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인이라 맞았는데 '네덜란드 애' 댓글, 너무 마음 아팠죠"

차현정 통신원 입력 2020. 6. 27. 11:28 수정 2020. 6. 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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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네덜란드 집단폭행 피해 한인학생 부모
"우리 부부도 韓입양아 출신..외국인혐오 사라지길"
인종차별 폭행 피해를 당한 네덜란드 한인학생 Y군 가족 사진. 맨 오른쪽이 피해 당사자인 아들 Y군이고 어머니 소라 반더블릿씨가 한 가운데에 딸을 앞에 두고 서 있다. 뒤에는 소라씨의 양어머니(흰색 바지)와 이모(검은 바지)다.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우리 아이가 맞은 것도 억울하고 분하지만, 지난 40년간 인종차별이 더욱 심해지고 잔인해졌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소라 반더블릿(Sora van der Vliet)씨는 최근 인터넷과 한국·네덜란드 언론을 뜨겁게 달군 인종차별 폭행 피해 한인학생 Y군(16)의 어머니다.

소라씨는 현재 한국에서 아들의 소식과 관련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오해를 바로잡고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고 싶다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 '네덜란드인에 굳이 관심 가질 필요있냐'는 댓글 가슴 아파

"한국에서 뉴스를 본 많은 분들이 우리 아이의 국적이 네덜란드인데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냐고 댓글을 단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아이가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 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를 당장 멈추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소라씨와 피해학생 Y군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1일 네덜란드 남서부 노르트홀란트주 잔담의 한 공원에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3명의 아이들이 다가와 Y군과 친구들에게 "뭘 봐? 이 코로나 걸린 암덩어리 중국인아"라며 시비를 건 것으로 시작했다. Y군이 그 아이들을 타이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즈음 그들이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후 가해 아이들은 20명으로 불어났고,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Y군과 친구들을 위협했다. 이들은 Y군의 휴대전화를 빼앗았고 그 중 한 명이 Y군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며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입에 담았다. 영상 속에는 폭행 충격으로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Y군 모습도 담겼다.

인스타그램 'jackfroot' 갈무리 © 뉴스1

“영상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 아이는 끝까지 침착하고 차분했어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쓰러진 우리 아이를 왜 구해주지 않았냐는 의견들이 있던데, 그들도 태어나서 이런 인종차별의 현장을 처음 본 것이죠. 20명의 무리가 갑자기 다가왔을 때 16살 아이들 고작 몇 명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소라씨는 사건 이후 현장에 있었던 Y군의 친구들이 경찰 조사에도 앞장 서고 가해자 찾기에도 적극적이었다며 사건에 도움을 주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오해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Y군이 폭행당한 모습을 담은 영상은 가해 무리 중 한 명이 찍은 것이었다. 소라씨는 "그 영상을 제일 처음 유포한 아이가 우리 가족에게 와서 사과했습니다"고 밝혔다.

◇ 경찰 늦장 부릴 동안…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사건 다음날인 22일 Y군의 가족은 경찰에 인종차별 폭행죄로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일주일 정도 기다리라는 답변만 줄 뿐이었다.

SNS를 통해 폭행 동영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네덜란드 내 여러 아시아인 단체에서 Y군을 위한 법률 자문을 제공하겠다며 연락해왔다. 그 와중에 제일 먼저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주네덜란드 한국 대사관이었다고 소라씨는 전했다.

"제가 입양인이고 Y군은 한국 국적이 없다고 했지만, 전혀 상관 없고 도울 수 있는데까지 돕겠다고 먼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대사관에서 네덜란드 경찰을 상대로 이 사건을 소홀히 처리할 경우 정치적으로 공론화하겠다고 앞장서 주셨고 그 결과 하루 만에 네덜란드 경찰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곧 가해자의 정보를 파악하고 법적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소라씨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현재 수사가 시작돼 가해 아이들이 경찰에 입건된 상황이다.

◇ "니하오에 대꾸하지 않으면 창녀라고 놀림받아"

소라씨는 자신과 남편이 네덜란드 한인 입양아 모임 '아리랑'에서 만났다며 조심스럽게 과거를 밝혔다. 한국 부산의 한 쇼핑몰에 버려진 소라씨는 생후 11개월에 네덜란드로 해외입양됐고, 남편은 5살에 입양돼 네덜란드에 들어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네덜란드에서 자랐지만 소라씨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때는 네덜란드에 동양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길거리에서 '니하오', '칭챙총'에 제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으면 그들은 저에게 창녀라고 소리 질렀어요."

40여년 전, 아시아인에게 가해졌던 언어적 인종차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오늘날 아들이 이런 일을 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소라씨 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라씨 부부는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심해진 아시아계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당당히 맞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저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아들이 정말 씩씩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높이고 억울함을 이야기하세요. 인종차별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알게 모르게 당신도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Asian Lives Matter"

네덜란드 매체 NOS에 직접 인종차별에 대해 호소하는 Y군 (NOS 인스타그램 갈무리)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Y군은 다행스럽게도 사건 이후 여러 네덜란드 매체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소식을 들은 많은 네덜란드 청소년들은 Y군의 SNS에 찾아가 '용기를 내라'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우리가 대신 사과한다' 등의 글을 남기고 있다.

"300명 정도이던 아들의 SNS 팔로워 수가 하루만에 급증했어요. 모두 격려하는 댓글을 남기고 우리 가족을 지원하는 든든한 응원단이 되겠다고 했어요. 아들은 그 사건 이후 더욱 강해지고 자신의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건 아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코로나19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유럽 내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신고 건수가 급증하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도 언론과 SNS를 통해 인종차별 피해 영상이 보도된 적이 많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해결 방안이나 방지책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Y군의 엄마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이 사건 이후 우리 가족은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도움과 따뜻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나와 다름에 대한 미움과 적대를 이제는 그만합시다. 'Asian lives matter'(아시아인 목숨도 소중하다), 이제 우리가 외쳐야 할 때입니다."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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