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빼앗긴 2020년.. 미국인 3명 중 1명 '불안·우울증' [세계는 지금]

국기연 입력 2020. 6. 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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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팬데믹 '코로나 블루' / 美 불안장애, 코로나 이전보다 2배 ↑ / 심리상담 이용자 1년새 1000% 폭증 / 경제난에 실업자 증가.. 약물남용 심각 / 의료인들, 기약 없는 긴 싸움에 고통 / 중국선 3분의 1이 불면증에 시달려 / 젊을수록 '빨간불'.. 자살 급증 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전방위 확산에 따른 정신건강 위기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 고립감 등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지난 4월 한국 국민의 절반가량인 47.5%가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불안장애와 우울증 환자가 지난 1년 전과 비교할 때 300%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블루’는 성인보다는 청소년이나 젊은층이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최전선에서 이 전염병과 싸우는 의료인력의 정신건강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처에 급급한 나머지 코로나19 블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는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 세계가 직면한 코로나19 블루의 현황을 심층 진단해본다.

◆코로나19와 심리방역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대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구멍 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환자와 사망자 측면에서 선두권을 형성하는 민낯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와 함께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정신건강 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의 합성어인 ‘코로나 블루’는 또 하나의 팬데믹이다.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폭증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심리 상담 핫라인(1577-0199)을 통한 코로나19 관련 상담 건수가 지난 3일까지 37만431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센서스국은 최근 조사에서 미국인의 3분의 1가량이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2배가 늘어난 수치이다. 미국 카이저패밀리재단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가량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심리상담 핫라인 이용자가 올해 4월에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000% 증가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미 연방정부 기관인 ‘물질남용 정신건강 서비스국’(SAMHS)에 문자로 접수된 상담 건수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2만건이 넘었다. WP는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가면 몇 주, 몇 개월, 몇 년 뒤에 심리적·사회적 팬데믹이 밀려오지만, 전염병에 집중하다 보면 이런 정신건강 문제 대책이 소홀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자택 대피령,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경제활동이 마비되면서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실업이 자살과 물질남용 등을 촉발하기 마련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회사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을 잃게 된다. 건강보험이 없으면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실직자가 정신질환 치료를 받기가 어렵다. 미국에서 건강보험 미가입자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2750만명에 달했다.

미국 메도스 정신건강정책 연구소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업률이 지난 2007년 말 미국의 금융 위기 당시처럼 5%가량이 증가하면 자살하는 사람이 4000명, 약물남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4800명가량이 추가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미국의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으면 자살하는 사람은 1만8000명, 약물남용 사망자는 2만2000명가량이 추가로 늘어날 것이라고 이 연구소가 밝혔다. 미국의 실업률은 4월에 14.7%로 올랐다가 5월에는 13.3%로 다소 낮아졌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공공건강보험이 없는 나라이다. 미국은 또한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인해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미국은 향후 몇 개월 뒤에 직면할 정신건강 팬데믹에 대응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지적했다. WP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부터 미국의 성인 5명 중 1명이 매년 정신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 중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미국에서 자살률도 지난 20년 사이에 33%가 증가했다.
◆의료인의 정신건강 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의사, 간호사 등 최전선에서 이 전염병과 싸워야 하는 의료인력의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들어왔다. 코로나19 환자와 매일같이 접촉해야 하는 의료진은 늘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고, 전염을 막으려고 가족과 최대한 격리된 생활을 한다. 문제는 의료진의 힘겨운 투쟁이 끝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의료진은 지금 극심한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참여한 의료인력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0%가량이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ABC방송이 보도했다. 또 조사 대상자의 3분의 1가량이 불면증에 걸렸고, 70%가량이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서는 지난 4월 뉴욕의 응급실 의사인 로나 브린(49)이 밀려드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엔은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전 세계 의료진의 정신건강이 코로나19 극복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은 의사, 간호사 등 이 병원 네트워크 소속 의료진을 위한 정신건강센터를 개설했다. 이 센터 이용자가 초기에는 소수에 그쳤으나 최근 10주 사이에는 2000명가량으로 늘어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겪는 고통 중 하나는 아직 효과 있는 치료책이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라고 한다.
◆아동과 청소년, 밀레니얼, Z 세대

유럽의 코로나19 진원지였던 이탈리아에 있는 제노바 가슬리나 아동병원이 전국 68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6세 미만의 아동 65%, 6∼18세 어린이와 청소년의 71%가 행동상의 문제나 퇴보 증상을 보였다고 dpa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장기 고강도 봉쇄로 인해 6세 미만의 아동은 수면장애, 짜증, 불안 증세를 보였고, 6세 이상은 숨가쁨, 불안정한 수면 패턴, 침울 등의 증세를 보였다고 이 병원이 밝혔다.

중국의 진원지였던 후베이성에서 1784명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올해 초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23%가 우울감에 시달렸고, 19%가 분노장애 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의사협회(JAMA) 소아과분회의 학술지를 인용해 보도했다. WSJ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장기적인 봉쇄 조처에 따른 고립된 생활로 정신건강과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층의 정신건강에도 이상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가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대체로 1981년부터 1996년까지 출생자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Z세대로 불린다. Z세대의 막내는 대체로 2012년 출생자다. 밀레니얼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대침체기를 겪은 뒤에 이번에 다시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고 시사종합지 ‘애틀랜틱’이 최근 보도했다. Z세대의 맏이가 올해 23세다. 올해 대졸자와 고졸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사회 첫발을 떼면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Z세대의 10대는 장기 휴교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인해 고립 상태에 빠져 있다.

민간기관인 ‘미국건강트러스트’(TAH)에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17년 사이에 18∼34세 연령층의 약물 남용에 의한 사망 건수가 2배로 늘었고, 알코올의존증에 의한 사망은 69% 증가했으며 자살 비율도 35% 늘었다. 애틀랜틱은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밀레니얼 세대의 자살과 약물·알코올 중독 사망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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