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독식 국회 열어젖힌 날..김종인 "통합당 정권창출 기회"

윤정민 입력 2020. 6. 30. 00:03 수정 2020. 6. 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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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상임위원장 17개 독점
통합당 "국회, 청와대 출장소 전락"
문 대통령 "국회 한달 아무것도 못해"
여야 대치에도 3차추경 처리 독려
김태년 "참고 협상했지만 야당 거부"
박병석 의장 "통합당이 추인 실패"
주호영 "의장탁자 엎고 싶은 심정"
정의당 "협의 선출 원칙" 투표 불참
통합당,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연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11개 상임위원장이 선출됐다. 아직 선출 전인 정보위원장을 빼곤 17개 상임위원장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앞서 5일 뽑은 국회의장·부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미래통합당은 ’오늘로 대한민국 국회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반발했다. 사진은 한 의원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기표소에 들어가는 모습. 본회의를 거부한 통합당 의원들 자리에 명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연합뉴스]

176석의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독식했다. 지난 5일 국회의장과 부의장 각 1석, 지난 15일 6개(법제사법·기획재정·외교통일·국방·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보건복지) 상임위원장에 이어 29일 나머지 11개 상임위원장을 자당(自黨) 의원으로 선출했다.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건 1987년 5월 12대 국회 후반기 이후 33년 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체제(87체제)에선 처음이다.

야당 몫 부의장 1석이 공석이긴 하지만, 국회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 전석을 여당이 가져가는 건 헌정사에 전례가 없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신임 국회 사무총장 임명승인안도 통과됐다. 미래통합당은 이후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앞서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장을 고수하는 대신 정무·교육·문체·농해수·환노·국토·예결위 등 7개 상임위원장을 미래통합당 몫으로 하겠다고 했고, 통합당은 이를 최종 거부했다.

이날 표결엔 친여(親與) 성향의 열린민주당(3석)과 기본소득당·시대전환(각 1석), 일부 무소속까지 총 181명이 참가했다. 정의당(6석)은 “상임위원장은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선출하는 게 정상적”(배진교 원내대표)이라며 본회의에 출석만 하고 국민의당과 함께 투표엔 불참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다리고 참고 협상하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는데 통합당이 끝내 거부했다”며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오늘로 대한민국 국회는 사실상 없어졌고 일당독재, 의회독재가 시작됐다”며 “민주당은 실질적으로는 독주하면서 우리를 들러리로 세우려고 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후 벌써 한 달인데 자칫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첫 임시국회의 회기가 이번 주(7월 4일)에 끝나게 된다”며 “코로나로 인한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국회가 더는 외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안·35조3000억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국민들과 기업들의 절실한 요구에 국회가 응답해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드린다”며 사실상 거여의 상임위 싹쓸이를 ‘묵인’했다. 문 대통령은 회기 내 추경안 처리를 압박해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본회의 직후 예결위를 제외한 16개 상임위를 바로 가동했다. 하루 만에 상임위별 예비심사를 마치고 30일부터 예결위를 가동해 이번 주 안으로 3차 추경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교육위는 이날 2718억원을 증액 의결했다.

통합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의사일정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주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규탄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의사일정에 당분간 전혀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다수당 억지…통합당, 국민 보고 가면 오히려 기회”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주호영 원내대표(김 대표 오른쪽)과 의원들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총에 참석해 “다수당에서 자기 맘대로 해야겠다는 억지를 쓰는 이상, 소수가 거기 대항할 방법이 없다”며 “여러분이 주 원내대표를 전폭 지지하면서 국민만 쳐다보고 직무에 최선을 다하면, 앞으로 남은 1년 이후 우리가 정권을 스스로 창출한다는 신념에 불탄다면, 오히려 이것이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의장실을 항의 방문했다. 박대출 의원은 의장실에서 나와 “야당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야당을 해산했던 히틀러 시대와 무엇이 다를 게 있냐고 (의장에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제1야당 국회의원 103명 전원을 국회의장과 여당이 상임위에 강제 배정하는 엄청난 폭거가 진행됐다”며 “국회를 청와대의 출장소로 전락시킨 것이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것과 같은 충격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 배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원 사임계를 제출했다. 또 야당 몫 국회부의장이 유력했던 정진석 의원은 “기자들이 자꾸 물어오는데, 전대미문의 반민주 의회 폭거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회부의장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약 35분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마지막 담판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박 의장과 민주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대응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의 시급성을 들며 통합당을 탓했다.

박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어제 저녁 원 구성과 관련된 합의 초안을 마련하고 오늘 오전 중으로 추인을 받아서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했으나, 야당은 오늘 추인을 받지 못했다”며 “국민과 기업의 절박한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원 구성을 마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며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박 의장은 각 상임위 내 통합당 몫 위원을 직권으로 강제 배정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어제 많은 진전을 이뤄 가(假)합의안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안을 통합당이 거부했다. 국회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추경안을 처리하기 위해 상임위원을 전부 선출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합의 초안’ ‘가합의안’에 대해 “우리는 법사위원장 문제에 대해 원하는 바(전·후반기를 여야가 나눠서 맡는 것)를 얻지 못했고,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민주당 뜻대로 하는 걸 전제로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안을 내놓은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주 원내대표는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대선 이후의 집권여당이 선택하도록 하자는 내용의 민주당 안(案)에 대해선 페이스북에 “‘너희가 다음 대선 이길 수 있으면 그때 가져가봐’라는 비아냥으로 들려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며 “오늘 오전 협상이 끝날 무렵, 국회의장은 제게 ‘상임위원 명단을 빨리 내라’고 독촉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장실 탁자를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권여당이 의회민주주의를 파탄 내는 그 현장에서 국회의장이 ‘추경을 빨리 처리하게 상임위원 명단 제출을 서둘러라’는 얘기를 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라고 썼다.

윤정민·하준호·김홍범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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