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문 대통령, 북에 계속 관여하는 게 중요"

황준범 입력 2020. 6. 26. 05:06 수정 2020. 6. 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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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프로그램 현 수준 봉인이 최선
압박 귀결은 전쟁..군사해법 없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누구? 브루스 커밍스(77)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1981년, 1990년)이라는 기념비적 저서로 한국전쟁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소련의 책임에 무게를 둔 전통주의 시각을 거부하고, 1945년 해방 이후 지속된 한반도의 좌우 내전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한 이렇게 된 데에는 친일파 기용 등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게 그의 견해다. 1990년대 옛 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돼 ‘김일성이 스탈린의 승인을 받았고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하지만 커밍스 교수는 “1950년 6월25일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느냐보다는 어떤 맥락에서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소신을 유지하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1967~68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 선린중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동료이자 제자인 한국계 우정은 박사와 결혼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등 저서가 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도 “학생 90명이 참여한 두 과목의 봄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77)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4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뛰어넘어 북한에 가장 많이 관여했다(engage)”며 “문 대통령이 북한에 계속 관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커밍스 교수는 1981년 발간한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한반도 전문가로,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이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북 사이 긴장을 고조시킨 데 대해 “미국에 신호를 보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을 끌려 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을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본다”고 짚었다. 그는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최대한의 압박이 북한의 행동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며 “최대 압박의 논리적 귀결은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국가적 분단에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현 수준에서 봉인(cap)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북한이 사실상 핵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전부 다 제거하려고 시도해서 실패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게 한·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미국의 요구는 절대적으로 아무 데로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따라서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요구론 전진 못해…북핵, 현수준 봉인이 최선-25일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다. 한국 분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은 아직도 종전 아닌 휴전 상태다. 이 긴 분단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 긴 분단의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인들에게, 이 긴 분단은 무심한 결정이 어떻게 역사 깊은 나라의 생혈을 끊어버리고 끝도 보이지 않은 채 두 세대 이상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심한 결정이란 1945년 8월10~11일 한밤중에 존 맥코이(당시 미 전쟁부 차관)가 딘 러스크(대령)와 그 동료에게 옆방에 가서 한국인은 물론이고 어떤 사람, 어떤 동맹과의 상의도 없이 한국을 분할할 곳을 찾으라고 지시하면서 생긴 일을 말한다. 이것은 한국이 자기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던 데 따른 지울 수 없는 결과이고, 한국은 한국인의 것이라는 오래된 역사적 진실에 대한 배반이다. 이 결정은 한국인들 사이 내전의 조건을 조성했는데 이는 1945년 이후 거의 불가피했던 일이다. 한국인들끼리의 동족상잔이 갑자기 그럴 듯 해졌고 심지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 뒤 미국이 1950년대에 한국전쟁에 개입했을 때, 우리는 전쟁에 개입하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얼마나 지독하게 힘든지를 봤다. 이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모두 역사의 구속복에 붙잡혔다. 이 긴 분단에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미국인으로서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나라에 치고들어간 미국의 지도자들을 탓한다. 그 점에서 한국은 이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모든 ‘끝없는 전쟁’(베트남에서의 패배는 제외하고)의 패턴을 만들었다. 이 전쟁들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보호한다는 사람들과 문화에 대해 모르면 이길 수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 전쟁들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데, 미국은 전쟁은 다른 수단의 정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를 지속적으로 무시했다.” -한국전쟁에 관한 당신의 기념비적 저술인 <한국전쟁의 기원>이 1981년 발간된 지 39년이 됐다. 당신은 그 책에서 한국전쟁의 구조적 배경을 파고들어, ‘한국전쟁은 국제 세력이 개입된 내전이며, 한국전쟁에 이르는 길에 미국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저술했다. 그 진단은 지금도 유효한가? “그 책을 썼을 때보다 내 결론의 타당성에 더 확신을 갖는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국과 미국의 학자들이 1945년에 등장한 인민위원회(해방 직후 전국적으로 조직된 민간자치기구)의 역사를 구체화했다.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미국의 후원과 지지 아래 부상한 친일 부역자 정권의 깊이를 보여줬다. 또한 한국전쟁 기간과 그 전에 벌어진 수십만명의 정치적 학살이라는 믿기 어려운 테러, 그리고 북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구조적 독립성과 민족주의의 깊이도 보여줬다. 이 지점에서 나는 특히 황수경의 뛰어난 책인 <한국의 고통스러운 전쟁>(Korea’s Grievous War)과 찰스 암스트롱(전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 권헌익(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의 훌륭한 책들을 언급하고 싶다. 또 다른 이유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했어도 북한은 오랫동안 생존했다는 매우 심오한 사실이다. 북한도 붕괴했다면 내 책이 틀렸다는 뜻이었을 거다. 하지만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 이는 혁명적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의 힘이 북한 존재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우연히도 현재 남아있는 공산 국가들인 중국, 베트남, 쿠바에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소련의 산물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뒤 벌어진 동아시아 혁명의 한 부분이었다.” -이제 한국의 대부분은 한국전쟁 이후 세대이고, 대부분은 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 어떤 유산을 남겼나?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어서 그 유산이 뭔지 최종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분명히 방위조약과 당시 세계에서 높은 수준의 인구당 원조와 같은 미국의 완전한 지원을 얻었다. 그 뒤 미국은 한국 상품들에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한국의 값싼 노동력의 이점을 취하면서 한국의 수출주도형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걸 줬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으면서 주요 산업 국가로 전환했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이것은 승리 전략으로 판명났다. 북한에게 전쟁은 완전한 재앙이었다. 미국의 폭격은 북한 땅 모든 도시를 파괴해 북한 내에 아직도 미국에 대한 국민적 원한이 매우 강할 뿐 아니라, 자국민 수백만을 희생시켜가면서도 북한 관점에서의 전쟁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특정하기 어려운 여러 이유로, 북한 지도부는 그 결과에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국경 밖의 아무도 믿지 않으며 은둔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1951년 6월9일 미군 31연대 전투단에 소속된 한 미군 일병이 중부 전선 전투 중 75㎜ 무반동포를 발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국은 민주화 일궈내 세계 모델-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북한의 핵심적 변화를 꼽는다면? “한국은 제1공화국 때 민주적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독재였고, 그것은 1990년대까지 지속됐다. 한국 군대는 전쟁에 의해 엄청나게 강화됐고 곧 1961년 (박정희의) 정권 탈취로 그 힘을 과시했다. 한국인들의 위대한 성취 중 하나는, 기나긴 저항과 유혈사태를 치르긴 했지만 결국 군대를 정치에서 몰아내 부대로 돌려보낸 것이다. 북한 정권은 전쟁 전에는 근본적으로 좌파 연합이었지만 전후에 김일성은 경쟁자들을 전쟁 결과에 대한 희생양 삼아 체계적으로 숙청했다. 10년도 안 돼 김일성과 그 측근들이 북한 정치를 장악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적이고 이상적 철학인 주체사상의 출현은 한국의 성리학 유산을 반영하면서 북한의 지배적 이념이 됐다. 북한 지도부는 여전히 그 가족과 항일 게릴라의 핵심 후손들 이외에는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북한 지도체제는 외국과의 신뢰 관계가 없고 지도체제와 주민들 사이에도 신뢰가 많지 않다.” -한국은 2차 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몇 안 되는 나라로 꼽힌다. “대만 등 포함해 한국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 내가 말하고픈 것은, 한국의 산업 역량도 자랑스러운 대목이지만 긴 과정에 걸친 민주화가 훨씬 더 존경스럽다. 미국의 논평가들은 “와, 한국은 중산층을 만들더니 민주화도 했네”라고 말한다. 사실 한국인들은 군사독재가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시민사회와 정부형태를 세우기 위해 엄청난 용기와 헌신을 쏟아 40년간 투쟁했다. 21세기에 한국의 촛불 행진은 대통령(노무현)을 탄생시켰고 다른 대통령(박근혜)을 탄핵했다. 나는 2002년 대선과 2016년 탄핵 때 모두 촛불 행진에 참여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의지 속에 보여준 비폭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룬 전세계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때와 비교해 한국의 국가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나? “비교할 수가 없다. 한국전쟁 때 인구 대부분은 빈곤하고 문맹이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은 몇 주 안에 끝났을 것이다. 그랬으면 한국은 분개한 대중을 억누르는 잔인한 독재정권을 가졌을 거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고, 아마도 컴퓨터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이며,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서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은 애플이나 다른 세계 유수의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세계적 수준의 대기업인 삼성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한 하나의 추동력을 꼽기는 매우 어렵지만, 한국에서 수세기 이어진 국민적 교육열을 주요한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DJ 평화프로세스, 부시가 망쳤지만…문 대통령, 가장 많은 ‘대북 관여’-당신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2010년에도 <한겨레>와 인터뷰했는데, 10년 전과 비교해 한반도에서 가장 큰 변화는 뭐라고 보나? “나한테 이 질문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면 나는 내 책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를 1997년에 펴낸 뒤 많은 변화들이 생겨서 2006년에 개정판을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개정판을 또 내야할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아니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많은 연속성이 있다.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이 재임하던 10년과 유사하게 또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진보적 순간에 있다. 이들 가운데 문 대통령이 북한과 관여하는 데 가장 많은 걸 했다. 어떨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관여를 촉진하는 걸로 보였는데, 지금은 트럼프가 그걸 포기했다. 또한 북한에도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 연속성이 많다. 1년 전이었다면 나는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들이 큰 긍정적 변화라고 말했겠지만, 트럼프는 정상회담들에서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 했고, 트럼프 정부는 자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1990년대 발생한 이른바 ‘북핵 위기’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 해결을 위해 ‘평화 프로세스’가 옳다는 주장과 ‘최대한의 압박’이 해법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신의 견해는 어떤가? “직접적 협상은 1994년 북한의 플루토늄을 동결하고, 2000년 북한 미사일을 중단시키는 합의에 성공적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정책이 실패한 것은 조지 W. 부시의 잘못이다. 나는 ‘최대한의 압박’이 북한의 행태를 긍정적 변화로 이끌었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 최대 압박의 논리적 결론은 전쟁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지울 수 없는 축복 한 가지는 국가적 분단에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취임 첫해 북한에 전쟁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트럼프조차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김대중이 주도한 평화 프로세스는 1990년대에는 매우 유망해보였지만 조지 W. 부시가 그 노력을 망쳐버렸다. 문 대통령은 전임자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더 나아갔다고 보는데, 미국의 지원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핵 문제는 1990년대에 해결될 수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북한 플루토늄은 8년간 동결됐다. 그런데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놀라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들어갔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북한은 조만간 핵무기 국가로 인정받을 것이고, 한국과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제한된 수의 원자폭탄과 미사일 선에서 핵프로그램을 봉인(Cap)하는 것이다. 북한은 분명히 사실상의 핵 국가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여기에 당장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점을 고려하면, 할 수 있는 최선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전부 다 없애려고 시도해서 실패하는 것보다는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미국의 요구는 절대적으로 아무 데로도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 -남북미 관계는 문재인-김정은-트럼프 세 정상 체제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착에 빠졌다. 문-김-트럼프 3자 체제에 아직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희망의 기회가 있을까? “트럼프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긴 했어도, 김정은을 만난 건 잘 한 거라고 본다. 그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모든 실패한 시도돌을 무시하고 손을 내미는 돌파구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난 걸로 보인다.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질 것 같고, 바이든은 클린턴-오바마 시절의 제재와 북한 고립 전략으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은 최근 남북통신선을 차단하고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으며, 군사행동까지 시사했다가 보류했다. 한국을 지켜봐온 학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또한 북한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며,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내가 너무 오래 지켜본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은 수십년간 있어왔고 놀랍지 않다. 북한은 최근의 도발 행위들을 통해 주로 미국에 신호를 보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을 끌려 하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가 재선될지 지켜봐야할 것 같아서 걱정된다. 북한은 지금 문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을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B-52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고 과거 규모로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물론 연합훈련 재개는 북한을 압박하려는 또 다른 수단이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에도 그 압박에 반응하지 않았는데 미래에는 할까?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보나?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 해도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함께 가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한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계속 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행동과 관련해서는) 진지한 뭔가가 일어나기 전에 워싱턴에 새 행정부가 나오는 걸 기다려봐야 한다.” ‘외국 개입 적을수록 좋다’ 명심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언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한국은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고, 외국의 개입이 적을수록 더 좋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헛되게 북한을 고립시키고 벌 주려 하고 한국을 미국 정책을 따르도록 줄세우면서 75년간 분단의 힘으로 작용해왔다. 미국은 한국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한국과 북한이 자신의 문제들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게 최선이다. 물론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추구해야할 목표다.”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할까? “정책 문제에서, 미국 지도자들이 한국의 통일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던 때는 1950년 가을 북한을 침공하기 전날 밤이 유일하다. 불행하게도, 어떤 외국도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없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너무도 좋아해서 한국이 두 개 있는 걸 좋아한다’는 오래된 농담은 아마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진짜 일본의 두려움이 뭔지를 보여준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위해 중요한 어떤 것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미국을 포함해 통일을 방해하는 외부인을 갖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자기 기준으로 타인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횡포·독단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 상황을 돌파하는 건 한국인의 몫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필요하고 실현가능하다고 보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2월 취임사에서 밝힌 햇볕정책이 통일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고 본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국의 지지가 필요한데 그 지지는 1998~2000년 사이에 있었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 행정부의 한반도 전략은 어떻게 될까? “앞에서 말했듯이, 조 바이든은 (핵) 비확산에 초점을 둔 클린턴과 오바마 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건 북한 뿐 아니라 이란, 그리고 과거 이라크, 리비아도 포함하는 정책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그래야 결국 미국도 북한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길 걸로 보지 않는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왜냐면 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걸로 보나.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의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하나? “지금까지 미-중 갈등은 무역과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말싸움에 제한돼 있고, 한국은 깊이 관여돼 있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많이 얽혀있어서, 갈등도 제한적일 거라고 본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관계 정상화한 이후 매우 영리하게 미국,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게 당장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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