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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총알 속 버틴 나날들..여자 의용군들의 기억

조윤하 기자 입력 2020. 06. 25. 20:36 수정 2020. 06. 2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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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전쟁 70주년 관련 보도 이어갑니다. 3년간의 한국전쟁에는 2천500명에 이르는 '여군'도 참전했습니다. 첩보 수집과 북한군 귀순 설득, 모병 활동을 한 전쟁의 숨은 영웅들인데, 절반 가까이는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윤하 기자가 이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1950년 9월, 춘천여고 1학년이던 정기숙 할머니는 친구 셋과 함께 여자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최전방 부대에서 선전업무를 맡은 정 할머니는 험난한 북진 과정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정기숙/6·25 전쟁 여자 학도의용군 : 인민군 패잔병들한테 습격도 받고. 또 인민군들이 길에다가 지뢰를 묻어서 차가 망가져서 차도 한번 바꾸고….]

압록강까지 도착한 뒤 통일을 눈앞에 뒀다는 기쁨도 잠시, 이틀 뒤 중공군에 포위됐습니다. 

[정기숙/6·25 전쟁 여자 학도의용군 : 따발총이 날아오는데, 비 쏟아지는 것 같았어요. 앞에 사람 쓰러지지, 뒤에 사람 쓰러지지….]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 1차 공세 때 포로로 잡혔다가 겨우 돌아왔지만 함께 입대한 친구 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살 때 여자 의용군에 입대한 이복순 할머니.

9사단에서 행정업무를 맡았는데,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면서도 군 서류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이복순/6·25 전쟁 여자의용군 2기 : 카빈 총 아시죠, 그걸 주시면서 거기에 27발인가 들어가나요. 그것도 모자라 30발을 또 저한테 주셔요.]

육·해·공군·해병대는 물론 군번 없이 학도의용군이나 민간간호대, 유격대로 참전한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6·25 전쟁 참전 여군은 2천500명.

이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절반이 조금 넘는 1천427명뿐입니다.

지원부대 소속이 많아 전공기록이 적다 보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고, 참전 사실을 적극 알리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대부분 아흔 안팎인 6·25 전쟁 참전 여군들, 생존자가 더 줄기 전에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서진호, 영상편집 : 황지영, 화면제공 : 국방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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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하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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