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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위 옆에 묻어주오"..70년 약속 지킨 육군 장군

남효정 입력 2020. 06. 23. 20:16 수정 2020. 06.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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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육군 소위 김의 묘' 국립 현충원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이 묘비가 40년 만에 이름을 찾았습니다.

그 유해를 발굴하고 이름까지 찾아준 이는 함께 참전한 동료였습니다.

군 생활을 장군으로 마친 이 동료가 오늘 장군 묘역이 아닌 동료 김 소위 옆에 묻혔습니다.

그 사연을 남효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조총발사."

예비역 준장 황규만 장군의 영결식.

유골함을 땅속에 묻고 흙으로 덮자 중년이 된 아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립니다.

백발의 막내동생도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고 황규만 예비역 준장 동생] "오빠 편히 가세요. 자주 못 봬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황규만 장군이 영면에 들어간 곳은 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장병 묘역.

그것도 이름 없는 묘, '육군소위 김의 묘' 옆입니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사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황 장군은 소위로 전쟁에 투입됐습니다.

그때가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경북 안강지구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모두 1천 5백여 명의 젊은이들이 산화한 이 전투에서 황 장군은 전우 김 소위를 잃었습니다.

이름도 몰랐던 전우를 나무 밑에 묻고 또다시 전투에 나섰던 황 장군은 14년 뒤인 1964년 자신이 묻고 표식을 해 두었던 그 자리에서 김 소위의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곧바로 국립묘지에 안장했고, 지금까지 명절마다 먼저 간 전우를 챙겨왔습니다.

그리고 전우의 이름을 찾기 위해 평생을 찾아다녔습니다.

[황규만/장군 (2007년 6월 뉴스데스크)] "'이름을 찾으면 넣자' 해서 이름 두 자, 빈칸을 놔둔 거지."

황 장군은 수소문한 끝에 26년 만에 '수영'이라는 김 소위의 이름과 가족도 찾았습니다.

[황성돈/황규만 장군의 아들] "본인이 당연히 해야할 걸 했다고 이런 식으로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찾아줘야지' 하는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황 장군에게는 마지막 바람이 있었습니다.

[황성돈/황규만 장군의 아들] "1년에도 몇 번씩 여기 찾아와서 '본인이 나중에 죽으면 여기 꼭 묻히겠다'고 항상 말씀하시고."

자신의 부대를 도우러 왔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전우 곁.

그곳에 끝까지 함께 남겠다는 거였습니다.

[황규만/장군 (2007년 6월 뉴스데스크)] "김 소위를 놔두고 내가 혼자 어떻게 가요. 같이 있어야지… 내세에 가서 김 소위를 만나면 김 소위가 나한테 아마 술 한번 잘 살 거야."

70년 세월 넘게 변치 않은 두 군인의 전우애는 이제 죽음을 넘어 영원히 함께하게 됐습니다.

MBC뉴스 남효정입니다.

(영상취재: 정인학 / 영상편집: 정지영)

남효정 기자 (hjhj@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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