이 수업 여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싼 재봉틀 돈 주고 샀다”… 예체능 계열 대학

실기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예체능 계열 대학생들의 타격은 더욱 컸다. 다른 학생들이 겪었던 것처럼 비대면 수업의 퀄리티도 당연히 떨어졌을뿐더러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추가 지출이 많았다.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해 수업을 포기한 학생도 있었다.

나모(25·실용음악과 2학년·등록금 390만원)씨는 시설 이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등록금에는 학교 시설 이용비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개인 연습실도, 녹음실도 이용시간 제약이 많이 생겼다”며 “특히 녹음실에서는 하루종일 수업이 진행된다. 이용시간도 줄었는데, 하루종일 수업까지 하니 녹음실을 거의 못 쓴다. 전공 실기에 제출할 곡을 녹음하려면 녹음실을 써야 하는 데 사용이 불가능하니 다들 홈 레코딩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씨는 “학교 녹음실은 스튜디오와 다를 바가 없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스튜디오 장비 가치를 따지면 몇천만원은 될 거다”라며 “반면 홈 레코딩에는 저렴한 장비를 쓸 수밖에 없다. 좋은 장비를 가진 학생들은 괜찮겠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녹음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근수(26·의류학과 3학년·등록금 410만원)씨도 “학교 강의실에서 재봉틀을 쓸 수 없어서 수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실 사용이 허용되긴 했지만 오후 6시면 문을 닫았다. 또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4학년들이 많아 과제에 제출할 의류를 제작하기가 어려웠다”며 “저 말고도 포기한 친구들이 몇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와 같은 과에 다니는 김모(25·의류학과 2학년·등록금 410만원)씨도 “실기 수업은 피드백이 중요한데, 그게 없으니 과제 진행이 어려웠다”며 “또 학교 강의실을 사용하지 못하니 비싼 돈 주고 재봉틀을 구입하는 친구가 많았다”고 전했다.

박모(체육학과 2학년·등록금 400만원)씨는 “체육학과 특성상 실습수업이 주를 이루는데 이번 학기는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다 보니 이론수업만 9주가 진행됐다”며 “이마저도 강의계획서대로 진행된 것이 아닌 교수님의 재량대로 진도가 나갔다”고 했다. 그는 또 “간혹 진행된 실습수업의 경우 수업 환경이 열악했다”며 “이번 학기엔 실습수업 중 육상수업을 수강했는데 마스크를 착용하고 뛰느라 기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학기가 과제와 퀴즈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출석 확인용 퀴즈와 과제를 수업시간마다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박씨는 “기말고사 대체과제로 5000자 이상의 리포트를 쓰는 것이 있었다”며 “이밖에도 과제와 퀴즈의 양은 상당했지만, 학업 성취 목적으로 이루어진 과제라는 느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수업에 장점이 있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A씨(23·연세대 음대 3학년·등록금 600만원)는 “영상 피드백을 받기 위해선 연주 영상에 품을 많이 들여야 했고,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전에는 연주 하나에만 신경 썼다면 지금은 리포트 과제가 생기면서 작곡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느는 등 지식의 폭이 넓어졌다”고 답했다.

다만 A씨도 “학과 특성상 강사 앞에서 연주하고 틀린 부분을 지적받은 뒤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비대면 강의에서는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 올려야 하는데 10분짜리 영상을 찍으려면 4~5시간가량이 소요됐다”고 하소연했다.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등록금 반환, 추경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업 질, 등록금 절반 가치도 없어” 혹평한 학생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19년 4년제 일반대학·교육대학 196곳의 등록금 현황과 강좌 수 등을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연간 약 670만 6200원이었다. 한 학생이 한학기 평균 15~18학점(5~6과목)을 수강한다고 계산했을 때 수업 한 과목에 매겨진 가치는 평균 55만~67만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취재한 학생 8명은 이번 학기 온라인 수업 한 과목당 가치를 평균 27만원(‘100원’ 응답 제외)으로 매겼다. 자신이 수강한 과목의 실제 가치가 지불한 등록금의 절반 이하라고 평가한 것이다. 개중에는 ‘100원’이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그만큼 비대면 수업의 질에 불만이 컸다는 얘기다.

불만은 점수로도 확인됐다. 학생들이 내놓은 비대면 수업 만족도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46.4점이었다. 최소점수는 30점이었고, 최고점수는 70점이었다.

박씨(체육학과 2학년·등록금 400만원)는 “일부 실기수업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학생을 위한 여건은 갖추지 않은 채 등록금 환불을 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 감행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실습과 같이 비대면으로 진행하기 어려웠던 과목들은 90퍼센트 이상 환불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환불액은 185만원

취재에 응한 대학생들은 모두 등록금 환불에 동의했다. “등록금 환불 주장에 동의한다면 얼마 정도 환불받고 싶은지”라는 질문에는 평균 185만원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등록금이 저렴한 인문대를 기준으로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액수다. 특히 실기 수업을 하지 못한 학생들의 환불 요구 금액이 높았다.

나씨(25·실용음악과 2학년·등록금 390만원)는 “비대면 수업으로 얻은 걸 말해보라고 하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학교 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25·의류학과 2학년·등록금 410만원)는 “서버 유지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등록금 환불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봤는데 1인당 400만원 정도의 돈을 받으면서 도대체 서버관리비에 얼마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며 “또 실기 수업들마저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설 이용료를 다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김씨(25·경희대 인문대 4학년·등록금 370만원)는 등록금 환불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당연히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는 “결국 학교도 학생들이 돈을 내고 교육 서비스를 구매한 것이다. 서비스 질이 떨어지면 그것에 대한 환불 요청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불을 못 받으면 내가 공정한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구매했다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강요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씨(24·공과대학 4학년·등록금 450만원)는 “학과 특성상 교수님께 질문을 많이 한다. 원래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 앞에 줄이 서 있을 정도”라며 “그런데 매일 메일로 구구절절 여쭙는 게 어렵다 보니 나중에는 안 하게 되더라. 팀플 과제 경우에도 하루 3~4시간씩 팀원들과 보이스톡을 잡고 이야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한숨이 나왔다. 정말 대면 수업에 비해 수업의 질이 낮아진 것은 맞다”고 했다.

A씨(23·연세대학교 음대 3학년·등록금 600만원)도 “연습실이 있는 학생은 다행이나, 연습실이 없는 학생은 개인적으로 추가비용을 내고 사설 연습실로 가야 한다”며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돌려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에서 국회까지 5박6일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부실수업에 따른 등록금 반환, 원격 수업 대책, 학생안전, 인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분노하는 학생들…반응 없는 학교

취재에 응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과 대자보 등을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이른바 ‘총공(총공격)’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답변을 받은 학생들은 없었다. 혈서까지 등장한 이유는 학생들의 불만 표출에도 학교가 응답을 하지 않았던 탓이다.

일부 대학생들은 자교 학생들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도 학생들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특히 총학생회에 대한 불만이 컸다. 일부 총학생회는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데,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건국대학교는 등록금 일부를 환불하기로 결정했다. 동국대학교는 ‘코로나 장학금’을 신설했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교는 재정 문제를 거론하며 등록금 환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 전언처럼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대학들도 많다. 정부 당국도 대학의 직접 해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떠넘기고, 대학은 모른 척 한다. 혈서 사태까지 부른 코로나 등록금 분쟁이 폭발한 이유일 거다.

박준규, 송혜수 객원기자
김지은, 한명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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