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포장 금지'제도, 시행 직전 내년으로 연기된 이유는

김한솔 기자 2020. 6. 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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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환경부가 22일 시행을 열흘 앞둔 ‘재포장 금지’ 제도의 집행을 내년 1월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재포장 금지와 관련한 세부지침에 대해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한 뒤,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이번 결정은 주말동안 일부 경제지들을 중심으로 나온 환경부의 ‘재포장 금지’ 규정에 따라 마트에서 ‘1+1 가격 할인’이 사라지고, 화장품을 살 때도 사은품이나 샘플을 받는 것도 금지된다는 보도들이 발단이 됐다. 보도가 나온 뒤 환경부는 “가격 할인과는 상관없는 제도”라는 해명을 몇차례 했지만, 결국 법 집행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 규칙은 1년6개월 전 입법예고됐고, 올해 초 개정된 것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재포장 규정이 담긴 법령과 그동안 환경부가 냈던 보도자료, 22일 브리핑 등을 토대로 살펴봤다.

21일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묶음 포장된 라면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재포장 금지의 목적은? 포장폐기물 줄이기

재포장 금지 규정은 올해 1월 공포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들어가 있다. 이 규칙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하위 법령이다. 이 규칙의 목적은 이렇다. 포장폐기물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포장재질과 그 방법에 관한 기준을 규정하는 것. 이 규칙의 11조 ‘포장제품의 재포장 금지’의 적용대상은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자, 대형마트 등 규모가 큰 마트들이다. 대형마트들에선 이미 포장된 채로 생산된 제품을 판촉을 위해 다시 한 번 비닐 등으로 ‘재포장’을 할 때가 있다. 재포장 금지는 이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어려운 규정이어서, 환경부는 따로 예외 고시를 만들기로 했다. 이 고시는 지난 5월 ‘포장제품의 재포장 예외기준 고시(안)’으로 행정예고 되었다. 이 고시에서는 재포장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단위제품, 종합제품을 2개 이상 함께 포장한 경우”, “증정품, 사은품 등을 함께 포장한 경우”. 이에 대해 업계에서 ‘구체적 사례’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자, 환경부는 업계에 설명을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안)’을 만들었는데, 이 내용을 토대로 한 보도들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 ‘재포장’만 안하면 얼마에 팔든 상관없어

재포장 금지에 관한 시행규칙, 고시안 어디에도 제품의 ‘할인의 방식’이나 ‘가격’ 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그럼 ‘2000원짜리 2개를 4000원에 파는 건 되고, 3900원에 파는 건 안된다’는 이야기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업계 설명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의 예시에 가격이 언급됐다. 이 가이드라인은 재포장에 해당하는 경우를 ‘1+1, 2+1 등과 같이 판촉을 위해 포장된 단위 제품을 2개 이상 묶어 추가 포장하는 경우’로 규정한 뒤, 그 예시로 ‘2000원 판매제품 2개를 묶어 2000원 판매: 재포장’을 들었다. 이 부분의 핵심은 ‘추가 포장’이다. 2000원짜리 제품 2개를 1+1로 2000원에 팔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에 팔든 상관없이 ‘추가 포장’을 해서 팔지 말라는 것이다. 우유 1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판촉을 할 때, 굳이 우유 2개를 비닐에 넣어 ‘재포장’ 하지 말고, 그냥 포장 없이 1개를 더 주면 된다는 것이다. 기준이 공장에서 처음 나올 때부터 ‘이미 포장된 채로 생산된’ 제품을 재포장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에, 라면처럼 몇 개가 하나의 봉지에 포장되어 나오는 것들은 재포장 규제 대상이 아니다. 어떤 제품의 사은품이나 샘플도, 굳이 그것을 증정하기 위해 비닐로 싸지 않고, 그냥 주면 된다. 이 내용이 잘못 알려지면서 지금의 논란이 벌어졌다.

환경부는 굳이 ‘판촉’을 언급하며 가격 예시를 든 이유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불필요한 재포장이 지속되는 주된 이유는 구매 유인을 위해 (가격 할인을 강조한) 개별 제품의 묶음 포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결국 재포장 금지 제도 집행은 내년 1월로

환경부는 22일 브리핑을 열고 재포장 세부지침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환경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과대포장은 원점에서 재검토할 대상이 전혀 아니고, 7월1일부터 시행은 되지만 집행을 유예하게 되는 것”이라며 “업계와의 협의에서도 가이드라인에 대해 상당부분 접근이 됐는데, 집행시점을 6개월 정도 늦춰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앞으로 3개월(7~9월)간 제조사와 유통사, 시민사회, 소비자,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재포장 금지 세부지침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의견 수렴 뒤 3개월(10~12월)은 업계를 위한 ‘적응 기간’을 거칠 계획이다. 제도는 반년 당초 예정보다 미뤄진 내년 1월부터 집행된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재포장 금지 규칙을 지지한다”며 “우리나라는 생활폐기물 중 포장폐기물이 약 57%를 차지하고, 코로나19로 쓰레기 발생량 증가와 비닐류 재활용 사용 하락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다. 재포장 금지는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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