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번식장면 찍자" 우르르..멸종위기 '꾀꼬리' 부부의 눈물

전익진 2020. 6. 27.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연천 전곡읍 전곡리 선사 유적지 내 숲. 10m 높이 참나무 가지에 멸종위기 관심 대상 종인 꾀꼬리 부부가 튼 둥지가 보였다. 둥지에는 꾀꼬리 새끼 2마리가 있었다. 꾀꼬리 부부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벌레 등 먹이를 연신 물어 날랐다. 새끼들은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입을 크게 벌리고 서로 먹이를 달라고 보챘다.

이 둥지는 외부로 온전히 모습이 드러났다. 통상 나뭇잎과 가지로 가려 은폐한 나뭇가지에 있는 둥지 모습과 달랐다. 둥지는 비와 바람, 강한 여름 햇볕에 그대로 노출됐다. 둥지 주변 바닥엔 최근 잘려나간 굵은 나뭇가지 3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 옆면에는 참나무의 허연 속살이 드러났다. 굵은 비가 내린 이 날 새끼들은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몸을 웅크렸다. 잠시 비가 그치고 위쪽으로 뚫린 둥지에 뜨거운 땡볕이 잠시 내리쬐자 새끼들이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됐다. 둥지 위와 바닥 틈새로는 죽은 새끼 2마리의 부리와 발이 보였다.

지난 24일 오후 빗 속에서 꾀꼬리 새끼들이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고 있다.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주변에 사진작가 집단 촬영
이곳이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10∼20m 떨어진 지점에선 수일 전부터 사진작가 10여 명이 집단으로 몰려들어 망원카메라를 설치해 둔 채 온종일 경쟁적으로 꾀꼬리 부부의 번식장면을 촬영 중이다.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연대 대표는 “사진작가 또는 촬영장소를 제공한 사람이 사진과 동영상을 손쉽게 촬영하기 위해 둥지를 에워싸고 있는 나뭇가지를 모조리 무참하게 잘라낸 것으로 보인다”며 “둥지 주위 나뭇잎 등 은폐물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새끼들이 매 등 천적에 잡혀먹힐 위험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갖춰야 하는 위장막, 위장 텐트도 갖추지 않은 채 희귀조류인 꾀꼬리 번식지 코앞에 집단으로 모여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는 새들의 번식을 방해하는 몰지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꾀꼬리 둥지 주변 나뭇가지가 무참히 잘려나간 모습.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그는 “사진작가들이 음식을 먹고, 조용한 숲속에서 웅성웅성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도 꾀꼬리 번식 환경을 해친다”며 “죽은 채 둥지 속에 들어있는 새끼 2마리는 주변 나뭇가지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둥지가 그대로 외부로 노출되는 바람에 저체온증 또는 열사병으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꾀꼬리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는 진귀한 ‘이소(移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앞으로 수일간 사진작가들이 더 많이 몰려들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오후 꾀꼬리 둥지 주위에서 망원카메라를 설치한 채 진을 치고 있는 사진작가들.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조류 전문가 “조류 번식지 훼손 안 돼”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조류학 박사)는 “먼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새를 관찰해야 조류의 생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일본 홋카이도 흰꼬리수리 번식지의 경우 40m 거리에서 사진촬영 및 탐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화 소리 마저 내지 않기 위해 주로 혼자서 1인용 위장 텐트 안에 들어가 사진촬영을 한다고 했다. 윤 교수도 비슷한 원칙을 지킨다.

윤 교수는 "꾀꼬리 번식지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수십 년 후면 꾀꼬리도 크낙새(천연기념물 제197호)처럼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가 조류 생태 탐사에 쓰는 1인용 위장텐트. 윤 교수

꾀꼬리는 꾀꼬리 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우리나라에서는 4월 하순에서 11월 사이에 볼 수 있다. 울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모양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와 중국,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25cm가량이다. 날개 길이는 15cm, 꼬리 길이는 9cm가량 된다. 암컷은 머리가 연두색이고, 몸은 초록빛을 띤 황금색이다.

수컷은 온몸이 노란색이고, 부리는 연한 연주황이다. 눈앞에서 눈 주위를 지나는 부분은 검은 깃털로 둘려 있는데 뒷머리에서 합해져 흡사 머리에 띠를 두른 모양이다. 마을 부근의 평지나 숲이 우거진 곳에서 산다. 겁이 많아서 보통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고 혼자 사는 버릇이 있다. 둥지도 높은 나뭇가지 위에 튼다. 5 ~7월에 4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연천=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