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민주주의 탈' 쓴 포퓰리즘 경계해야

2020. 6. 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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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주목받는다. 회고록에는 우리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 언급돼 있을 뿐 아니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면모에 대한 ‘진솔한(?)’ 언급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볼턴, 두 사람은 모두 제대로 된 직업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왔다. 이 책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 대통령에 그 보좌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식적인 직업윤리를 뛰어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 책에 잘 드러난다. 이런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신뢰도는 그리 높을 것 같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 은행센터(BOK) 경기장에서 한 발언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하는 다수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좌파 폭도가 우리 역사를 파괴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기념물을 더럽히고 우리의 동상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모든 사람을 처벌하고 핍박하려 하고 있다” 등등의 주장을 폈다. 이런 언급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한다.

주목해야 할 단어는 ‘침묵하는 다수’ ‘좌파 폭도’ 그리고 ‘처벌과 핍박’ 등이다. 여기에 트럼프의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특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퓰리즘을 인기영합주의 정도로 치부하지만, 포퓰리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종의 정치적 양식(political style)이다. 정치적 양식은 1회적 선심성 정책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정권이 구축한 체제 내에서 특정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포퓰리즘 현상은 비단 트럼프 행정부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포퓰리즘 경향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포퓰리즘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독일 정치학자 헬무트 두비엘(Helmut Dubiel)은 포퓰리즘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기존 지배체제의 무능과 부패를 부각시켜 이를 토대로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를 꼽았다. 여기서 반(反)엘리트주의가 나온다. 포퓰리스트들은 기존 정치인과 각 분야 엘리트를 항상 오만하고 부정·부패 등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로 규정한다. 이와 반대로 절대다수 대중은 순수한 존재로 본다. 여기서 포퓰리즘의 또 다른 특징인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등장한다.

포퓰리스트들은 항상 모든 것을 적과 동지로 구분한다. 가장 대표적인 적과 동지의 구분은 기존 ‘부패한 엘리트들’과 ‘순수한 일반 대중’이다. 정치학자 태거트(Taggart)는 이런 대립구도를 ‘침묵하는 다수 대중’과 ‘소리만 요란한’ 기존 엘리트의 대립구도로 표현한다.

여기서 기존 엘리트가 악의 근원처럼 포장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치학자 토도로프(Todorov)는 유태계 자본 문제를 그 사례로 든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나 남미 포퓰리스트들은 유태계 자본이나 외국 자본을 일반 대중의 이익을 갈취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또 해당 국가 지배 엘리트들이 이들 외국 자본과 결탁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존 엘리트를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여기서 또 하나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특징이 도출된다. 배타적 국수주의 혹은 민족주의다. 이때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는 포퓰리스트가 필요로 하는 ‘적’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된다. 이와 관련 태거트는 포퓰리스트에게 ‘가시적인 적’은 반드시 필요하며, 포퓰리스트는 이런 적의 존재를 통해 대중을 결집시킨다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적에 대한 증오’가 포퓰리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력이다. ‘증오의 힘’은 대중을 정서적으로 결합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포퓰리즘은 ‘반이성주의’와 ‘반엘리티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현상이 반(反)대의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 문제점은 포퓰리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문제점이 대두된 이유는 후기 산업사회로의 전환과 관계 깊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정당의 역기능 때문이다. 정당의 역기능이란 정당이 개인의 이익이 중시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당은 본래 산업사회에서 노동이나 자본 같은 집단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탄생했다. 따라서 사회가 개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면 정당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의민주주의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시간의 지연’이다.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반대하는 인물이 의원으로 당선되거나 혹은 찬성했지만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유권자는 다른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인 다음번 선거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서 ‘시간의 지연’, 즉 ‘욕구 실현의 지연’이 발생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이 지점을 공격한다. 뮬러(Mueller) 같은 학자는 포퓰리스트가 ‘현재적’ ‘즉각적’ 요소를 강조하며 대의민주주의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실제 포퓰리스트는 이런 공격을 하면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포퓰리스트는 대의민주주의를 공격하면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자는 주장을 편다. SNS가 이들 주장을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 대중은 SNS로 포퓰리스트와 잘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직접민주주의처럼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착각이라 한 이유는, 포퓰리스트의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대한 주장은 단지 주장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 대신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다 해도 문제 해결의 ‘즉각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전문성 결여로 문제가 더욱 꼬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포퓰리스트가 집권해도 욕구 충족이 지연되거나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중요한 점은 포퓰리스트는 기존 엘리트를 공격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기존 엘리트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포퓰리즘의 이론적 배경을 간단히 언급했다. 지금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포퓰리즘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고, 또 앞으로 목도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뿐 아니라 포퓰리즘을 단순한 1회성 인기영합적 정책으로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포퓰리즘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또는 극우주의, 권위주의 등 체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정치·경제체제와 결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 속에서 포퓰리즘은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형태의 정부와 결합할 가능성이 높다. 포퓰리즘이 등장한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남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변해버린다. 코로나19의 대유행만큼이나 포퓰리즘 대유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5호 (2020.07.01~07.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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