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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철도의 '미싱링크', 동해북부선을 따라 북으로 걷다

입력 2020.06.2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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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원산 사이를 달렸던 동해북부선의 흔적을 찾아서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남북 경협사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해북부선'. 그러나 동해북부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프레시안>이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양양부터 원산 사이를 달렸던 동해북부선의 남쪽 구간의 흔적을 찾았다. 철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역사나 교각 등 남아있는 구조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맞은 동해북부선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이번 답사는 현직 기관사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 답사대장으로 안내를 맡고 철도노조 청년 조합원들과 함께 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맞은 '동해북부선'

동해북부선은 함경남도 원산과 강원도 양양 사이를 잇는 철도 노선이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안변부터 흡곡 사이를 이은 것을 시작으로 1937년 강원도 양양까지 개통됐다. 일제가 철광석과 목재 등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노선이었다. 일제는 남쪽 종착역인 양양을 넘어 강릉을 거쳐 부산까지 이어지는 건설 계획을 세웠다.

만주 침략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벌인 일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는 조선 철도의 여러 노선 철길을 뜯어내야 할 정도로 물자가 부족했다. 동해북부선은 양양 아래쪽으로 뻗어 나갈 수 없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단절된 채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1940년 동해북부선 열차 시간표 ⓒ박흥수

간선에서 양양까지의 노선은 45년 광복과 동시에 이루어진 분단으로 38선 이북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북한이 관리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38선이 군사분계선으로 대체되면서 양양에서 고성군 제진까지 남한의 관할 지역이 된다. 현재는 휴전선 이남 구간의 철도는 철거된 상태다. 북한에서는 1996년 안변역과 외금강역(현 금강산청년역) 구간을 복원하여 '금강산청년선'으로 노선의 이름을 바꿨다.

'남북 경협사업' 중 철도분야에서 동해북부선은 남한에 있는 강원도 강릉과 제진역 사이 110여 킬로미터(km)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강릉에서 양양까지는 새로 건설되는 것이고 양양에서 제진까지는 옛 노선을 따라 가는 것은 아니지만 동해북부선 복원의 이미를 갖는다. 강릉~제진구간이 완공되고 영덕~삼척이 구간이 새로 건설되면 부산-강릉-제진-금강산-원산-나진까지 이어지는 동해축 한반도 종단철도가 완결된다.

동해북부선 연결은 북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대륙철도시대'의 막을 여는 중요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23일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를 개최하고,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구간 철도 연결을 '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결정했다. 이어서 27일 통일부와 국토교통부는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을 열고 남북경협사업 추진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방해와 남북관계 경색으로 문재인 정부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수풀 사이 방치된 '양양역'

답사의 시작은 양양군 청곡리의 옛 양양역 터를 찾는 것에서 시작했다. 양양역은 37년 영업을 시작해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전쟁이 끝난 53년 영업이 재개됐으나 상징적 조치일 뿐 열차 운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67년 공식적으로 폐역됐다.

옛 양양역 터는 지금은 석재공장이 위치해 있다. 과거에 역사가 있었다는 상상을 하기 힘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탓이다.

"이 근처에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라는 박 대장의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역사의 흔적을 찾았다.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역사의 모습은 서울역이나 용산역 같은 곳이다. 오고 가는 철길을 사이로 높은 플랫폼이 있는 형태다.

30년대 만들어진 양양역의 모습은 사뭇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숲 사이에 다 무너져 가는 양양역의 흔적은 지금의 역사의 모습과는 한눈에도 달라 보였다. 1m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나지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다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철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버려진 역사는 그 사이 자란 나무와 수풀 사이에서 고대 유적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박 대장은 과거 양양역의 모습을 설명하며 "길이는 100m가 넘고 폭은 7m 쯤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양양역은 꽤 규모가 있는 역이었다. 박 위원은 이어 "여기서 정차한 증기기관차는 저 방향을 향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이미 길도 사라지고 옥수수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양양역 터 정도면 그래도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편에 속했다.

이미 풍경으로 녹아든 옛 철길의 흔적들

교각은 강이나 천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철길을 받쳐주던 구조물이다. 이 위로 철길이 뻗어나가 강 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철길이 없어진 지금은 강둑에 서로 마주보는 교각의 흔적만 남아있다.

답사에서 처음 만난 교각은 청곡 교차로 교각이었다. "저게 교각이다"라는 설명을 듣지 않으면 과거 이곳에 철길이 지났다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철길은 흔적도 없었지만 교각은 건재했다. "이곳에서 뻗어나간 철길은 저 방향으로 향해 갔다"라고 설명하며 박 위원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이미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낙산사역 터 ⓒ프레시안(조성은)
▲낙산사역 터에서 발견한 침목 ⓒ프레시안(조성은)

그런 식이었다. 낙산사역 터는 채소 밭이 돼 있었다. 나지막한 높이의 평평한 콘크리트 승강장 구조물이 과거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채소 밭 한 켠에 침목, 그러니까 노반 위에서 레일과 레일 사이를 연결해주던 목재가 남아있어, 과거 이곳이 철도와 관련된 시설물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낙산사역 터는 코레일 낙산 연수원 바로 옆에 있었는데 표지판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에 만난 쌍천교 교각도 이름 모를 넝쿨 식물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지 시선도 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주변 풍경에 녹아있었다. 동네 주민들도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답사대가 교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던 중년의 한 동네 주민이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동해북부선 답사를 여러 번 다닌 '철도 덕후' 박 대장은 "동해북부선은 아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아니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쌍천교 교각 ⓒ프레시안(조성은)

사라진 옛 역사의 터

쌍천교 교각을 지나 옛 철길 놓여있던 좁디좁은 길을 따라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갔다. 좁은 도로 폭과 주변보다 높은 지대, 곧게 뻗으면서도 완만하게 이어지는 곡선이 과거 철길의 기억을 담고 있는 듯했다.

다음에 만난 속초역 터나 천진리역 터는 콘크리트 구조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곳에 역사가 있었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을 터다. 그나마 천진리역 터는 천진리역보다 먼저 개교한 천진초등학교 덕에 위치를 대강 추론해볼 수 있었다. 박 위원은 "초등학교 앞이 역 광장이었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따라 이어진 길이 철길이었다"고 설명했다.

▲천진초등학교 앞 ⓒ프레시안(조성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남지 않은 역사에 안타까움을 남기며 문암역으로 향했다. 문암교 교각을 지나 옛 문암역 터와 문암역 관사를 둘러봤다. 옛 철도 관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사 앞 벽면에 남은 "삼천만이 살펴보면 오는 간첩 설 땅없다"는 표어가 역사와 관사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의 아픔이 남은 철도의 기억

답사의 절정은 터널이었다. 터널 아래 철길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아치형의 터널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처음 간 옛 공현진 터널은 인근이 개발 중이었다. 콘크리트 공사장 사이에서 공현진 터널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터널 입구 주변은 군데군데 움푹 패이거나 얼룩이 져 있었다. 총탄 자욱이었다. 박 대장은 "한국전쟁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공현진 터널로 들어갔다. 대략 100m 쯤 걸었을까, 수풀에 우거진 반대편이 나왔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방치된 세상을 차지한 건 자연 그 자체였다.

옛 동해북부선의 흔적이 모두 방치된 건 아니었다. 요모조모 잘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호수인 송지호의 산책로 일부는 옛 철길 위에 만들어졌다. 철길의 흔적은 다리 아래 남아있었다. 철교를 받치던 콘크리트 구조물 일부였다.

▲송지호 산책로를 받치고 있는 교각 ⓒ박흥수

다음에 향한 북천 철교는 답사 코스 중 유일하게 철길의 흔적을 표지판으로 남겨놓은 곳이었다. 철길은 자전거 도로가 됐다. 설명 표지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철길이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터였다. 역시나 철교의 흔적은 다리 아래 교각들로 남아있었다.

답사의 마지막은 배봉리 터널이었다. 답사 코스 중 통일전망대 방향에 있는 가장 최북단의 코스였다. 배봉리 터널로 가는 길, 남아있는 동해북부선의 교각엔 '배봉리 봉화마을'이라고 쓰여 있어 이 길이 동해북부선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른 터널과 다르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한 배봉리 터널은 수풀이 너무 우거져 입구까지 다가갈 수 없었다. 답사대의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일반시민이 접근 가능한 남한에 남은 동해북부선의 흔적도 여기까지였다. 동해북부선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은 또 어떻게 남겨야 하나. 대륙철도시대를 맞이하기 앞서 많은 숙제를 남긴 여정이었다.

▲배봉리 터널 ⓒ프레시안(조성은)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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