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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거센 볼턴 회고록..'편향된 시각' 우려에 '리벤지 포르노' 혹평도

조성민 입력 2020. 06. 2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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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외교전서 내밀한 비화 폭로 / 美 내부는 물론 백악관서도 비판 쏟아져 / 대북 외교를 '완전한 실패'로 매도..사실 왜곡했다는 지적도 / CNN "백악관에 있을 때 침묵하다 이제야 말하는 건 회고록 홍보"
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18일(현지시간) 촬영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의 표지.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의 외교안보사령탑이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공개되자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후폭풍이 거세다. 가뜩이나 북미, 남북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협상들을 볼턴이 회고록을 통해 거세게 헐뜯었기 때문이다. 전직 백악관 최고위급 인사의 회고록이지만 검증이 어려운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볼턴 전 보좌관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간될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2차례에 걸친 북미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 한미 정상회담과 정상 간 통화를 비롯해 북미, 한미 간 외교전의 막후에서 일어난 내밀한 비화들을 폭로했다.

회고록을 보면 대북 강경론을 주장해온 네오콘 출신의 볼턴 전 보좌관이 철저하게 자신의 시각에 근거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치적 가운데 하나인 북미협상을 깎아내리는 데 주력한 모습이다. 사진과 각주를 포함해 570페이지에 달하는 회고록에는 남북한을 통틀어 ‘코리아’란 단어가 743번 등장한다. 현재 무역분쟁은 물론 군사와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벌이는 중국, 즉 ‘차이나’라는 단어는 299번 등장하는데 이에 비하면 2.5배 많은 수치다. 특히 볼턴은 한반도 문제가 미 외교정책 전면에 등장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미, 한미 정상 간 비공개 대화가 낱낱이 공개되는 등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간 외교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겉으로는 친분을 과시하면서도 등 뒤에서는 김 위원장을 ‘거짓말쟁이’로 부르고 “더 많은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신뢰 구축은 허튼소리”라고 맹비난한 점 등은 북한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에 협상의 신의가 깨졌다는 이유로 판을 깨고 나설 명분을 준 셈이다. 

한미동맹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에 대해 “조현병 같은 생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등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폄훼했고,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북미 관계의 ‘방해자’로 몰아가며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카운터파트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나눈 대화 내용도 여과 없이 노출했다.

대북 외교 전체를 ‘완전한 실패’로 매도하는 데 몰두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고록이 볼턴 전 보좌관의 ‘메모’에 근거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관계와 생각이 뒤엉켜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데다 대북 매파의 시각으로 ‘각색’됐다는 점에서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정 실장은 22일 “(회고록이)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으며 이는 전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측에 전달된 상태다.
2018년 5월 9일에 백악관 국무회의실에서 연설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 워싱턴=AFP연합뉴스
미국 내부는 물론 백악관 고위급에서도 볼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21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볼턴의 회고록을 “리벤지 포르노”라고 비난하며 “새빨간 거짓말쟁이인 그는 돈을 위해 이러는 것이 확실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볼턴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볼턴의 주장에 대해 “나도 그 방에 있었지만,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라며 “함께 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CNN은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거론될 수 있는 여러 행위를 목격하고도 백악관에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와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며 볼턴에게 증언을 간청할 때 그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회고록을 홍보하고 있다”며 “볼턴도 국가를 배신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볼턴의 회고록은 자기비판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러 중대한 결점 가운데 하나”라며 “거의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신이 옳고, 잘 안될 줄 알았으니 (자신은) 죄가 없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018년 3월22일부터 지난해 9월10일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백악관 외교안보사령탑으로 재직했다. 그는 2000년대 초 당시 부시 행정부가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할 때부터 활동했던 네오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초강경 매파로 알려진 볼턴은 북한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온 ‘리비아 모델’(선 비핵화, 후 보상)의 주창자로, 북한은 한때 그를 ‘인간쓰레기’, ‘흡혈귀’ 등으로 불렀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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