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자 스스로 입증하라".. 6·25참전용사 가족 '전쟁은 진행형'

수원=강보현 기자 2020. 6. 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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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아버지 '명예찾기' 수십년.. 6월만 되면 가슴 먹먹
6·25전쟁 참전군인이었던 강기정씨의 딸 강옥심씨가 지난 2월 광주가정법원에서 받은 친생자 인정 소송 2심 승소 판결문. 70년간 전쟁고아로 살았던 강씨는 부친의 기록을 찾아 3년간 재판을 거친 뒤 지난달 29일 호적에 등재됐다. 강씨 소송대리인 제공


“6·25전쟁은 저에게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6·25전쟁 전상군경의 아들 이성근(60)씨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58년 만에 아버지의 병적기록을 찾아 유공자 인정을 받고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해 1심에서 승소했으나 국가의 항소로 2심이 진행되고 있다. 6·25전쟁 70주년임에도 우리 사회에는 이씨처럼 참전 기록을 스스로 찾고 소송을 통해 참전자로의 대우를 힘겹게 찾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씨 부친은 전쟁 중 왼쪽 팔에 관통상을 입고 전역한 전상군경이다. 서른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씨가 두 살 때였다. 이씨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는 늘 긴팔 옷만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동사무소를 다니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맸으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답변만 받은 채 돌아와야 했다. 이씨 부친은 존재하지 않는 유공자였고, 이씨는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

이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7년 국민신문고에 요청했고 육군본부가 가까스로 부친의 병적자료를 찾아냈다. 생년월일과 이름이 잘못 적힌 것이 수십년간 부친을 찾지 못한 이유였다. 찾아낸 명부에는 생년월일에 사선이 그어져 10월 7일생이 3월 4일로 바뀌어 있었다. 한자를 오기해 본명 ‘이제한(閒)’은 ‘이제문(問)’으로 적혀 있었다.

이씨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 지난해 승소했다. 하지만 국가의 항소로 곧 2심에 들어갔다. 국가는 “병적부를 찾기 위한 이씨의 노력이 충분치 않았으며, 당시 어지러운 전시 상황이라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우리가 찾기 전에 국가가 먼저 찾아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스스로 유공자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해 운 좋게 기록을 발견했는데도 재판이 이어져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변론을 담당한 윤소평 변호사는 “필기 하나 잘못해 온 가족이 한평생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면서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에 대한 예우는커녕 정부체계가 불안정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 의뢰인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70년간 전쟁고아로 살아오던 강옥심(70·여)씨는 6·25전쟁 참전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마침내 찾아 지난달 29일 호적에 등재됐다. 강씨가 두 살 때 부친은 전투 중 사망했다. 모친은 떠나고 강씨는 할아버지 손에 키워졌다. 7살 때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참전군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강씨는 글도 읽을 줄 모른 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혼인 후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려고 동사무소에 갔던 강씨는 본인이 호적조차 없는 채 살아온 것을 알게 됐다. 강씨는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누가 때려죽여도 모르겠다’고 했다”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전사로 호적에 이름도 못 올린 것”이라고 회상했다. 서울, 대전의 현충원을 돌며 묘비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찾았으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강씨는 2017년 죽기 전 마지막으로 부친을 찾겠다고 마음 먹었다. 결국 손자의 도움으로 부친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사실을 알아냈다. 그간 찾지 못했던 이유는 집에서 부르던 이름 ‘강영록’이 아닌 호적 이름 ‘강기중’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살아 있는 아버지 형제와 유전자 검사로 친자임을 입증받고, 기존 호적을 말소한 뒤 70년 만에 유공자의 딸이 됐다. 이 과정에 재판에만 3년이 걸렸다.

강씨는 “며칠 전 현충원에 가서 ‘아버지 진짜 딸 왔소’라고 외쳤는데 아무 말이 없더라”며 “평생 소원은 이뤘지만 아버지를 찾으려 애쓴 수십 년 세월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70년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는 이들은 6월 25일이 돌아올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음 달 2일 항소심 선고를 앞둔 이씨는 “보훈의 달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항소 권력을 남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막강한 권력이 있는 국가 앞에서 나약한 국민은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의 명예와 헌신을 되찾고 1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희생을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수원=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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