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지원 늘었지만 장애아나 학부모 행복한지 의문이죠"

강성만 입력 2020. 6. 29. 19:06 수정 2020. 6. 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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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한국경진학교 심승현 교사

심승현 교사는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눈에 잘 띄라고 빨간 티와 노란 안경을 썼어요. 아이들이 밝은 걸 좋아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심승현(52) 교사는 올해로 발달장애 아동을 가르친 지 29년째이다. 공주사대 특수교육과를 나와 1992년부터 교단에 섰다. 그간 150명이 넘는 발달장애 학생 담임을 맡았다. 지금은 발달장애 국립특수학교인 한국경진학교에서 고2 담임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과학 실험 교육으로 <교육방송>이 주관한 ‘최고의 교사’에 뽑히기도 했다. 학생들이 흥미롭게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한 이 과학 수업 사례는 <마음이 통하는 교실>(2013·쿠움)이란 책으로도 나왔다.

그가 최근 두 번째 저술인 <공중부양의 인문학-사람과 노동 그리고 장애를 보는 관점>(쿠움)을 출간했다. 장애 학생의 학부모와 소통하거나 특수교육의 문제점을 짚는 글과 함께 특수학교 교사로 살며 깊게 벼린 사람과 노동에 대한 성찰도 담았다.

지난 22일 경기 고양시 한국경진학교에서 심 교사를 만났다.

심 교사의 책 <공중부양의 인문학> 표지.

왜 ‘공중부양의 인문학’일까? “장애 교육책들을 보면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특별하다는 식의 제목이 많아요. 저는 인문학이란 말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제 책이 발달장애 아이들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죠. 장애인도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렇다면 ‘공중부양’은? “삶의 관계에서 부모 자식도 너무 집착하면 문제잖아요. 뜸과 가라앉음을 잘하자는 말이죠. 한발 떨어져 자식을 보기도 하고 그렇다고 자식에서 완전히 이탈하지도 않는 그런 관계를 말하죠. 장애아 부모가 자식과 너무 붙어 있으면 부모가 아이가 됩니다. 그러면 부모도 소멸하고 아이도 소멸해요. 일반 아이들은 엄마에 종속하더라도 나중에 극복할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고착하는 사례가 많아요. 한번 엄마 손을 잡으면 고교생이 되어서도 손을 놓지 못하거든요.”

이런 생각은 지금의 장애아 교육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장애인이어서’라는 발상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장애인이라서, 어디 갈 땐 손 잡아주고 더 먹으면 살찐다고 말리고 대변을 잘 보는지도 확인해요.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무것도 없죠. 모든 걸 다 타인이 결정해요. 우리 학교도 학생들이 오전 8시 45분에 등교하면 선생님들이 학교 앞에 모여 아이들 손을 잡고 교실로 갑니다. 혼자 갈 수 있는데도요. 신체를 타인에게 맡기면 자주성이 억압당해요.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려워지죠.”

그가 수업에서 실험이나 만들기로 학생들이 뭔가를 직접 해보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는 컴퓨터를 수업에 잘 활용하지 않아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수업하죠. 작은 수준에서라도 아이들이 직접 해보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회 적응력을 키울 수 있어요. 진짜 배움은 몸으로 오죠. 우리 학생 중에 ‘매울 신’자 한자를 아는 아이가 있어요. 그가 좋아하는 라면이어서죠.”

그가 보기에 “(장애) 학생 교육의 시작과 끝은 학생들의 사회적 생명력을 풍부하게 만들어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지만 현실은 뒷걸음질하고 있단다. “마을과 가족 공동체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감정을 세심하게 느끼고 헤아려 사회적 관계를 넓혀야 하는데 그런 장이 갈수록 줄어요.”

그는 교사 초년기에 전남 함평에서 장애 학생들을 가르쳤다. “농번기에 일주일가량 방학하면 중증 학생을 빼곤 대부분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장애아도 농번기에는 논의 못줄을 잡거나 강아지 밥을 주거나 조그만 돌을 나르거나 웬만하면 할 일이 있어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일에 참여하죠. 하지만 자본주의 발달로 장애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요. 일반 사람과 놀지 못하고 분리되죠. 지금은 아이들이 집에서도 하는 일이 없어요.”

29년간 150여명 발달장애 학생 담임 지금도 발달장애 국립특수학교 근무 두번째 책 ‘공중부양의 인문학’ 펴내 “사람·노동·장애 보는 관점 이야기” ‘무한경쟁 시스템’ 문제점 조목조목

“‘특수’ 떼고 모든 교사가 통합교육을”

장애아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늘어난 만큼 학생들은 행복할까? “장애 학생과 그 가족이 예전보다 더 행복한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보기에 장애아 교육을 왜곡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다. “사회의 무한 경쟁은 학교로도 그대로 내려와요. 요즘 장애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미술과 운동을 특별히 교육하는 사례가 많아요. 정말 아이들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우리 아이들이 누구보다 잘 났어, 잘해’라는 그런 마음의 표현으로 비치죠. 무한 경쟁 심리의 잠재적 반영이죠.” 그는 책에 사회 적응력을 키우기보다는 예체능 쪽에서 인간 승리를 기대하는 교육에 집중하다 결과적으로 힘든 결과를 맞은 장애 가족의 예를 들기도 했다.

그는 학교를 떠난 제자들의 안부를 가능하면 묻지 않는다고도 썼다. 좋지 않은 소식에 마음이 심란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는 중증 학생들이 많아요. 적어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봤을 때 취업이 갈수록 힘들어요. 10여년 전에는 말을 못하는 중증 학생도 간혹 취업했어요. 지금은 안 됩니다. 업체가 장애인 선발에서도 무한 경쟁 시스템을 적용해서죠.” 말을 이었다. “발달장애 아이들도 줄을 세워 더 준비된 아이들을 뽑아요. 이유를 물으면 준비가 덜 된 아이들을 뽑으면 떨어진 아이 학부모들이 항의한다고 해요. 저는 이를 친절한 배제라고 불러요. 장애아를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돌본다면서 실제로는 배제하는 거죠.”

학교에서 타인을 때리거나 꼬집는 장애 학생들이 느는 것도 무한 경쟁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20년 전에는 6개 반에 한두 명이었는데 지금은 한 반에 한두 명이 때리거나 꼬집어요. 자기 아이들이 더 나아 보이도록 하고, 또 경쟁적으로 과잉보호하는 일부 부모의 심리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뭘 해도 칭찬하는 학교 교육 탓도 있죠. 때려도 칭찬하면 그 행동이 확고해집니다.”

해법이 뭘까. “특수 교육에서 특수를 떼야 합니다. 특수를 전제하면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지금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교사부터 바뀌어야죠. 모든 교사가 다 특수 교육까지 공부해 통합해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들은 나이로만 나누고요.”

심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만든 ‘우리 동네’ 종이 모형. 사회과 수업에 쓴단다. “중증 학생도 최소한 뭔가를 대고 종이에 선을 그을 수는 있어요. 자폐증이 있는 친구들은 선을 잘 긋고 다운 증후군 아이들은 색감이 뛰어나죠.”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책에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장애아 학부모들을 유혹하는 ‘장애 산업’의 문제도 지적했다. 장애를 고칠 수 있다며 한 달에 천만원 이상 수강료를 받기도 한단다. “장애는 치료될 수 없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 견해입니다. 신체 장애는 보청기나 로봇 발로 극복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자폐나 지적 장애는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다운 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이라는 원인은 알지만 치료가 불가능해요. 그런데 언어나 음악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해요. 말이 안 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이런 광고에 환상을 가져요. 저는 사기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덜 현혹되도록 치료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집중교육 정도로 대체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국가도 잘 몰라요. 언론이 전문가와 함께 장애산업의 문제를 파헤치면 좋겠어요.”

경기도 고양시 주민인 그는 부산까지 케이티엑스로 오가며 대학원 공부를 했다. “교대 가운데 유일하게 부산교대 대학원에 인문과정이 있었거든요. 인문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었죠.” 공주사대에 들어갈 때도 국문학이나 철학 공부를 하고 싶어 1지망은 윤리교육과를 썼단다.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던 부모님을 생각해 특수교육과를 2지망에 썼는데 1지망이 안 되면서 특수교육과로 갔죠.”

우연히 들어선 특수교사의 길이지만 지금은 많은 재미를 느낀단다. “한해 두해 해보니 재밌어요. 과학 실험도 사실 제가 재밌어서 한 겁니다. 선생님이 재밌어야 아이들도 재밌어해요.”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도 크단다. “<논어>나 <맹자> 같은 책을 보더라도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사람을 진짜 알려면 우리 아이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기도 또는 변하지 않기도 해요. 그걸 보며 고민한 결과물이 이번에 낸 책입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통해 사람을 알려고 한 흔적이죠.”

“내 곁에 또 다른 나와 그(타자)를 위한 빈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 장애 학생들과 30년 가까이 지낸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다. “너무 그(타자)와 붙어 있지 말고 내 옆에 자리만 마련해주고, 그가 와서 앉으면 격려해주고 공감해주는 게 사랑입니다. 내 속의 다른 나도 넉넉히 받아들일 힘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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