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하준이 법 좀 지켜주세요" '아슬아슬' 무방비 경사로 주차 여전

한승곤 2020. 6.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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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이법' 시행 첫날 서울 한 초등학교 인근 주차장 안전사고 위험 여전
"법까지 만들었는데, 좀 지켜주시길" 학부모들 불안감 여전
어린이보호구역 내에 위치한 경사진 주차장. '하준이법' 시행 첫날인 25일부터 경사로 주차장에는 고임목 설치 의무지만, 이날 둘러본 주차장 대부분은 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법까지 만들어졌는데, 결국 어른들이 또 안지키네요."

이른바 '하준이법'이 시행된 첫날인 25일 서울 중구 한 초등학교 일대 주차장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주차장에서 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이 법은 주차장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2017년 10월 경기도 과천에 있는 놀이공원인 서울랜드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굴러오는 사고로 최하준 군이 숨지면서 만들어졌다.

경사진 주차장의 경우 고임목을 설치하는 등 미끄럼 방지시설을 마련해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자녀를 하교시키던 학부모 A 씨는 "법을 만든다고 해서 아이들 보호가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주차장 측에서 고임목 등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때문에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라며 "법을 시행할 거면 제대로 해서 어린 아이들을 보호했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학교 인근 경사로에 마련된 주차장은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지만, '하준이법'에 따라 차량 움직임을 막는 고임목이나 경사가 져있음을 알리는 주의 표지판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초등학생들 일부는 주차 차량 뒤쪽으로 뛰어가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지나가기도 했다.

'하준이법'을 지키지 않은 이 주차장에서 기울어진 경사로 인해 차량이 굴러간다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고임목 없이 경사로에 주차된 한 차량. 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여전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유아차를 끌고 가던 학부모 B 씨는 "이 근처 주차장들만 봐도 경사진 곳이 굉장히 많은데 고임목이 하나도 설치가 안 되어 있다. 아이를 하교시킬 때마다 주차되어있는 차가 미끄러져 내려오진 않을까 항상 걱정했다"라고 토로했다.

B 씨는 "주차장 측이 이런 고임목이나 미끄럼방지 시설을 마련하는 데에서 비용이 든다면 정부가 해주면 되지 않나. '민식이법'도 통과가 됐으니, 이런 시설 하나 정도 마련하는 것은 '큰일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소연했다.

'하준이법' 시행 부실로 인해 초등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작 주차장 관리소는 아예 이 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초등학교 인근 한 주차장 관계자는 "하준이법? 그게 뭡니까?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차량마다 고임목을 설치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마련하나. 말이 안 된다. 귀찮은 일만 더 늘어난 기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이 보호 구역(스쿨존) 내에 있는 경사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 스쿨존이다보니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고, 또 돌발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어, 이 주자창은 `하준이법` 준수가 시급해 보인다. 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운전자들은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하준이법' 준수에 이어 운전자 스스로 주차 과정에서 초등생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초등학교 근처 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던 운전자 C 씨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안이니까 당연히 잘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면서 "저 같은 경우, 경사진 곳에 주차할 일이 생기면 핸들을 돌려 바퀴를 안쪽으로 돌려놓는다. 아니면 주차장에 고임목 등이 있나 찾아보고 있으면 바퀴에 고여놓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건 운전자들이 지켜야 할 기본 매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운전자 D 씨 역시 "법만 만들 게 아니라 운전자들이 운전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다"라고 지적하면서도 "'민식이법' 때문에 가뜩이나 운전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데 자꾸만 운전자들 숨통을 조이는 법만 늘어나는 것 같다."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한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하준이법' 시행으로 인해 경사진 주차장은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경사가 져있음을 알리는 주의 표지판 역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고임목을 바닥에 설치하기 어렵다면 별도로 보관해서 운전자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용 대상인 주차장은 전국에 약 1050여 곳이다. 해당 주차장들은 올해 12월26일까지는 이런 조치를 모두 완료해야 한다.

또 새로 생기는 주차장 가운데 400대 넘는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은 과속방지턱과 일시정지선 같은 보행안전시설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를 어기는 주차장은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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