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미투'..정보사 2명 성착취, 군검찰 2차가해

입력 2020. 6. 22. 09:38 수정 2020. 6. 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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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낯선 땅에 도착한 30대 여성, 국군정보사령부 두 남자의 ‘그루밍 성착취’

경기도 안성 하나원에서 북한이탈여성들이 교육받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2009년 7월8일 개원 10주년을 맞아 통일부가 하나원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19년 기준 북한이탈주민 3만3523명이 남한에서 살고 있다(통일부). 여성은 2만5276명(75%)으로 남성(8247명)의 세 배다. 여성 1인 가구도 26.6%나 된다.

불행히도 북한이탈여성 25.2%는 ‘자유의 땅’ 남한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는다. 음란전화(26%), 성추행(20%), 성희롱(18%), 스토킹(17%), 성기노출(17%), 강간미수(15%), 강간(11%) 등 피해 유형도 다양하다.(여성가족부 2017년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용역보고서, 조사 대상 북한이탈여성 158명) 2012년 같은 설문조사와 비교해보니 “음란전화 등 제외하고 모든 영역(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성기노출 등)에서 성폭력 피해가 증가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소극적이다. 자리에서 도망치거나(15%), 당하고 있거나(13%), 무조건 빌고 애원하는(11%) 식이다. 저항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10%)은 드물고 경찰 신고는 거의 없었다. 성폭력이 처벌되는 범죄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에서 보복당할까봐 두려워서다.(전수미 변호사)

그럼에도 용기 내어 다른 길을 선택한 북한이탈여성이 있다. 2010년대 중반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여성 한서은(30대 초반·가명)씨는 2019년 12월 국군정보사령부 군인 2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에 고소했다. 혐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이다. 북한이탈여성의 #미투다.

하지만 군검찰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답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당시 상황을 녹음한 음성을 듣도록 해 ‘플래시백’(재경험)이라는 2차 가해를 안기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 조처는 거부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한씨는 공포와 자살충동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에 기름을 부은 사건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에서 출발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이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법원이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한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법원’만 새겨야 할 글귀가 아닐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 사회’로 주어를 바꿔도 틀리지 않는다. _편집자 주

4월28일 오후 2시18분께.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별관 3층 조사실. 성폭력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북한이탈주민 한서은(30대 초반·가명)씨가 출석했다. 앞서 몇 차례 조사 때는 보지 못한 노트북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녹음파일을 하나 듣고 조사를 시작하지요.” 군검사의 말에 한씨가 물었다. “무슨 녹음파일인가요?” “들어보시면 압니다.” 군검사가 자리를 뜨고 한씨는 동행한 변호사와 함께 녹음파일을 재생했다.

“국가 일을 하는 사람이니 믿어도 된다”

2019년 1월21일, 그날의 악몽이 흘러나왔다. 녹음 내용은 한씨의 기억과 달랐다. “국군정보사령부(국군정보사) 군인으로 음성파일을 조작하는 데 능한 가해자가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했으리라” 그는 짐작했다. 진위와는 별개로 녹음파일은 지우고 싶었던, 기억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그날’을 휘저어 건져올렸다. 한씨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금 자살충동이 일었다. 성폭력 피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지난해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던 터였다. 하루 두 알씩 먹던 약을 세 배로 늘렸는데도 우울증, 불면증은 한씨의 일상을 뒤덮었다. 군검찰 조사실에서 녹음파일이 재생되는 40여 분, 한씨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2010년대 중반, 남녘 땅을 처음 밟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비극이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던 북한 중산층 한씨는 10여 년 전 부모님을 여의고 탈북을 결심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혼자 압록강을 건넜다. 강물에 흠뻑 젖은 몸으로 벼랑을 기어올라 맨발로 내달렸다. 그렇게 국경을 넘어 제3국을 거쳐 남한에 도착한 한씨는 12주간 하나원 교육을 받고 ‘대한민국 시민’이 됐다.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20대 여성에게 다가온 이들이 있다. 먼저 ‘신변보호담당 경찰관’(신변보호관)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을 감시하려고 만든 경찰청 보안국 신변보호관을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적응을 돕는 ‘지원자’로 여긴다(참조: 신변보호경찰은 ‘아버지’ 같았다). 한씨도 신변보호관을 그렇게 따랐다. 북한의 한 무기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그에게 신변보호관은 미국인을 소개하며 무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라고 했다. 의심 없이 그 미국인을 한 차례 만났고 수십만원의 사례비를 받았다.

2016년 6월 신변보호관은 신영기(가명)씨를 소개했다. “북한에서 일하던 당신의 일터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사람이다. 국가 일을 하는 사람이니 믿어도 된다.” 한씨가 미심쩍어하자 신변보호관이 덧붙였다. “지난번 (미국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면 된다.” 일회성이라 생각해 신씨가 정확한 소속이나 직급을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다만 그의 정보력에는 깜짝 놀랐다. 북한에 있는 친동생(한씨가 일했던 무기연구소 근무)에 대해 물었고, 한씨의 개명 전 본명을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한씨는 “그의 위세에 눌렸”다. 한씨가 “믿는 신변보호관이 믿으라” 했고 “남한에 온 이상 조금이라도 기여해야겠다 싶어 (신씨에게) 협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2017년 5월3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대운동장에서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하는 ‘남북어울림한마당 통일한마음축전’을 열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정체 밝히지 않은 그 사람, ‘윗사람’처럼 느껴

신씨는 국군정보사 소속 중령이었다. 거의 매일 연락하고 한 달에 두세 번 만났지만 한씨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통일부나 국가정보원에서 일하는 국가공무원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나이도 많고 북한 보위부와도 관계 있어 보이는 신 중령을 한씨는 ‘윗사람’처럼 느꼈다. “권위와 재력을 과시해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 중령은 한씨를 북한 정보의 고구마줄기로 활용했다. 한씨가 가진 정보를 캐내더니 그 정보가 바닥을 드러내자 북한에 있는 한씨 동생과 연락하도록 했다. ‘정보 소스(출처)’였던 한씨가 새로운 정보 소스인 동생과 연결하는 ‘정보 매개자’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2017년 12월 신 중령은 자신의 팀 부하인 고승현(가명) 상사를 데려와 “우리 팀에서 가장 잘생겼고, 입이 무거운 친구”라고 소개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때부터 신 중령의 지시를 받은 고 상사가 한씨에게 연락했다. 만남은 한 달에 두세 번, 전화와 문자는 더 자주 오갔다. “두 사람(신 중령과 고 상사)은 한 팀이어서 (고 상사는 신 중령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 같았다.” 고 상사와 신 중령은 때로 함께, 때로는 따로 한씨 집 근처에 찾아와 밥과 고기를 사줬다. 명절 때는 선물도 챙겨줬다. 북한의 음식이나 문화 등을 이야기하고 자기소개서 작성법이나 취업하는 방법, 면접 잘 보는 방법 등도 가르쳤다. 고 상사와 신 중령은 “‘우리를 오빠처럼, 아빠처럼 여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늘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결국 일이 터졌다. 한씨 동생이 무기연구소 정보를 남한 국군정보사 군인에게 제공한 사실이 북한 당국에 발각됐다. 동생은 보위부에 끌려갔다. 다둥이 가정의 가장인 동생이 체포되자, 한씨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되기 전에 돈을 써 보위부 단계에서 동생을 빼내야 했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신 중령과 고 상사에게 화가 났지만, 한씨 힘만으로는 동생을 도울 수 없었다. 다시 국군정보사 군인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신 중령은 조건을 내걸었다. “동생이 (북한 무기연구소에서) 하던 일을 대신해서 해줄 사람을 찾아라. 또 정보를 제공해줄 다른 북한이탈주민을 소개해라. 그러면 (동생 구출을) 도와주겠다.” 절박한 마음에 신 중령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고 상사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2018년 5월, 한씨는 동생 구출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고 상사와 만났다. 저녁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 2차 술집으로 이어졌다. 술에 약한 한씨는 금세 취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텔이었다. 옆에는 고 상사가 누워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따져묻는 한씨에게 고 상사가 말했다. “그냥 쿨하게 생각해.”

억울함과 분노가 쌓였지만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잘 모르는 한씨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술에 취한 자신만을 탓했다. 이후 2019년까지 고 상사는 “한씨를 업무상 보호 내지 감독하는 특수한 지위에 있으면서 그 위력을 이용해 수차례 한씨를 간음했다”(한씨 고소장). 신 중령도 한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신 중령이 요청한 대로 한씨는 다른 북한이탈주민을 소개해주는 자리를 2019년 1월 마련했다. 저녁 식사와 더불어 술을 마시고 그 북한이탈주민은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날 신 중령과 한씨 사이에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일어났다.

북한의 가부장 문화 정서를 알고

동생은 끝내 구출하지 못했고, 생사를 알지 못한다. 한씨는 성병에 걸리고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임신중절수술을 겪었다. 고 상사가 유부남이고 아들도 있다는 사실은 두 번째 임신을 한 뒤에야 알았다. 2019년 7월, 한씨의 두 번째 임신중절수술 때 고 상사는 병원비와 수술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건넸다. 임신중절수술을 마치자 고 상사는 한씨에게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신 중령도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고 상사가 (군에서) 잘리고 그 가족이랑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잘 판단하라’고 했고, 고 상사도 난리를 치며 서명을 재촉”해 한씨는 결국 동의하게 됐다. 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합의자(한씨)는 합의 대상(고 상사)과 만나는 동안 일어난 불미스러운 모든 일들에 대해 합의금으로 500만원을 받고 원만히 합의했으며 차후 일체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한다.” 이 합의서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공증을 받았다.

합의서를 쓰고 사흘이 지난 뒤 고 상사가 “생활비·용돈이 없다”며 합의금 500만원을 돌려달라고 연락했다. ‘나를 지금까지 이용했구나. (합의서를) 공증했으니 내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보고 돈을 달라는 거구나.’ 국군정보사 군인들이 자신을 농락했다는 걸 확인한 한씨는 당하고만 있지 않기로 했다. 경찰에 찾아가고 국방부 헬프콜에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조사받으며 2018년 5월에 있었던 고 상사의 행동이 준강간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이탈주민을 꾸준히 지원해온 전수미 변호사를 만나 2019년 12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 등으로 고 상사와 신 중령을 군검찰에 고소했다.(참조: 왜 ‘북한이탈여성 성착취’는 숨겨지는가) 전 변호사는 “업무상 감독 또는 보호 지위에 있는 현역 군인들이 우리 사회의 ‘을 중의 을’인 북한이탈여성 한씨에 대해 1년 넘게 성착취를 했다. 북한에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범해지면 ‘정조’를 잃게 돼 그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 문화가 남아 있는데, 고 상사와 신 중령은 이러한 정서를 알고 국가권력을 이용해 한씨를 장기간 쾌락의 도구로 삼은 범행을 했다”고 고소 취지를 설명했다. <한겨레21>은 가해자 쪽에 반론을 요청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북한이탈여성들이 겪는 남한 내 성폭력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북한이탈여성 158명 중 25.2%가 “남한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탈북 과정에서의 성폭력 피해(26.8%)보다는 조금 적지만, 북한 내에서 성폭력 피해(18.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성폭력 피해 유형은 성추행(39.9%)이 가장 많고 강간미수(15.1%)와 강간(10.5%)이 뒤를 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거나 죽었으면 한다”는 응답이 절반(50%)을 차지했다. 실제 자살 시도도 21.7%나 있었다.

한씨 피해 사실을 조사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2019년 11월 기소 의견으로 군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당시 고 상사와 신 중령이 직무에서 배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군검찰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당시 상황을 녹음한 음성을 들려줘 ‘플래시백’(재경험)이라는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인 피해자 보호 조처를 받지 못한 탓에 한씨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전수미 변호사(맨 왼쪽)와 김종대 정의당 전 의원이 2019년 12월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군정보사령부 현역 군간부들의 북한이탈여성 성착취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군검찰, 신변보호 요구도 거부

피해자 쪽 변호인은 군검찰이 한씨에게 범행 상황의 녹음파일을 들려준 것은 ‘군검찰이 피해자 신문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 또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신문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국방부 훈령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군검찰 조사 때 한씨와 동석한 전수미 변호사는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담당했지만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에게 범행 관련 영상이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은 처음 봤다. 그 자체가 굉장한 2차 가해다. 수사기관이 (피해자 보호 조처에 둔감한) 군검찰이고 피해자가 (을 중의 을인) 북한이탈주민이라서 어처구니없는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씨는 울먹이며 말했다. “녹음파일에 대한 진술이 필요했다면 녹음 내용을 문서화해 (군검사가) 질문할 수도 있었다. 굳이 성폭력 당시 상황을 국가기관이 내게 직접 들려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가해자의 혐의가 피해자의 강한 저항 등이 인정돼야 하는 ‘강간’이 아니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점에서도 녹음파일 청취는 불필요한 절차였다는 비판에 힘을 싣는다. 신 중령이 녹음파일을 군검찰에 제출한 것은 성폭력 과정에서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 사실은 피해자도 다투지 않는다. 전 변호사와 함께 한씨의 법률 지원을 맡은 양태정 변호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감독(신 중령)-피감독(한씨) 또는 보호-피보호 관계라서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어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범죄행위는 국군정보사 군인들이 북한이탈여성에게 선물과 식사, 생활의 도움 등으로 장기간 친밀감을 쌓으며 이뤄진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이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기에 피해자의 강력한 저항 여부는 쟁점이 아니다. 그럼에도 군검찰이 (녹음파일 청취라는) 필요 없는 수사 절차를 밟아 피해자에게 심각한 인격적 모멸감을 줬다.”

군검찰의 수사 과정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초 한씨 쪽은 군검찰에 피해자 보호 조처를 요구했다.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가해자들이 보복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경찰은 경찰청 훈령(‘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에 따라 피해자가 신변 보호를 요구하면 가해자에 대한 구두나 서면 경고, 피해자 주거지 순찰 강화와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위치추적과 긴급도움요청(SOS)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 제공 등 보호 조처를 한다. 하지만 군검찰은 한씨에 대한 피해자 보호 조처를 거부했다. “그런 보호 절차가 군검찰에는 없다”(전수미 변호사)고 했다. <한겨레21>은 군검찰의 피해자 신변 보호 조처를 문의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군에서는 경찰청 훈령처럼 피해자 신변 보호를 위한 명문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가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 경찰의 협조를 받아 신변 보호 조처를 한다”고 했다. 결국 군검찰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한씨에게 신변 보호 조처를 했어야 함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사이 가해자로 조사받는 신 중령은 카카오톡 프로필에 ‘복수의 칼을 갈며’ ‘끝까지 가서 칼질한다’ ‘끝까지 간다. 다음은?’ 등의 메시지를 올려놓았다. 한씨의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구를 향한 글인지 특정돼 있지는 않지만, 고소 전에는 전혀 없었던 메시지다. 또 다른 가해를 받지 않을지 공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산다. 고통스럽다.” 군검찰 수사에 대한 피해자 쪽 비판과 관련해 <한겨레21>이 반론을 요청하자, 수사를 담당하는 군검사는 “수사 사무와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모든 것은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가부장적인 북한 문화에 익숙한 북한이탈여성들은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이 짙다. 한씨도 국군정보사 군인들의 행위가 처음엔 범죄가 되는 줄 몰랐고, 수치심에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다 한국의 미투 운동과 성범죄 피해를 다룬 책들을 보며 마음을 바꿔먹었다. 한씨가 읽은 책 중 대만계 미국인 위니 리가 쓴 <다크 챕터>가 있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힐스를 하이킹하던 중 성폭행당한 뒤 삶이 완전히 달라진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위니 리는 이렇게 적었다.

“성폭행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수치심은 여러분을 침묵하게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은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성폭행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저도 해냈고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도 해냈습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왜 군검찰에서  성범죄 수사를가해자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고 피해자 보호 조처도 받지 못한 북한이탈주민 한서은(가명)씨는 왜 군검찰에서 성폭력 피해 수사를 받아야 했을까. 범죄 가해자가 군인·군무원이면 피해자가 민간인이라도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현행 군사법 제도 탓이다. 군형사사건 중 80% 이상은 교통·폭력·성범죄 등이지만, 군사기밀보호법·국가보안법·군형법 위반 등 ‘순정 군사범’의 비율은 10%대에 그친다.(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 보고서) 이렇게 군의 특수성과 관련 없는 다수의 형사사건을 오직 가해자의 신분이 군인·군무원이라는 이유로 군검찰에서 수사하고 군사법원에서 재판한다. 심지어 군인·군무원 신분이 되기 전에 저지른 범죄라도 군 입대 등으로 신분이 바뀌면 군사법원으로 넘어간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당할 수 있는 인권침해나 불편함은 고려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다. 군검찰 내부 문제도 계속 지적됐다. 군검사와 군법관은 대부분 3년간 의무 복무를 하는 단기 법무관으로 구성됐기에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 2020년에 임관된 장기 법무관(10년 이상 근무)은 22명, 단기 법무관은 88명이다. 장기 군법무관으로 근무했던 이용호 변호사의 설명이다. “장기 법무관의 경우 군사법 업무뿐만 아니라 행정, 기획 등의 보직으로 순환 근무한다. 진급할 때도 정책부서에 근무한 경험이 유리하다. 한 사단에 군검사가 1명뿐이다. (군법무관인) 사단 법무 참모는 (수사를 맡지 않아) 군검사를 교육하거나 지시할 수 없다. 경험 많은 수사관이 돕지만 군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 여성 장기 군법무관의 수가 늘어나는데도 성범죄 전담 부서를 따로 두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임관한 장기 군법무관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2019년 장기 군법무관 임관자 23명 가운데 여성이 절반이 넘는 13명이었고, 2018년에는 12명(임관 22명), 2017년에는 15명(임관 21명)이었다. 여러 문제가 드러나면서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2014년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때 대한변호사협회가 개최한 ‘군 사법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최강욱 당시 변호사는 ‘군사법 제도 법률의 폐지’라는 주제발표에 나섰다. “군사법원 운용은 사법권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 군사법원의 설치는 해외 파병이나 국외에서의 전쟁 수행이 상시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면 군 수뇌부의 특권을 인정하는 것 외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또 군인과 민간인이 공범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나 피고인이 재판 진행 중에 전역하면 관할법원이 달라져 재판의 비효율이 발생한다. 더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민간법원과 군사법원을 오가야 하는 불편함도 무시할 수 없다.” 2020년 1월 국회입법조사처는 군사법원을 폐지·축소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군 사법제도 개선 논의 및 향후 과제’ 보고서를 내놨다. “헌법은 일반 국민이 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할 뿐, 군인과 군무원의 모든 범죄가 언제나 군사재판 대상인 것은 아니다. 군사법원 제도를 폐지하거나 1심만 유지하도록 축소할 필요성이 있다.” 결국 국방부는 5월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군사재판 1심 선고에 불복할 경우 서울고등법원이 항소심을 맡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에는 군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군검찰부가 설치된 부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 국선변호사를 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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