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직원 되면 공정이고, 자회사 정직원 불공정?

이환직 2020. 6. 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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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을 비롯한 연대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5일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직접고용전환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장기호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위원장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공사가 지난 2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2년 반에 걸쳐 합의한 정규직 전환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정규직화(직고용) 추진을 발표했다"며 불공정한 전환과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뉴스1

“인천공항에서 알바 하다가 정규직 됨, 연봉 5000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가뜩이나 얼어붙은 상황에서 튀어 나온 이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 컸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 21일 늦은 오후 보안검색 요원 1,900여명을 청원경찰로 신분전환, 연내 ‘직접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말이다. 발원지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픈카톡방.’ 일부 언론이 이 화자에 대한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그대로 보도했고, 여론은 이에 들끓었다.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보안검색 요원 직고용 계획은 공정, 불공정 논란으로 확대됐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글 하나도 그 방증이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에는 하루 만에 17만명이 서명했다. 그로부터 나흘만인 28일 오전 25만7,000여명이 동참했다. '보안검색 요원이 아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고용된다', '연봉도 5,000만원에 이른다’ 등의 ‘가짜 뉴스’가 초반의 연료가 됐다. 청원글에는 “인천공항(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정말 충격적”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일로 인천공항에 파견돼 보안검색 일을 하던 용역 직원이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되면 ‘불공정’이 되고, 본사가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공정’이 된다는 그릇된 신호를 노동계와 취업시장에 준 셈이다.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고용 계획 발표가 과연 ‘충격적’인지를 보기 위해선 시계를 몇 차례 뒤로 돌려야 한다.


2017년 5월 이전부터 정규직화 논의

먼저, 2017년 5월 12일로 가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은 날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 같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기한은 “임기 내.” 이에 정일영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1만명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했다. 해마다 꾸준히 4,000억~5,000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었던 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2017년 5월 취임 후 외부 첫 공식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용역 직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계를 다시 2016년으로 돌린다. ‘대한민국 관문’ 역할을 하던 인천공항에서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지던 때다. 그 해 초 물류처리시스템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5,000여개의 수화물이 주인을 잃은, 대란이 났다. 특히 인천공항 터미널을 통한 밀입국 사건이 두 차례나 벌어지자 ‘세계 최고 공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박봉의 용역 직원들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용역 업체가 바뀌고 또 바뀌면서 보안검색 업무에는 2년 이하 경력자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언론들은 지적했다.

동시에 ‘국가 주요 시설’ 근무자들에 대한 정규직화 필요성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인천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항공기에 오르기까지 가는 길에 정규직은 한 명도 만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다. 다시 말해, 밖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 대통령의 공항 방문 전부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있었던 때로부터 7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  노ㆍ사ㆍ전(노조, 공사, 전문가)협의회에서 1차 합의안이 나왔다. 생명ㆍ안전과 밀접한 일들을 하는 보안검색(1,902명), 공항소방대(211명), 야생동물통제(30명) 등 3개 직군 2,143명을 직고용 하기로 한 것이다.


“인천공항은 보안검색원 직접 고용 불가”

하지만 인천공항은 ‘특수경비원’ 신분에 속하는 여객 보안검색 직원들을 직고용 할 수가 없었다. 항공산업과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인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요원들을 직고용하게 될 경우 이들은 ‘특수경비원’ 신분을 잃게 된다. 특수경비원은 필요에 따라 총기를 소지하는 직원. 국경과 다름 없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특수경비원’ 상주는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공사는 ‘특수경비원 신분’으로 보안검색 요원을 직접 고용하기 위해 경비업법, 항공보안법, 통합방위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대통령이 선언을 했고,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항공사 사장이 약속까지 했던 사안이지만, 첫 발 떼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 올해 2월에 나온 노ㆍ사ㆍ전 합의안이다.

“보안검색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기 위해서는 법개정이 필요하니 그 전까지 자회사(인천공항경비)에 편제하기로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에는 여객 보안검색 요원뿐만 아니라, 이 보안검색 요원들을 포함한 청사 곳곳에서 근무하는 공항공사 직원과 터미널 경비업무 등을 맡은 ‘보안경비 요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보안경비 요원들은 보안검색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총기 소지 필요성이 있는 특수경비원이다. 보안검색 요원과 별도로 1,800여명의 보안경비 요원들은 오는 7월 1일부로 자회사로 소속이 바뀌는 형식으로 하던 일을 계속 하게 된다. 


문제의 시작은 청와대 압박 탓?

수 많은 용역서비스 회사에서 인천공항으로 파견된 직원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렇게 착착 진행되는 듯 했지만, 인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요원들을 청원경찰로 신분을 전환해 연내 직고용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사달이 났다. ‘보안검색 요원들을 자회사(인천공항경비) 정규직으로 놓은 뒤 법안이 마련되면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겠다’던 합의를 깬 것이다. 공항공사의 이 같은 결행 배경엔 여러 가지 설들이 항간에 돌지만,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지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제로’ 상징이 된 인천공항에서 뭔가를 보여줄 필요 내지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다.

합의가 깨지자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와 다른 비정규직 노조에서도 반기를 들었다. 사태가 노노갈등으로 비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보안검색 직원들과 함께 ‘특수경비원 신분’의 보안경비 노조 관계자는 “모두 자회사로 가기로 결정이 된 상황에서 보안검색 요원들만 직고용 하기로 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반발했고,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서도 “사측이 노ㆍ사ㆍ전 합의를 무시하고 기존 논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배제했던 청원경찰 신분 전환을 갑자기 꺼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인천공항 노조의 경우 당초 조직의 비대화 문제와 함께 가중될 재정 부담을 들어 일각에서 반대하기도 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구체적인 말은 없었지만, 현재 정규직(1,400명) 보다 큰 규모의 다른 노조가 결성될 경우 교섭력 약화 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원경찰은 파업 등 쟁의권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 비하면 여론은 많이 가라앉은 상황이다. 공항공사 노조 일부에서 제기한, 직고용에 따른 재정 악화 우려 등도 공사 측이 어느 정도 소명했다. 공사 관계자는 “재정 악화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직고용과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도 동일하게 처우를 해주기로 합의한 만큼 자회사 정규직화, 인천공항공사 직고용 등 고용 방식에 따른 추가 비용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전에도 단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정규직으로 전환 시 별도의 채용 절차와 시험을 거친다는 사실도 확인이 됐다.


1차 논란책임은 인천공항공사에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보안검색 요원 직고용이 ‘불공정’과 ‘역차별’이라는 사회문제로 번지게 한 책임이 공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청원경찰 신분 전환은 향후 고령화, 관료화 문제뿐 아니라 경찰의 간섭을 받을 수 있고 서비스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며 “이에 따라 보안검색 요원을 자회사로 편제한 뒤 법적 문제를 해소하자고 합의한 것인데, 어떠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극심한 혼란과 갈등만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또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취업준비생들의 어려운 처지와 맞물리면서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면서 논란이 확대됐다고 주장한다. 김포국제공항 등 국내 지방 공항 운영은 맡고 있는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국가 주요 시설에서 사고가 났고, 뜯어보니 현장을 열악한 처우의 파견직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국가 주요 시설’을 국가 주요 시설답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정규직(파견직)의 정규직화가 추진됐던”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일련의 과정에서 취업시장에서 인천공항이 차지하는 위상, 그 인천공항의 ‘직접고용’ 이라는 단어가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소동”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자회사(정규직)를 통해 고용돼도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면서 “직접고용만이 선이 되는 것처럼 비치게 한 이번 사태는 기업, 취업준비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정부 등 모두에게 결국 손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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