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구강미생물이 대장에 진출할 때 일어나는 일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0. 6. 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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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입 냄새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입 냄새의 90%는 혀나 치아, 잇몸에 존재하는 막인 플라크(바이오필름)에 거주하는 구강미생물이 먹이(음식물 찌꺼기나 죽은 세포)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외출할 때 마스크를 챙기는 게 일상이 됐다.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지만 이로 인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바로 입 냄새다. 마스크 한 장으로 최소한 하루는 버티다 보니 오후에서 저녁으로 갈수록 마스크를 착용할 때 구취로 추정되는 냄새가 점점 더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내 입에서 입 냄새가 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마스크에 배어있는 냄새에 신경이 쓰여 양치질을 열심히 하고 구강청결제까지 찾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실제로 별문제가 없는 데 과민 반응을 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사실 입 냄새로 고민하는 사람의 절반은 대화할 때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2007년 입 냄새 주범 밝혀져

위나 폐에 문제가 있어도 입 냄새가 날 수 있지만, 십중팔구는 구강미생물이 입 냄새의 원인이다. 혀나 치아, 잇몸에 사는 미생물 가운데 일부가 먹이(음식물 찌꺼기나 죽은 세포)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달걀 썩는 냄새가 나는 황화합물 같은 휘발성 물질을 내놓기 때문이다. 혀에 백태가 많이 끼는 사람일수록 입 냄새가 날 확률이 높다.

지난 2007년 혐기성 세균 솔로박테리움 무레이(Solobacterium moorei)가 입 냄새의 주범으로 밝혀졌다. 입 냄새가 있는 사람 13명의 구강미생물 메타게놈 분석 결과 13명 모두에게서 이 박테리아가 존재했다. 반면 입 냄새가 없는 사람 8명 모두 이 박테리아가 없었다. 솔로박테리움 무레이가 치주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실 필자 역시 입 냄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치질로는 불충분하다고 해서 2~3년 전부터 치실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무심코 왼쪽 위 어금니 사이를 지나간 치실을 코에 가져가 보니 냄새가 꽤 났다. 그런데 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아래 어금니 사이를 청소한 치실에서는 그런 냄새가 없었다.

그 뒤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됐다. 심지어 다른 쪽에서는 치실에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나와도 냄새가 안 나는 반면 왼쪽 위 어금니 사이는 치실이 깨끗해도 냄새가 났다.  치아 또는 부근 잇몸 표면에 냄새가 배어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과다. 

이런 현상은 필자가 구강미생물의 생태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구강미생물도 장내미생물처럼 박테리아(세균)와 아케아(고세균) 수십~수백 종이 얽히고설켜 입안이라는 거주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구강에는 늘 액체(침)가 존재하고 혀가 움직이기 때문에 미생물 조성은 동적 평형을 이뤄 전체적으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식물 찌꺼기의 양에 따라 미생물 밀도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냄새 분자의 양이 다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구강의 특정 영역에서만 냄새가 난다는 건 한 사람의 입안에서도 구강미생물 생태계가 여럿 존재한다는 뜻 아닐까. 마치 성을 차지한 것처럼 어떤 계기로 필자의 왼쪽 위 어금니 주변에 솔로박테리움 무레이 같은 입 냄새 미생물이 자리를 잡았고 다른 곳에서는 우점종인 미생물도 공략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냄새에 신경이 쓰이고 치주질환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딱히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병원에 갔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왼쪽 아래 어금니가 약간 욱신거리고 잇몸도 좀 부은 것 같아 치과를 찾았고 간 김에 코로나19로 올봄엔 건너뛴 스케일링도 받았다.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루 만에 왼쪽 아래 어금니 상태가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위 어금니 사이를 청소한 치실에서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코가 잘못됐나 싶어 저녁에 치실을 쓸 때마다 확인하고 있는데 확실히 안 난다. 양치질, 치실질에 치간칫솔질까지 해봤지만 소용이 없던 입 냄새가 홀연히 사라진 원인이 무엇일까.

가능성은 두 가지로 보인다. 먼저 처방받은 항생제가 입 냄새 유발 미생물을 죽인 것이다. 실제 솔로박테리움 무레이가 필자가 복용한 항생제의 한 성분인 메트로니다졸에 취약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다른 하나는 치아 표면에 붙은 플라크, 즉 음식물 찌꺼기와 미생물의 혼합물인 바이오필름(biofilm)이 스케일링으로 제거되면서 입 냄새 유발 미생물의 근거지가 사라진 것이다.

필자의 왼쪽 위 어금니 주변 영토를 지키며 살아가던 입 냄새 유발 미생물이 항생제(또는 스케일링)라는 천재지변을 만나 세력이 크게 약해진 상태에서 미처 회복되기 전에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다른 구강미생물의 침입에 궤멸된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필자로서는 이 냄새 나는 녀석들을 쫓아낸 미생물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구강미생물이 입안에서만 영토싸움을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대장까지 진출해 그곳의 거주민들(장내미생물)과 싸움을 벌이고 드물게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그 결과 이들이 정복한 영토(대장)까지 초토화시킨다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매일 1조 마리 넘게 삼켜

몇몇 구강미생물이 입 냄새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07년 혐기성 세균인 솔로박테리움 무레이가 주범으로 드러났다. 녹차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인 EGCG가 솔로박테리움 무레이의 바이오필름 형성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녹차를 마시는 게 입 냄새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까? 위키피디아 제공

사실 구강미생물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소화관으로 진출한다. 우리가 침이나 음식물을 삼킬 때 딸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인이 하루에 삼키는 구강미생물이 무려 1조5000만 마리로 추정된다. 다만 위가 강산성으로 워낙 혹독한 환경이라 중성인 입안에 적응해 살던 미생물은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소수는 살아남아 소장을 거쳐 대장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구강점막과 비슷한 대장점막이 있어 정착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장내미생물이라는 거주민이 침입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 결과 구강미생물과 장내미생물은 인체를 나눠 각자의 영토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염증성장질환(IBD) 환자의 장내미생물 메타게놈을 분석한 결과 몇몇 구강미생물이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클렙시엘라(Klebsiella)속(屬)과 엔테로박터(Enterobacter)속에 속하는 종들로, 구강에서도 염증이 있을 때 우점종이 되는 경향이 있다. 입안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녀석들이 대장에서도 말썽을 부린다는 말이다.

6월 16일 학술지 ‘셀’ 홈페이지에 이들 구강미생물이 대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논문이 공개됐다. 미국 미시건대 내과학과 카마다 노부히코 교수팀은 평소 장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 구강 건강까지 안 좋아지면 구강미생물이 장으로 넘어와 장의 문제가 악화될 수 있음을 동물실험(생쥐)을 통해 보여줬다.

연구팀은 무균 생쥐를 대상으로 구강의 건강상태에 따라 구강미생물이 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먼저 구강에 문제가 없을 경우 무주공산인 대장에 진출한 구강미생물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반면 어금니 하나를 실로 묶어 치주염을 유발한 생쥐의  구강미생물은 대장에 가서도 염증을 일으켰다. 치주염이 생기는 과정에서 우점종이 된 미생물은 앞서 언급한 클렙시엘라속 3종과 엔테로박터속 2종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하는 생쥐에서는 어떨까. 구강이 건강한 생쥐는 말할 것도 없고 치주염이 있는 생쥐에서도 대장염이 유발되지 않았다.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건강하다면 염증 유발 구강미생물의 침입을 거뜬하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의 절반 이상이 치은염이나 치주염을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은 대장염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다음으로 DSS라는 약물을 투여해 대장염을 유발한 생쥐를 대상으로 구강미생물의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구강이 건강한 상태에서 대장염이 유발된 생쥐에 비해 치주염이 있는 상태에서 대장염이 유발된 생쥐는 증상이 더 심했다. 분변의 메타게놈을 분석한 결과 후자에서 클렙시엘라속과 엔테로박터속 구강미생물이 훨씬 더 많았다. 이 녀석들이 대장염을 악화시켰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여러 분석 기법을 써서 치주염 관련 구강미생물이 대장염 증상을 악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구강미생물에 면역계가 휘둘려

최근 미국 미시건대 연구자들은 치주염(oral inflammation)을 일으키는 구강미생물(oral pathobiont)이 대장염(gut inflammation) 증세도 악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먼저 직접 경로(direct pathway)로, 구강미생물이 대장으로 이동해 정착하면서 이곳의 대식세포(Mϕ)를 자극해 염증반응을 유발한다. 다음은 간접 경로(indirect pathway)로, 구강미생물에 반응하는 면역세포(Th17)가 림프관을 따라 장으로 이동해(gut homing) 이곳에 정착한 구강미생물을 발견하고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 대장의 염증이 심해진다. 셀 제공

치주염은 미생물과 면역계 활동의 부정적인 결과다.  어금니를 실로 묶어 클렙시엘라속과 엔테로박터속 구강미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이 녀석들의 밀도가 높아지면 면역계가 이를 인식해 대응하는 과정에서 염증이 유발된다. 여기에는 수지상세포(DC)와 Th17세포라는 면역세포가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침이나 음식물과 함께 삼켜져 위로 들어가 운 좋게 살아남은 치주염 유발 구강미생물이 대장염으로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부실한 장 환경까지 만나면 어렵지 않게 대장점막에 자리를 잡게 되고 때때로 장벽 세포 사이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때 골목을 지키고 있는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이 녀석들을 만나면 염증반응을 유발하는 물질(IL-1β)을 분비한다. 

한편 구강에서 치주염 유발 구강미생물에 반응한 Th17세포는 림프관을 통해 대장벽에 이르기도 한다. 대장이 건강한 경우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염증이 있어 치주염 유발 구강미생물이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는 이를 인식해 역시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 대장염 증세가 악화되는 것이다.

‘이가 좋은 게 오복의 하나’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오복(五福)에는 치아 건강이 포함돼 있지 않다. 치아를 잃으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옛날 치아 상태가 오복의 하나인 장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속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주염 같은 구강질환이 구강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관련 구강미생물이 혈관으로 들어가 전신으로 퍼지면서 심혈관계질환이나 당뇨병, 심지어 치매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대장처럼 기존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하는 장기조차 상황에 따라서는 구강미생물의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 평소 대장이 안 좋은 사람은 물론이고 위산분비 과다로 위산억제제를 자주 복용하는 사람들도(위에서 살아남는 구강미생물의 비율이 높아진다) 구강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로 매년 정기적으로 받던 스케일링을 건너뛰었다면 이번 기회에 구강 건강을 챙기기 바란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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