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위 올려 태운 노모..한국군이 담은 전쟁의 아픔

김학휘 기자 입력 2020. 6. 25. 19:48 수정 2020. 6. 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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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보시는 건 6·25 전쟁 때 우리 군의 정훈장교였던 고 한동목 중령이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진들입니다. 치열했던 전투의 한복판에서, 또 처참한 학살 현장에서, 또 무너지고 사라져버린 삶의 터전에서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미군이나, 외신 기자가 아니라 한국 군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70년 전 대한민국이 겪었던 비극의 상처를 당시 사진들을 통해서 되짚어보겠습니다.

김학휘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기자>

6·25전쟁 발발 두 달 뒤 경북 영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후퇴하는 군을 따라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 

머리 위에 하나씩 짐을 이고, 남쪽으로 향합니다.


노모를 지게에 올려 태우고 가는 피난민 모습에서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갑자기 시작된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습니다.

유엔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고 평양 너머까지 북진했지만,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습니다.

1년이 지나도 전쟁은 계속됐고, 끝날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북한군에게 학살된 시신 옆에서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당시 약 3천만 명의 남·북한 전체 인구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3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전쟁 3년 1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됐습니다.

판문점에서는 포로 교환이 이뤄지고, 그렇게 한국전쟁은 서서히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어떻게든 복구하고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6·25전쟁 행사, 국군은 승전 기념식 하듯,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목욕탕이며, 면사무소며 주민들이 이용할 건물도 새로 지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전쟁 이전의 삶으로 되돌려 놓으려 힘을 합쳤지만,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로 여전히 우리 삶 옆에 있습니다.

(영상편집 : 박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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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휘 기자hw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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