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어린이·할머니들의 꿈과 인생을 책에 담아드려요"

김학준 입력 2020.06.29. 18:36 수정 2020.06.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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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책 만들기 나선 출판사]
유치원·시골학교·복지관 등
어렵거나 소외된 사람들 찾아
꿈·인생 찾아주는 책 만들어
AI 이용한 그림책 디자인 연구
누구나 쉬이 그림책 제작 가능
세상과 소통할 기회 주고 싶어
전남 곡성 삼기초 김승찬 어린이가 학교에서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 승찬이는 자신의 책이 정식으로 출판돼 그림책 작가가 됐다. 작가의 탄생 제공

전남 곡성군 삼기초등학교 6학년 김승찬 어린이는 지난달 꿈같은 일을 겪었고, 아직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 속에서 살고 있다. 전교생 30명의 조그만 학교에서 김점선 교사가 진행한 ‘나도 작가 되기’ 프로젝트에서 만든 그림책 <비위 약한 도마>가 정식으로 출판돼 ‘진정한’ 작가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는 승찬이는 “냄새가 지독한 생선이 올려진 도마를 보고 도마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엮어냈다. 비위가 약한 도마가 생선을 피해 가출한 뒤 겪는 여러 가지 일화가 큰 줄거리다. 그의 책은 5학년이던 지난해 10월 책으로 만들어졌고, 다른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시골 학교가 떠들썩하게 기념식도 가졌다. 지난해 학생 작품을 편집하는 데 참여했던 출판사 ‘작가의 탄생’이 어른이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놀랐다며 정식 계약을 제안한 덕이다. 그 책이 좀 더 다듬어지고 단장을 해서 서점에 나온 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승찬이가 그림책을 만든 것은 세번째다.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작업이 세월을 더하면서 내용과 그림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승찬이는 “학교에서 책 만들기에 참여했다가 작가가 됐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책 만드는 것이 재밌어져서 앞으로도 더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책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책 속의 등장인물을 잘 못 그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어린이 수준에서 생각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되니까 다른 친구들도 도전정신을 가지고 뛰어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부산 감만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어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다. 김용환 ‘작가의 탄생’ 대표가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작가의 탄생 제공

승찬이가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탄생’ 출판사의 힘이 컸다. 작가의 탄생은 지지난해 출범했는데, 미술학원, 초등학교, 도서관, 복지관 등을 찾아가 맞춤형 그림책 제작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든 책이 300여종에 이르는데, 300여명을 작가로 만들어준 셈이다. 출판사는 이렇게 만든 책 중 의미 있는 책을 골라 정식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비위 약한 도마>를 비롯해 초등 3학년 홍아인 어린이의 <요술구름 핑키>와 광주 평동중 김태희, 류연우, 이보경 학생이 함께 만든 <가족> 등 3권이 선택을 받아 햇빛을 보았다. <요술구름 핑키>는 예쁜 구름 나라에서 살다가 햄스터의 몸이 돼 인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된 요술구름 핑키의 모험을 그렸다. <가족>은 반려견이 유기견으로 버려지는 문제를 중학생 소녀들의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 출판사는 올해 안에 10권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진도가 더뎌지고 있다. 김용환 대표는 “처음에는 ‘추억의 보관’ 정도로 생각하고 정식으로 출판할 생각은 전혀 안 했다”며 “아이들의 책에 깜짝 놀랄 내용이 많아 먼저 정식 출판을 제안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작가의 탄생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나온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승찬이의 책을 내는 과정에서 출판사는 전문 작가와 화가를 붙여 새롭게 구성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나온 책을 보니 느낌이 살지 않아 모두 폐기하고 말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책을 만들었을 때는 어린이의 순수한 감성에서 나오는 울림이 있었는데, 어른들의 시각과 테크닉이 더해지면서 아이의 색깔이 묻히고 만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승찬의 원래의 책에 디자인만 손을 봐서 출판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작가의 탄생은 어린이, 할머니 등이 직접 자신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는 면에서 다른 출판사와는 길을 달리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 어린이 책은 어린이들의 이야기인데, 어린이들 세계를 잘 알고 심리도 잘 아는 사람이 써야 하는데, 왜 어른들이 쓸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의 얘기를 하고 그것을 또래가 본다면 훨씬 더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해 어린이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분명 별거 아닌데 또래들이 만든 영상을 보며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어린이 책을 만드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일부 학부모들이 어린이 수준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그림에 걸맞지 않게 아동문학상을 받을 정도의 글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이 남보다 낫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도가 지나치다고 할까.

그림책을 내면서 가슴 뭉클한 경험도 적지 않다. 작가의 탄생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라 복지기관을 통해 할머니들의 책 출판도 돕고 있다. 부산의 한 복지기관에서 70~80대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익힌 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전시회를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또 경기도 여주에서는 청소하는 할머니들의 그림책을 만든 적도 있다. 생활하느라 힘들게 일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할머니들을 보면 가슴이 찡해진다고 한다.

작가의 탄생은 누구나 그림책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카이스트 대학원 인공지능(AI) 전문가들과 손잡고 딥러닝 기술을 통해 디자인 작업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김 대표는 “그림책은 단순히 책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라며 “환경이 더 어렵거나, 몸이 아프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거나, 조금은 소외된 사람들이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의 인생을 보게 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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