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 할인판매' 금지 이틀 만에..슬그머니 '없던 일'로 돌린 환경부

김보라/구은서/박종필 입력 2020. 6. 21. 17:38 수정 2020. 10. 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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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보도후 두차례 해명자료
'재포장 금지법' 원점서 재검토
사진=연합뉴스


환경부가 묶음 할인판매를 금지한 속칭 ‘재포장 금지법’의 시행(7월 1일)을 열흘 앞두고 시행 계획을 지난 20일 사실상 백지화했다. 식품·유통업계에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지 이틀 만이고, 한국경제신문이 이 같은 규제로 묶음 할인판매 등 마케팅 행위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보도한 지 하루 만이다. 환경부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규제 시행 시기 등은 22일 다시 발표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이날 배포한 ‘소비자 할인혜택은 그대로, 과대포장 줄여 환경보호는 강화’라는 제목의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공장에서 생산돼 나오는 할인판매 목적의 묶음상품 △판매현장에서 띠지 또는 십자형 띠로 ‘1+1’ 또는 ‘4+1’ 등의 형태로 묶어 파는 상품 △서로 다른 제품을 넣은 박스상품 등의 판매를 모두 허용한다고 밝혔다. 공장에서 바코드를 찍고 나오든, 판매현장에서 따로 띠로 묶어 팔든 묶음 할인판매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18일 주요 식품·유통회사 40곳과 간담회를 열어 △가격 할인을 위해 포장된 단위 상품을 2개 이상 묶어 추가 포장하는 행위 △사은품 등을 포장제품과 묶어 파는 행위 △가격 할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제품을 묶어 포장하는 행위를 모두 재포장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포장제품의 재포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묶음 할인판매가 안 된다는 환경부 가이드라인 때문에 묶음 할인 가격에 맞게 개당 용량을 줄인 제품까지 준비했었다”며 “환경부가 시장 상황을 너무 모르고 환경보호라는 명분에 집착해 규제를 밀어붙여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300조원 규모의 온·오프라인 유통업계와 100조원에 달하는 식품제조업계는 지난 1월 환경부의 재포장금지법 시행계획 발표 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부재와 혼선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환경부 오락가락 재포장 규제에 500兆 산업 '대혼란'

묶음 할인판매에 관한 규제가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환경부가 무리한 규제 추진으로 기업과 소비자 양측에 혼란과 고통만 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대형 식품회사 대표는 “국내 식품·유통·포장재 관련 시장 규모만 500조원이 넘는다”며 이런 거대 산업에 대한 규제 신설 과정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진행될 수 있냐”고 비판했다. 환경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원점에서 재검토해 시행시기를 22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500조원 산업 규제 이틀 만에 ‘말바꾸기’

환경부가 지난 1월 자원재활용법 하위법령으로 발표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재포장금지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재포장, 다른 하나는 과대포장 관련 규제다. 과대포장 규제는 앞으로 환경부 계획대로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재포장 관련 규제다. 규제 내용이 시도때도 없이 바뀌면서 업계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공장에서부터 바코드가 찍혀 나오는 묶음할인 상품이 대표적이다. 1월 환경부는 업계의 질의 응답에서 “통상적으로 묶음 상태에 바코드가 표시된 판매 상품은 재포장이 아니다”며 “공장에서 박스째 출고되는 맥주 6캔, 12캔, 24캔 상자 등은 판매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관련 업계는 이후 별도 지침이 없어 할인판매용 박스 제품에 대해서는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3일 상황이 크게 변했다. 환경부가 재포장금지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업계와 처음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다. 환경부가 이날 내놓은 ‘앞으로 금지되는 재포장 묶음 사례’에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묶음 상품 대부분이 포함됐다. CJ제일제당 ‘맛밤 1박스’, 샘표 ‘연두 2묶음’, 농심 ‘신라면 용기면 1박스’, 동원F&B의 ‘동원참치 4개묶음’, 요구르트 묶음 제품, 하이트진로의 ‘맥주 6팩’, 각종 샴푸 등 세제 2개 세트 등이 사진으로 나열됐다. 이렇게 제품을 박스 형태로 할인 판매하면 제조사와 유통사 모두에 300만원씩 과태료를 물리는 ‘양벌제’를 적용한다고 했다. 할인 프로모션을 마케팅으로 시행해온 관행을 1개월 만에 싹 다 바꾸라는 얘기였다. 환경부는 18일 가이드라인 발표 때도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했다.

상품을 띠지로 묶어 ‘1+1’ 또는 ‘4+1’ 형태로 파는 행위에 대한 규제도 ‘왔다갔다’의 연속이었다. 1월에는 불허했다가 이달 3일 간담회에서는 “한시적으로 띠 묶음 판매는 인정한다”고 물러섰다. 그러다 18일 가이드라인에서는 다시 안 된다고 못박았다.

포장 규제지만 가격 개입 아니다?

창고형 할인 매장에 대한 재포장 규제도 마찬가지다. 1월부터 불허 방침을 유지하다 18일 가이드라인 발표에선 규제 적용 예외 대상으로 뺐다. 온라인 채널의 재포장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 하고 끝냈다.

환경부는 18일 가이드라인 발표 후 업계와 언론에서 이 같은 ‘갈지자 행보’와 가격 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할인에 관한 안내 문구를 매대에 표기하고 낱개 상품을 싸게 파는 것, 공장에서 나올 때 이미 묶여 나오는 대용량 포장 제품, 테이프 띠지로 둘둘 말아 할인하는 묶음 제품 등을 모두 허용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여전히 환경부가 시장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테이프로 둘둘 말아 묶음 할인하는 건 허용한다’는 방침과 관련해 “요구르트, 김, 캔 음료 등은 외부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띠 포장보다는 박스나 비닐로 재포장할 필요가 있다”며 “테이프로 묶어 팔면 식품 포장의 기본인 안전과 위생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상품본부장은 “묶어서 팔 때 할인을 못 하게 가격 규제를 했기 때문에 200mL 우유를 번들용으로 싸게 만들려고 190mL 패키지까지 제작했다”며 “지난 2주간 연간 영업계획을 전면 재수정하는 등 혼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김보라/구은서/박종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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