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들끓는 인천공항 '벼락 신분상승'..정치에 휘둘린 정규직화

김기찬 2020. 6. 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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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년 전 인천공항 찾아
'비정규직 0' 선언 강렬한 이벤트
노동시장 다양성 무시 일방과속
해결책 없는 노노·취준생 갈등만
공항 일러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산하기만 하던 인천국제공항이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안이 발표된 뒤다. 당사자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취업준비생과 자회사 정규직, 정부와 경영계, 학계까지 가세해 점입가경이다. 졸지에 ‘알바하다 무시험 채용’의 벼락 신분상승을 통보받은 쪽은 축제 분위기, 나머지는 모두 분노하는 모양새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은 1400여 명이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되는 인원은 이보다 많은 1900여 명이다.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겨우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 시험도 없이 다 (정규직) 전환하는 게 공평이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공사 사태는 따지고 보면 현 정부 노동정책의 부작용 종합판”(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그 장소가 인천공항공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연을 맡았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강렬한 이벤트였다.

정부 ‘비정규직은 악’ 단정 … 해법 꼬여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의 선언에선 정권의 이념이 읽혔다. 사회와 노동시장, 경제를 보는 시각이다. 신분제다. 격차 해소가 아니라 신분제로 접근했다. 비정규직 자체를 악(惡)으로 단정하고 부정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노동 존중이란 명분을 덧칠했다. 노동시장에는 노동자도 있지만 사용자, 정부, 취업준비생, 실업자, 경제활동 포기자 등이 얽혀 있다는 점을 간과한 듯했다. 노동자는 약자라는 논리만 지배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생각에 토를 달지 않았다. 유일하게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던 김영배씨가 조목조목 잘못을 들췄다.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3단 경고가 날아들었다. 맥없이 물러났다. 이후 경총은 후임 부회장의 전횡 등 내홍을 겪으며 지금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현 정권의 파트너인 한국노총의 당시 위원장이던 김주영(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씨까지 문 대통령의 선언을 듣고 “큰일 났다”고 여겼다. “정부가 너무 앞서간다. 노동정책이 일방 과속하고 있다. 공감을 못 얻고 해법이 꼬였다”고 진단했다.

‘일방 과속’은 과정의 정의, 기회의 평등을 어그러뜨렸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시장의 다양성을 외면했다. 다카야스 유이치(高安雄一) 다이토분카대 사회경제학부 교수는 “파견과 같은 비정규직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정규직 고용 기회가 늘어나기보다 오히려 실업을 유발하거나 파트타임과 아르바이트 등 더 낮은 근로조건의 일자리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의 대규모 정규직화에 대해 취준생 등이 반발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일자리가 있는 자는 더 좋게, 없는 자는 더 낙담’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정규직 전환 압박, 다른 공기업도 불똥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고임금 일자리를 무차별적으로 나눠 먹기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에 선망의 대상인 공기업의 개혁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무급으로 전환한다면서 말만 무성하다. 불공정 프리미엄만 난무한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공사 사태로 다른 공기업에 정규직 전환 압박이 더 심해지는 것과 동시에 엉뚱한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국내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올해 1월 보안·특수 경비인력을 자회사(항공보안파트너스㈜)를 세워 정규직으로 흡수했다. 무려 2100명이다.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관계자는 “보안파트너스 쪽의 들썩임이 심상찮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설립 후 첫 임금·단체협상 와중에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전해졌다”며 “폭탄을 맞은 기분”이라고 전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경영이나 경제가 배제된 정치적 인사관리다. 공정성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가 확 늘어나는데, 정부 예산상 총 인건비 규모는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발 정치가 경영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곳(인천공항)에 대한 예산 배정이 우선순위로 등장하게 될 것이고, 총 인건비가 정해져 있으니 돌려 막기는 불가피하다. 다른 공기업 경영 문제로 후유증이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노노(勞勞)갈등이다. 벌써부터 기존 노조와 정규직 전환을 앞둔 비정규직의 충돌이 심상찮다. 당분간 진정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더욱이 향후 시험을 치러 정식 절차를 밟아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까지 갈등에 가세할 우려도 있다.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될 조짐이다. 신분제 정책으로 탄생한 신분제형 노노갈등의 고착화다. 노사갈등보다 위험한 게 노노갈등이다. 노동자끼리 충돌하면 대책이 없다. 경영진이 개입하거나 다룰 사안이 아니어서다. 조직이 돌아갈 리 없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불만 표출을 넘어 분출한다. 집단적 양상으로 번지는 건 불문가지다. 그래서 노노갈등을 ‘경영의 최대 난적’ ‘회사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 말말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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