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갑질 복지부의 오리발

안영 기자 입력 2020. 6. 24. 03:16 수정 2021. 1. 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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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질병관리본부 페이스북에 ‘코로나19 팩트체크’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가 ‘임시생활시설 방역업체 등의 단가를 깎고 지급을 미뤘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시작하는 그 글은, 그날 아침 본지 보도 ‘정부의 코로나 방역비 후려치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팩트체크'는 '가짜 뉴스'였다. 지난 10일 기자는 '코로나 급할 땐 부려 먹고… 전세버스값도 안 주는 정부'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정부가 해외 입국자의 격리 시설 수송에 전세버스를 2100여 대 동원해놓고 석 달째 대금을 지급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지적한 내용이다. 그러자 보건복지부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사실 아직 방역 소독 업체를 비롯해 더 영세한 업체들에도 대금 지급을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기자는 후속 취재에 나섰다. 해외 입국자 격리 시설에서 방역 활동을 하고도 정부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영세 업체들을 수소문했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11~12일 사이 해당 업체에 전화를 돌려 뒤늦게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업체들은 "조선일보에 '전세버스비 미지급' 기사가 나간 다음 날 갑자기 복지부에서 전화가 왔다"며 "3개월 내내 수십 통을 전화해도 안 받던 정부가 웬일로 돈을 주겠다더라"고 전했다. 사연을 들은 뒤 추가 취재를 거쳐 '정부, 영세업체 상대로 갑질'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정부 발주 용역 대금이 3개월씩 지연된 점과 그 과정에서 행해진 '가격 후려치기'를 지적했다.

복지부는 즉각 '해명 자료'를 냈다. "'용역업체 20여곳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었지만, 사실 본지 기사엔 그런 대목 자체가 없었다. 또 복지부는 기사에 이미 써놓은 내용(일부는 최근 대금을 받은 것)을 마치 새로운 사실인 양 제시하며 보도가 틀렸다는 식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기사를 읽지 않은 사람은 속기 십상이었다.

복지부가 해명 자료 배포에 그치지 않고 해당 내용을 '팩트체크'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리자 그 아래에 댓글이 여럿 달렸다. 그중에서도 "저희가 현재까지 용역 대금을 받지 못한 업체"라고 소개한 게 압권이었다. 그는 "현재 대금을 지급받은 업체들도 후려친 단가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받은 것"이라면서 "복지부는 3월부터 연락을 주겠다고만 하고 감감무소식이라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했다.

왜 그런 가짜 홍보 자료를 냈을까.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17일 ‘전신방호복이 너무 덥지 않냐’는 국회 지적에 “언론에서 계속 전신방호복 사진만 나오니까 의료진이 선호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의사든 국민이든, ‘속이면 쉽게 속는 존재’라고 그들은 믿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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