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의료진에 경의"..화성으로 '감사패' 띄운다

이정호 기자 2020. 6. 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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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0일 발사될 화성 탐사로봇 '퍼서비어런스'에 부착

[경향신문]

미국의 화성 탐사선 ‘퍼서비어런스’ 동체에 부착될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알루미늄판. 코로나19에 대응한 의료진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최근 유인 비행에 성공한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2017년 야심찬 화성 정착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르면 50년, 늦어도 100년 안에 지구인 100만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현재는 수개월에 걸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만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다.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매우 엄격해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을 가진 군인들이 유리하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초기에 공군 조종사들이 우주비행사로 주로 뽑혔던 이유다.

지금은 과학자 등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도 임무를 수행하지만, 아직도 훈련받지 않은 ‘보통 사람’을 쉽게 수용할 정도로 우주 비행이 일반화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달에 기지를 만들기 위한 미국 등 각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고, 달을 발판으로 화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에도 탄력이 붙고 있어 100만명 이주라는 목표가 꿈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시각이 나온다. 무엇보다 창의력을 가진 민간기업이 앞다퉈 우주를 새 사업 영역으로 개척하고 있어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방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확산에 일부 시설 폐쇄로
한때 발사 계획 차질 우려 대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알루미늄판
1977년 이후 40년 만에 재부착

“미래 세대들이 화성에 와서
2020년의 지구 기억해주길”

만약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화성에 터를 잡은 우리 후손들은 수십년 뒤 화성의 황무지를 산책하다 2020년의 지구를 떠올릴 ‘물체’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다음달 20일(현지시간) 발사될 화성 탐사로봇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를 설명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NASA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퍼서비어런스 동체 왼편에 독특한 표식을 붙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표식은 가로 8㎝, 세로 13㎝의 판자 형태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이며 재질은 알루미늄이다. 여기에는 지팡이를 휘감은 뱀이 지구를 떠받치는 형상이 그려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그에게 사람을 살리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준 한 뱀에 관한 전설을 함축하고 있는 그림이다. 지팡이와 뱀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각 국가의 의무부대, 의료단체 등의 상징물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바치는 일종의 감사패인 셈이다.

이번 화성 탐사선 계획의 부책임자인 매트 월라스 NASA 제트추진연구소 박사는 “우리의 희망은 미래세대들이 화성에 와서 2020년 지구에 코로나19와 싸웠던 의료진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 윤 NASA 홍보대사(엘카미노대 수학과 교수)는 “지구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한 적이 있다는 기록을 남기는 의미도 있다”며 “후대에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꼭 필요한 기능만 담아 최대한 경량화시켜야 하는 우주 탐사선에 이처럼 인문적 의미를 담은 물건이 붙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퍼서비어런스의 알루미늄판과 유사한 사례로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2호에 금으로 도금된 지름 30㎝짜리 동판이 부착된 적이 있다. 이른바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인데, 여기엔 지구의 위치 등을 겉에 새겼고 내부에는 각국의 언어, 아기 울음 같은 생활 속 소리, 고전 음악 등을 담았다.

광대한 우주를 감안하면 자동차만 한 크기의 보이저호를 외계 생명체가 발견할 확률은 대단히 낮다. 이 때문에 ‘골든 레코드’는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평이 많았다. 제작을 지휘한 인물도 스테디셀러 <코스모스>의 작가이며 과학 대중화 활동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었다.

40여년 만에 인간의 향기를 풍기는 금속판이 다시 우주 탐사선에 붙기까지는 사실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올해 초만 해도 코로나19 때문에 퍼서비어런스의 발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NASA 안팎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NASA는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올해 3월부터 재택근무를 실시했으며, 그런 가운데 필수 인력을 중심으로 탐사로봇 조립 작업을 이어갔다. 화성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는 올해 8월까지 발사할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다음 기회는 2022년에나 찾아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최근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유럽우주국(ESA)과 러시아가 협력해 준비하던 화성 탐사 계획은 미뤄졌다. 기술적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국 연구진의 대면 회의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어려워지면서 기민한 대응에 실패한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짐 브리덴스타인 NASA 국장도 “탐사선을 보관하면서 다음 기회인 2년 뒤를 기다려야 했다면 5억달러(약 6000억원)의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지구의 기억을 몸에 붙인 채 한 달 뒤 화성으로 향할 퍼서비어런스가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선조의 모습을 전해줄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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