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고 가여운 배에 구멍을" 햄버거병 유치원생 가족 울분

김주영 2020. 6. 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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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카페 글서 "책임자 일벌백계" 호소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에 걸린 경기 안산시 유치원 원아의 가족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올린 아이의 투석 장면 사진. 다음 카페 캡쳐
집단 식중독 사태가 터진 경기 안산시의 한 유치원에서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을 보이는 원아까지 다수 나와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자신을 햄버거병에 걸린 유치원생의 가족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의 글이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글쓴이는 신장 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올린 뒤 “아이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더 이상 그 누구도 겪어선 안 된다”며 책임자들의 엄벌을 호소했다.

26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 곳곳에선 전날 한 다음 카페에 올라온 ‘안산 소재 유치원 햄버거병 발병사고 아이들을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공유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을 현재 입원해 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안산 유치원생의 큰아버지라고 밝힌 A씨는 “아이의 부모를 대신해 글을 쓴다”며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지옥과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해당 유치원은 이전에도 원비 사용 문제로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았던 유치원”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최초 역학조사 결과 단순 식중독이 아닌 장 출혈성 대장균에 아이들이 노출됐고, 일부 아이들은 어쩌면 영구적 손상이 불가피한 용혈성요독증후군 판정을 받은 상태”라며 “사고가 발생한지 벌써 보름이 지나도록, 유치원에서는 부모들에게 정확한 원인도 안내하지 못하고 그저 역학조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더욱 경악할 내용은 역학조사를 위해 일정기관 보관해야 하는 음식 재료도 이미 폐기해 과태료 50만원 처분받은 것이 전부”라고 부연했다.

집단 식중독이 발생하고, 일부 원아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까지 보인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유치원 간판. 안산=연합뉴스
이어 A씨는 “이 글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은 △역학조사를 위해 반드시 일정기간 보관해야 하는 음식 재료들을 왜 서둘러 폐기처분 했는지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 아이 엄마가 유치원에 즉시 이상증세 통보 및 유치원 등원 중지, 그리고 적극적인 내용 통보를 요청했는데 왜 묵살하고 아이들 등원을 며칠씩이나 계속 받았는지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고 한 원장이 왜 지금까지 그저 죄송하다는 전화와 문자 발송 외에는 사고의 원인 및 후속조치에 대한 구체적 연락이 없는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혀줄 핵심 자료가 없어졌는데 증거인멸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바로 진상조사 및 등원중지를 통보했다면, 가족 간 전염(공동 화장실 사용으로 인한 분비물 전염 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있었다”며 “현재 환자중에는 형이나 누나, 오빠나 동생으로부터 시작된 가족 간 전염으로 입원 중인 아이들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원장이 관계당국에 보고를 하면 뭐하느냐”며 “아이들의 상태를 안산시청과 관계당국이 직접 확인해달라”고도 요구했다.

A씨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간곡히 기도를 부탁드린다”며 “우리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아프기 전과 같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해달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의 어린이집, 유치원에 등원해 아무것도 모르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그저 선생님이 준 밥을 맛있게 먹게 될, 혹은 지금도 먹고 있을 우리 어린 아이들이 있다”며 “정말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아이와 가족이 겪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더 이상 그 누구도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오후 집단 식중독에 이어 일명 ‘햄버거병’ 유증상자까지 나온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모 유치원이 휴원으로 문을 닫은 모습. 안산=뉴스1
그는 “이번 일을 통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라며 “그 작고 가여운 배에 구멍을 내고 지금도 투석 중인 아가의 가족 올림”이라는 문장으로 글을 끝맺었다. 긑 아래 A씨는 “상태의 심각성을 알려드리기 위해 제한된 몇 장의 사진을 남긴다”며 “더 심한 사진(혈변 등)은 보기 거북할 수 있어 차마 올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조사 중인 상황이라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며 “피해아동 가족들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6일부터 안산 상록구 소재 모 유치원 원아와 가족 등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렸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이 유치원 관련 식중독 유증상자는 102명으로 파악됐다. 당국은 원아와 가족, 교직원 등 295명을 대상으로 장 출혈성 대장균 검사를 시행했는데, 현재까지 49명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99명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 147명은 음성으로 나타났다. 장 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의 합병증인 햄버거병 증상을 보인 원아는 15명이다. 이 가운데 증세가 심한 4명은 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햄버거병은 1982년 미국에서 덜 익힌 패티가 든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 수십 명이 집단 감염되면서 붙은 병명이다. 이 병 환자의 절반 정도는 평생 투석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신장 기능이 망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서 매년 200명 이상이 이 병으로 사망한다. 해당 유치원 학부모·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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