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사법 적폐 청산과 검·언 유착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2020. 6. 2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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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대검 전문수사자문단에 회부한 근저에는 불신이 깔려 있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건 수사에 대한 불신이다.

검찰 수사팀은 이 사건을 채널A 기자가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결탁해 이철 전 VIK 대표에게 유시민 전 장관 등의 비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가 실패한 범죄(강요미수)로 본다. 검찰 출신 법조인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수사"라고 말한다. 강요미수죄가 되려면 위협을 받은 사람이 공포심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이철씨 쪽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방에 있는 이철씨 대리인 자격으로 올 초 채널A 기자를 만난 사람은 지모씨였다. 그는 유 전 장관의 비리를 갖고 있는 척하며 채널A 기자가 제 입으로 '내 뒤에 한동훈이 있다'고 말하게끔 집요하게 유도했다. 그 기자가 이번 의혹으로 25일 해고당하자 지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야. 너도 버려졌다. 형이랑 만날래? ㅋㅋ.' 기자의 협박 공포에 시달렸다는 사람들이 되레 '협박범'을 상대로 함정을 파고 조롱을 퍼부었다.

상식적인 법원이었다면 이런 점을 감안해 검찰이 청구한 영장들을 깐깐하게 따졌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지난 16일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채널A 기자 휴대폰의 압수수색 영장도 내줬다. 휴대전화에는 그 사람의 모든 정보가 담긴다. 그래서 그동안 법원은 휴대전화 압수는 자택 압수수색 영장만큼 까다롭게 심사해왔다. 더구나 지씨가 채널A 기자를 만날 때 이를 몰래 촬영한 MBC와 지씨 본인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무리한 편향 수사였지만 법원은 전혀 걸러내지 못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직후 양승태 대법원에서 벌어진 권한 남용 사건에 대한 2차, 3차 조사를 추가로 진행했다. 이른바 '사법 적폐 청산'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6월엔 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100명 넘는 판사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대다수는 실행되지도 않은 내부 검토 보고서를 썼던 판사들이었다. 참고인 신분의 판사들도 대거 포토라인에 섰다. 그러자 현 대법원장을 둘러싼 '홍위병 판사'들은 이들을 "양승태 적폐 따까리"라고 공격했다. 대부분 법원을 떠나거나 좌천됐다. 논란에 휘말렸지만 유능하고 균형 감각이 있다는 내부 평가를 받던 판사들이기도 했다.

이후 법원 요직은 내부에서도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는 판사들로 채워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능력보다 성향이 뚜렷한 판사였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사법 적폐 청산'의 결과가 이제 구체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최신 사례가 이번 검·언 유착 사건에서 드러난 법원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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