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앙일보

"외교관 상습 성추행" 폭로 직원 벌금형. 대법서 뒤집힌 이유

이가영 입력 2020. 06. 25. 12:01 수정 2020. 06. 25. 14:08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pixabay]

“주영국대사관에서 공사를 역임한 Y는 여직원과의 스캔들은 물론이고, 회식 후 여직원의 몸을 만지며 성추행을 일삼았다. 2004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던 Y는 공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여성들을 희롱했다.”

주영국대사관 직원이었던 A씨는 2016년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 사이트에 해외 대사관 소속 고위 외교관들의 비위 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여기에는 특정 외교관을 ‘Y’로 지칭하며 그가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년 후 A씨는 Y 외교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4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던 Y.”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Y외교관이 술집에서 여기자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었고, 이로 인해 품위손상을 이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소문이 존재하는 정도인데 Y외교관을 상습적으로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희롱하는 사람으로 단정적 표현해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며 벌금 150만원 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더 많은 부분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여직원과의 스캔들은 물론 회식 후 몸을 만지며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부분도 무죄로 본 것이다. 성추행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 B씨는 “2009년 런던 홀본 지역 가라오케 빈방에서Y 외교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구체적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반면 Y 외교관은 “2009년 직원들과의 회식 당시 술에 취하여 노래방 이후의 구체적 행적은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말해 2심 재판부는 피해 여성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다. 또 Y외교관이 교민사회에서 여직원과 불륜 관계에 있다는 스캔들이 퍼져 국정원의 감찰을 받기도 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2심 재판부는 “해당 내용이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다소 과장이 존재하더라도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수많은 여성들을 희롱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B씨 외에 다른 여성을 희롱했는지에 대한 근거 없이 Y 외교관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 50만원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2부(재판장 박상옥 대법관)는 이마저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명예훼손죄가 적용되려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외교관은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국민의 검증과 비판이 될 수 있는 점 ▶A씨와 Y 외교관 사이에 개인적인 감정으로 비방할 동기가 없는 점 ▶고위 외교관들의 권한 남용과 비위 행위 등을 공론화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취지로 게시글을 작성한 점 등을 들어 A씨 글이 Y 외교관을 비방하려는 게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작성한 글의 모든 부분을 무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25일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