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연기된 퀴어퍼레이드에 '온라인 퀴퍼'..매해 따라온 '혐오'도 같이 이동

조문희 기자 2020. 6. 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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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dotface)’가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이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향한 일상의 차별에 저항하고 자긍심을 드러내는 축제다. 매년 6월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개최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잠정 연기됐다. 닷페이스가 이번 온라인 행사를 기획한 배경이다.

■‘온세상이 퀴어로 가득해’

닷페이스는 지난 23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를 제안하고 참여 방식을 알리는 게시물을 올렸다. 모바일에서 인터넷 주소창에 ‘pride.dotface.kr’을 입력하면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문구가 적힌 첫 화면에 접속할 수 있다. 화면 하단에 뜬 시작 버튼을 클릭하면 ‘오늘은 퀴퍼 가는 날, 우리 같이 준비해요’ 화면이 등장해 ‘이름 또는 닉네임’ 설정을 권한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마련한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의 한 장면(왼쪽). 첫 장면에서 시작(start) 버튼을 누르고 나면, 자신의 이름 또는 닉네임을 설정하는 화면이 나온다(오른쪽). 닷페이스 갈무리


닉네임 설정이 끝나면 ‘오늘 기분은 어때요?’ 질문이 나온다. 기분에 따라 자신의 캐릭터가 짓는 표정이 달라진다. 이어 원하는 머리 스타일·색감, 상·하의 의상 등을 고를 수 있다. 휠체어·오토바이 등 탑승 수단, 선글라스 등 아이템도 선택할 수 있다. 무지개 깃발을 비롯한 성적 지향에 따른 깃발이나,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온 세상이 퀴어로 가득해’ 등 슬로건이 적힌 깃발도 손에 쥘 수 있다. 캐릭터 설정이 끝나면 해당 캐릭터가 도로를 나아가는 듯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용자들은 이 이미지를 다운받아 각자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피드에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온라인퀴퍼’ 등 해시태그(#)를 달고 올린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해시태그들을 검색하면 사람들이 올린 각 캐릭터 이미지들이 연결돼 도로 위에서 다함께 행진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화면 가운데 도로 위 점선이 표시돼 있고, 좌우엔 세로로 반쯤 잘린 화살표가 나타나 다른 사람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응은 뜨거웠다. 캠페인 홍보 3일째인 25일 정오까지 2만4000여명의 참가자가 인스타그램에 ‘#온라인퀴퍼’ 해시태그를 달아 인증샷을 올렸다. 일부 출판사 등 여러 공식 계정이 퀴어 퍼레이드에 가상의 부스를 차린 이미지를 따로 제작해 피드에 올리기도 했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6월이면 퀴어문화축제에 파트너사로 참여해 왔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모이기 어려워진 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퀴어 혐오가 심각해지기도 해서 고민이 있었다”면서 “1년 중 짧게 퀴어의 자긍심을 드러낼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해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과거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에서 한정판 신발을 판매하며 도입했던 온라인 줄서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장애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캐릭터 아이템에 휠체어 등을 추가했다. 개별 캐릭터 이미지 속 화살표는 작년 서울 퀴어문화축제 당시 행진한 을지로~광화문 구간의 도로 위 화살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 대표는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는 슬로건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다. 퀴어들 입장에서는 같이 걸어가는 길 자체가 없었던 길이다. 같이 모일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오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같이 해보자는 의미도 담았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온라인퀴퍼,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등 문구를 해시태그(#)를 달아 기입하면,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의 인증샷을 볼 수 있다. 경향신문 사건팀 팀원 4명도 사진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닷페이스 갈무리


■온라인까지 따라붙은 혐오

매해 퀴어 퍼레이드마다 나온 방해와 혐오도 함께 온라인에도 따라붙었다. 일부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온라인퀴퍼’ 등 해시태그를 단 뒤 혐오성 짙은 글을 올렸다. ‘게이남은 사기결혼 그만해라’, ‘여혐퀴퍼를 불매합니다’, ‘쓰까 OUT’(쓰까는 ‘섞는다’의 부산 방언. ‘쓰까페미’는 여성 인권만이 아니라 퀴어, 빈곤, 장애인, 동물, 난민 등 여러 인권 의제에 관심을 갖는 페미니스트를 지칭) 등 흰색 문구를 빨간색 바탕화면 위에 적어 게시했다.

이들이 해시태그를 달아 게시한 글은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동행 사이사이 끼어들고 방해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들 중 일부를 업로드한 ‘열다북스’는 대표적인 TERF(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래디컬페미니즘)인 국지혜씨가 이끄는 출판사다. 국씨 본인도 #여혐퀴퍼 #여자가여자다 #여성해방 등 해시태그를 달고 글을 올렸다.

조 대표는 “행진 자체를 방해하거나 사람들이 왜 이 행진에 참여하려 하는지 그 의미를 흐리려는 시도”라며 “비판의 논리가 분명하다면 모르겠는데, 그보단 즐거운 순간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더 느껴진다”고 했다. 닷페이스는 24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게시물을 올려 “개별적, 집단적으로 차별과 혐오가 담긴 게시물을 의도적으로 업로드하는 행위를 중단하기를 단호히 말씀드린다”며 “혐오 표현 게시물에 닷페이스가 기획한 행사의 해시태그를 다는 것은 이 행사에 함께한 분들이 들인 노고와 취지에 명백히 반하는 행위”라고 했다. 동시에 ‘우리의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캐릭터 아이템에 추가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일부 이용자들이 퀴어퍼레이드와 게이의 존재 등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아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연대의 뜻으로 기입한 #온라인퀴퍼,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등 해시태그(#)를 사용해 행진을 방해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닷페이스 갈무리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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